용산성당 게시판

내 마음의 은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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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7-28 ㅣ No.5181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열린 심리 치료사들을 위한 명상 모임에서 우리는 껴안는 명상을 했다. 모임이 끝난 후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이 집에 있는 필라델피아로 돌아가서는, 공항에서 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아내를 껴안았다. 그것을 경험한 그의 아내는 시카고에서 열린 우리의 다음 모임에 참석했다.

진정으로 그 순간 속에 살아 있으려면, 그대는 단지 깨어 있는 마음으로 호흡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두 사람은 진정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되고 그대는 자신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나무를 만지는 것처럼 우리는 자비심을 갖고 우리 자신을,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질 수가 있다. 때로 우리는 널빤지에 망치로 못을 박다가 못 대신 손가락을 내리칠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곧바로 망치를 내려놓고 상처난 손가락을 치료한다. 다친 손가락을 위해 응급처치를 하고 그 밖에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손가락에 대해 염려하는 마음을 갖는다.

상처가 났을 때 우리는 때로 의사와 간호사가 필요하지만,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기 위해서는 자비심과 즐거운 마음도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고통을 느낄 때, 자비심으로 그것을 어루만지는 것을 훌륭한 치료법이다. 그 고통이 몸 속에 있을 때라도, 이를테면 간이나 심장, 폐 속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그것을 어루만질 수 있다.

우리의 오른손은 왼손과 자주 접촉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자비심을 갖고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와 함께 한 가지 수행을 해보자. 숨을 깊이 세 번 들이쉬고 내쉬면서, 그대의 오른손으로 왼손을 만지라. 마음속에 자비심을 갖고 그렇게 하라. 그대의 왼손이 그 위로와 사랑을 받아들이는 동안, 그대의 오른손 역시 위로와 사랑을 느끼지 않는가! 이 수행은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모두를 위한 것이다.

누군가 고통을 받을 때, 만일 우리가 자비심을 갖고 그를 어루만진다면, 그는 우리의 위안과 사랑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위안과 사랑을 받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고통받을 때도 우리는 똑같이 할 수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접촉하는 것이다. 몰론 깨어 있지 않은 마음으로 접촉할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할 때, 그대는 자신이 눈을 씻고 있다는 자각 없이 눈을 씻는다. 그대는 아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깨어 있는 마음으로 세수를 한다면, 다시 말해 자신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고 있으며 그대의 얼굴을 씻을 수 있도록 먼 곳으로부터 물이 왔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얼굴을 씻는 그 행위는 훨씬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눈을 씻으면서 그대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내 눈을 느낀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내눈에게 미소를 짓는다’.

 

눈은 우리에게 생명력을 주고, 우리를 치유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잘못된 것에는 그토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면서, 경이로움과 생명력을 주는 것에는 왜 관심을 갖지 않는가? 우리는 눈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거의 갖지 않는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눈을 만질 때,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눈이 우리의 가장 근본이 되는 더없이 소중한 보석임을.

시력을 잃은 사람들은 단 하루라도 우리처럼 세상을 볼 수만 있다면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눈을 뜨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온갖 다양한 모슴과 색이 보인다. 파란 하늘과 물결치는 언덕, 나무와 구름들, 강과 아이들, 펄럭이며 날아가는 나비들....    그저 이곳에 앉아, 그런 색깔과 모양들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더없이 행복할 수가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고, 행복의 중요한 조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거의 모든 순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느끼고,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눈에게 미소를 보내라. 그렇게 할 때, 그대는 진정한 평화와 기쁨과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심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내는 내 심장을 느낀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심장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몇 번씩 하면, 심장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평생 동안 우리를 살아 있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대의 심장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수천 리터의 피를 펌프질 한다. 그대가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일하면서 그대에게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대의 심장은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 주는 근본적인 요소다. 하지만 그대는 그것을 느끼거나 감사해 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지 다신에게 고통을 주는 일들만을 느낀다. 그래서 걱정과 분노로, 또는 먹고 마시는 것들로 심장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평화와 기쁨을 방해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쉬면서 자신의 심장을 느끼고,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심장에게 미소를 보내라. 그렇게 할 때, 그대는 활짝 깨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아주 분명하게 그대의 심장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심장에게 미소를 보낼 때, 그대는 자비의 마음으로 심장을 맛사지하고 있는 것이다.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알고, 마셔야 할 것과 마시지 말아야 할 것을 알 때, 무의미한 걱정과 불안감을 떨쳐 버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대는 자신의 심장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그것과 똑같은 수행법을 다른 신체 기관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간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는 간이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안다. 숨을 내쉬면서, 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서 간을 해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사랑의 명상이다. 우리의 눈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심장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간은 우리 자신이다. 자신의 심장과 간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사랑의 명상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수행이다. 자신의 몸을 보살피고, 자신의 심장을 보살피고, 자신의 간을 보살피는 수행이다. 사랑과 자비심을 갖고 자기 자신을 어루만지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날마다 잘못된 것들만을 느끼며, 그결과 점점 더 건강을 잃어 간다. 우리 안에서, 우리 주위에서 좋은 것들을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가 우리의 심장과 눈과 간, 그리고 호흡의 상태를 자각하고 진정으로 그것을 기뻐할 때, 우리는 평화와 행복을 위한 조건들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안다.

온 마음으로 걸으며 발 밑에 대지를 느낄 때, 친구와 조촐하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차와 우정에 대해 깊이 느낄 때, 그때 우리는 스스로 치유받는다. 그리고 그 치유를 세상 전체로까지 확대시킬 수가 있다. 과거에 받은 고통이 클수록, 우리는 더욱 강력한 치료사가 될 수 있다. 자신이 받은 고통으로부터 통찰력을 얻어 친구들과 세상 전체를 도울 수 있다.

 

언젠가 미국의 큰 교회에서 강연하면서 나는 말했다.

"여러분들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세상을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생생히 살아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숨을 들이쉬도, 진정으로 살아 숨쉬면서 한 걸음을 걸으십시오. 한 걸으만 내디뎌도 여러분은 바로 하늘나라로 들러갈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이 세상을 떠날 필요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나무를 깨안을 때, 우리는 이미 천국에 있다. 자신의 호흡을 자각하고, 눈과 심장과 간이 있음을 자각할 때, 우리는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간다.

 

마음의 평화는 지금 여기 있다. 우리는 단지 그것과 만나기만 하면 된다. 진정으로 살아 있을 때, 우리는 그 나무가 천국의 일부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천국의 일부분임을 안다. 우주 전체가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도 모른채 나무를 자르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땅 위의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번의 깨어 있는 발걸음, 한 번의 깨어 있는 호흡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만날 때, 모든 것이 진정한 존재로 탈바꿈한다. 우리는 지금 이곳에서 온전히 살아 있는 우리 자신이 된다. 나무와 아이들, 그리고 다른 모든 것들이 눈부신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로 다가온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말했다.

"기적은 땅 위를 걷는 일이다."

기적은 희박한 공기 속이나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대지 위를 걷는 일이다. 대지는 너무도 아름답다. 우리 또한 아름답다. 우리는 깨어있는 마음으로 걸을 수 있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경이로운 마음으로 어머니 대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친구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하고 기원할 필요가 없다. 평화는 이미 그들과 함께 있다. 우리는 다만 그들이 매 순간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 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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