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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의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3 1241_recapitulati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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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08 ㅣ No.1254


게시자 주: 이글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중간부분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용량 초과로 부득불 나누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은 이글의 중간부분 글의 마지막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7.
위의 제6-2항에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의 핵심이 바로 그 과정의 역[逆, 전도(轉倒)]에 의하는(by the inversion of the prosess) 것에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언급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다음과 같은 추가적인 설명이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 시작

7-1. 하느님께서 한처음에 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에,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과 이들 사이의 질서(순서, order)는 소위 말하는 "코스모스(cosmos)의 상태"에 있었다. 즉 가능태 상태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람에게서 출발하여 하느님께로 올라가는, 상향 구조로 말씀을 드리면(A), 단지 개체들로서의 천지만물인, 처음부터 완미한 선(perfect good)의 상태에 있는, 피조물들만을 창조하셨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개체(objects)들 사이의, 질서(orders between objects)들,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개체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objects)들, 그리고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이들 관계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relations)들, 더 나아가, 처음부터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는, 관계들 사이의 관계(relations between relations between relations)들 사이의, 관계들, 등 등을 또한 모두 완미한 사물(perfect things)들로 창조하셨다, 혹은 현실태 상태에 계신 하느님의 관점에서, 논리적 등가로, 하느님에게서 출발하여 사람에게 내려오는, 하향 구조로 말씀을 드리면(B), ... 등 등,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개체들 사이의 관계(relations)들, 개체들 사이의 질서(orders)들, 개체(objects)들을 또한 모두 완미한 사물(perfect things)들로 창조하셨다.

게시자 주 7-1: 위의 "귀납적 추론(inductive reasoning) 과정"인 (A)와 "연역적 추론(deductive reasoning) 과정"인 (B)에 있어, "아래에서 위로[(A)의 경우]"와 "위에서 아래로[(B)의 경우]"라는, "이성적 추론(reasoning)에 있어서의 진행 방향"이 있음에 주목하라.

7-2. 아담과 하와의 원죄(original sin)로 인하여,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개체들로서의 피조물들 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이들 피조물들 사이의, 질서들, 관계들, 그리고, 애초에 완미한 선의 상태에 있었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등등 모두에 "악(evil)들", 즉 "선(good)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이 결여/상실들은 되물림되어 왔다. 즉, 유형 무형의 피조물들과 이들 사이의 관계들은, "코스모스의 상태"를 상실당하였다, 즉 "혼돈(chaos)의 상태"로 전락하였다. 즉, 원죄의 결과 개체들로서의 피조물들에게만 선의 결여/상실들이 오로지 발생한 것이 아니라, 또한 개체들 사이의 질서에도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에도 또한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으며,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 사이의 관계들에도 또한 선의 결여/상실들이 발생하였다. 등등.

게시자 주 7-2-1:
어떤 순서(an order, 질서)가 몇 개의 추가 조건들을 만족하는 어떤 관계(a relation)로 정의(is defined)됨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논리학 분야 혹은 집합론 분야의 입문서를 참고하라.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영어로 "the order of grace"로 번역되는 표현을, "은총의 순서/질서"로 번역하는 대신에,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그동안, 관계(relation)의 한 종류인, 바로 이 "order(순서, 질서)"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이해를 하지 못하여"은총의 세계" 혹은 "은총의 계획" 등으로 대단히 잘못 번역한 것에 대한 지적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게시자 주 7-2-2: 완미한 선(perfect good)의 상태에 있던 피조물인 어떤 대상(an object)에, 원죄의 결과로,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점진적으로 선의 상실/결여가 더 발생하는 것, 즉 점진적으로 더 악해지는 과정(process)이, 결국에 "악의 극한(limit)"인 죄(sin)으로 향하는, 그리고 위의 제7-1항에서 언급된 "이성적 추론(reasoning)에 있어서의 진행 방향"과는 전혀 무관한"성향(disposition)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이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인 어떤 대상(object)에는, 또한 피조물들인, 순서(orders, 질서)들과 관계(relations)들도 포함된다.

7-3. 이제 위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일반 알현 교리 교육 강론 말씀의 제2항 첫 부분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는 부분을 포함하는, 성 바오로에페소서 1,9-10인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당신 선의에 따라 우리에게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 대하여, 리옹의 성 이레네오는, 성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다음과 같은 내용, 즉, "대상(objects)들로서, 피조물들에 뿐만이 아니라,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질서(orders)들, 관계(relaltions)들 모두에게 있어, 원죄 이후에 발생하여 점차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악(evil)들을, 즉 선의 결여들을, 그 과정에서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으로써/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으로써 원죄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킨다는,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대로, 가장 경이로운 방식인,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Incarnation), 장차 오로지 죄인들의 속량(Redemption)을 위하여 당신께서 세례를 받으심, 당신의 복음, 즉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에 대한 가르침,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 십자가 수난, 죽음 및 부활하심, 그리고 그 이후에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들로 하여금, 오로지 우리들의 속량을 위하여 당신께서 받으셨던 바로 그 동일한 세례인,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심(세례성사의 제정)(마태오 복음서 28,18-20)" 등으로, 총괄적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로, 총체적으로 해석하였다는 생각이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동참하는 바로 이 과정이, 그 과정에서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으로써/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으로써 원죄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에 우리들을 처음으로 참여하게 하고(콜로새 2,12 참조), 그리고, (i) 기도 생활, (ii) 성사 생활, 그리고 (iii) 실천 생활로 이루어진,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 안에서, 역시 총괄복귀(總括復歸)의 나머지 부분인, 소위 말하는,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을, 선행 구속(pre-redemption)에 의하여 피조물인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처음으로 실천하여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던 "믿음의 순종(the obdience of faith)"이라는 바로 그 실천을, 우리들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마찬가지로 실천하여야 함에까지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기초/근거 개념으로 추상화(abstraction)된 개념이, 성 바오로 에페소서 1,10의 표현 그 자체가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개념이, 바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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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를 클릭하면, "객관적 구속" 및 "주관적 구속"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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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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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 3,14-15).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르코 복음서 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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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총괄복귀에 있어 맏이인 "새 아담"이시며, 그리고 이 맏이인, 수렴점(收斂點, point of convergence)인, "머리"를 향하여 우리가 수렴(收斂)하고자 한다면, 즉 총괄복귀(總括復歸)되려면, 애덕(charity)과 더불어 실천적으로, "제 십자가"를 지고, 즉 이어지는 절인 마르코 복음서 8,35에서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당신의 복음"을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7-4. 위의 제7-3항에서 절대로 간과하여서는 아니 되는 바가 바로 "하느님의 뜻(his will)""하느님의 의지"동사형이 바로 예수님께서 당신의 새 계명에서의 "사랑하다(to love)"의 의미인 것에 있을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복음서 13,34): 

요한복음서 13: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서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1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요한복음서 14: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복음서 14: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 14:31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대로 내가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아야 한다. 일어나 가자.”
요한복음서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복음서 15: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복음서 15: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복음서 15: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복음서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게시자 주 7-4
: 리옹의 성 이레네오(<----- 클릭한 후 필독 권고)가,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사도 성 요한의 제자인 폴리카르프(Polycarp, 155년에 죽음)의 제자였음을 상기하라.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예수님께서 행할 것을 새 계명으로 명령하신, 향주삼덕들 중의 애덕(Charity)을 정의할(define) 때에 사용되는 개념인"하느님의 사랑(God's love)", 즉 "그리스도 사람들의 사랑(Christian love)"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7-5. 따라서, 성 이레네오는 바로 이 지고한 "하느님의 뜻(God's will)"을,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이라는 한 개의 등가의 표현(one equivalent expression)으로, 사람을 포함한 피조물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서술의 방식으로(in a descriptive way), 정의(define)하였다는 생각이다.

게시자 주 7-5: 다음의 주소에 있는, 200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의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강론 말씀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ben-xvi_hom_20060106_e_en.htm

(***) 끝.

(이상, 이글의 중간부분의 마지막 부분 발췌 끝).

게시자 주: 여기서부터 이글의 마지막 부분이 계속됩니다.

 

8. 
8-1. 그런데 여기까지 읽은 일부 독자들께서는,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이 무슨 새로운 개념인가? 하였더니, 뭐야, 위의 제7항의 이야기들 대부분은 나도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잖아?" 하면서, 허탈해 하실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콜롬부스의 달걀"에서 "그 방법(know-how)"에 대하여 알게 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이번의 일련의 글들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모르고 있는 어떤 것(something)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바에 대하여, 더 정확하게, 자신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여러분들이 가톨릭 보편 교회로부터 배워서 이미 알고 있는 바를 표현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근본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인,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에 대한 전달/안내의 글일 뿐입니다.

8-2. 그러나 리옹의 성 이레네오가 살았던 초기 교회 시절인 2세기에는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이 차지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중요성은 다들 잘 알고 있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당시의 이단들인 이원론자들, 프랑스 지역의 영지주의자들, 그리고 에비온파들 등의 잘못된 주장을 격파하는 데에 자신이 도입한 개념인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을 적용하였던,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을 수호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시작
사실,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은, 그리스도교 신학[여기에는 개신교측 및 동방 정교회측의 신학 포함]이라면 반드시 만족시켜야 하는 한 개의 필요 조건(a necessary condition)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교회가 이 개념을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으로부터 도출되는 한 개의 진리로 대단히 오래 전부터, 즉 2세기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수용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C) 따라서, 성경 본문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더 나아가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에 대한 어떠한 주장이든지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이설/이단 주장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9월 16일]

게시자 주: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바(C)는 필자의 이성적 추론(reasoning)에 의한 결론인데, 이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6-518항들에 의하여 증명됩니다

(발췌 시작)
예수님의 신비들에 공통인 특징들
(Characteristics common to Jesus' mysteries)

CCC 516 그리스도의 전체 지상에서의 삶은 성부의 거룩한 계시(Revelation)이다. (이하 생략).

CCC 517 그리스도의 전체 삶은 한 개의 속량(redemption) 신비이다.
(이하 생략).

CCC 518 그리스도의 전체 삶은 한 개의 총괄복귀(recapitulation) 신비이다.
(이하 생략) 
(이상, 발췌 끝)

따라서, 예수님의 여러 신비들은 바로 이들 세 개의 특징/성질들을 모두 만족시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이 이들 중의 어느 한 개라고 논리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장이 성 이레네오(St. Irenaeus)"한 개의 총괄복귀 신비(a mystery of recapitulation)"를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러한 주장은 이설/이단입니다.

주: 여기를 클릭하면,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사용 중인 "신비(mystery)" 라는 신학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는데,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깊은 흔적"으로 번역되고 있는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대다수의 분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와 다르니, 반드시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즉, 성경 본문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더 나아가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에 대한 어떠한 주장이,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을 만족시킬 경우에만, 이설/이단 주장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이 "아닐 수도 있다"가 무슨 말씀인가 하면, 어떤 주장이 설사 성 이레네오"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을 만족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주장이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이설/이단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별도의 과정을 거쳐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반드시 확인/승인되어야만 함을 뜻합니다].
(***) 끝

8-3. 다음은,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이 개념을 필요 조건으로서 만족시키는, 그가 가르친 가르침들로서, 가톨릭 보편 교회가 이미 수용한 내용들 중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몇 개들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saint/view.asp?ctxtSaintId=2250&Orggubun=101

-. 유아세례의 필요성을 최초로 언급: 『인간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며 따라서 어린아이도 모두 세례를 받아야 구원된다』

-. "살아있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이고, 인간의 삶은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이다"(이레네우스, '이단논박' VI. 20, 7).

-.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우리는 영원한 부활의 희망을 갖는다"('이단논박' Ⅳ. 18,5).

-. 하느님은 한 분이시고 신구약성서의 저자이시라는 하느님의 유일(唯一)성을 증명하고, 그리스도의 강생을 구원사적으로 설명.

-.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사상'을 펼치면서 역사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였다.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수렴되고 그분을 머리로 하여 완성된다는 이레네우스의 그리스도 중심의 '수렴'(收斂, recapitulatio) 사상.
 
-. 로마교회의 수위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교회는 로마 교회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교회 즉 전 세계에 있는 신자들은 강력한 수위권을 지닌 이 (로마)교회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로마)교회에는 그들을 통해서 전해오는 사도전승이 항상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단논박' III. 3, 2).

-. 이레네우스는 '불순종과 순종', '첫 아담과 둘째 아담(그리스도)', '첫 하와와 둘째 하와(마리아)'를 대비시키면서,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우리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 라고 설명한다.

-. "하와의 불순종이 그녀와 전 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지만, 마리아의 순종은 그녀와 전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이단논박' III. 22, 4).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풀렸다"('이단논박' III. 22, 4). "우리는 아담 안에서 상실했던 '하느님을 닮은 모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했다"('이단 논박' III. 18, 1).

-. "사도적 선포의 논증"(使徒的 宣布의 論證, Demonstratio doctrinae Apostolicae)에서 우리는 목자로서 이레네우스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이레네우스는 신자들에게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면서 어떤 경우에도 이단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있는 곳에 하느님의 영(성령)이 있고, 하느님의 영이 있는 곳에 교회와 모든 은총이 있기 때문이다"('이단반론' III. 24, 1).

-. 하느님도 한분, 그리스도도 한분, 사람도 하나, 교회도 하나, 신앙도 하나」라는 「단일성」을 천명했다.

-.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

8-4.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2세기의 교부인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이 개념을 필요 조건으로서 만족시키는 성 이레네오의 가르침들을 인용하고 있는 약 32개의 항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문헌적으로 그의 가르침들을 인용하고 있는 경우 전부라고 말할 수 없는데, 이는 그가, 초기 교회 시절(2세기)에 활동한, 거의 첫 번째 정통 그리스도교 수호 신학자였기에, 그의 가르침의 영향을 받은 교부들, 교회 박사들, 혹은 교회 저술가들의 저술들을 통한 그의 가르침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임에 또한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총 2865개가톨릭 교회 교리서 항들 중에서 단지 약 32개의 항들에서 그의 가르침을 인용하고 있기에 "그의 가르침들이 별 것 아니다" 라고 생각할 분들도 계실 것이나, 그러나 그러한 단순 추측은 억측/억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개념은 워낙에 그리스도교 신학의 필수적 기초/근본 개념이기에, 그리고 대단히 공리적(axomatic)/연역적(deductive) 추론 구조(reasoning structure)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구조 때문에, 이들 약 32개의 항들 다음에 이어지는 항들에서의 가르침들도 거의 모두가 그의 이 개념하에서 주어지고 있다고 보아도 무난하기 때문입니다.

9.
지금부터는, 성 이레네오가 2세기창세기 3,15와 (아직은 그리스도교측에서 신약 성경의 경전들이 확정되지 않았던 초기 교회의 시기에) 성 바로오에페소서 1,10 등에 대한 순교자 성 유스티노의 해석과 자신의 해석에 근거하여, 처음으로 도입한 "recapitulation" 이라는, 성 이레네오의 신학적 개념을 나타내는, 신학적 용어의 우리말 번역 용어의 선정에 있어, 어느 번역 용어가 더 적합한지에 대하여 여러분들이 직접 비교/검토함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인, 소위 말하는, "대입의 원리(the principle/rule of substitution)"에 대하여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9-1. 우선적으로, 죄의 결과로서 죄를 지은 당사자에게 발생하게 되는 바인, 악(evil)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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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클릭하시면, <----- 반드시 필독하실 것을 권고합니다.

악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악의 정의(definition)를 잘못 이해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를 들어, 마니교에서 주장하였던 바와 같은, "선(good)과 악(evil)에 대한 이원론적 혹은 양비론적 사고"에 빠져들어, 그리하여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의 효능들에 대하여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는, 대단히 심각한 혼란/오류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므로, 반드시 필독하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9-2. 다음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recapitulation" 단어에 대한 사전적 정의(definition)입니다.

위의 (7)에서는 자구적 의미가 둘임을 밝히고 있다는 생각이며, 이와는 달리, 아래의 사전의 두 번째 설명은,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이라는 용어의 신학적 의미를 정의하고(define)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발췌 시작)
recapitulation

Etymology: Middle English recapitulacion, from Middle French or Late Latin; Middle French recapitulation, from Late Latin recapitulation-, recapitulatio, from recapitulatus + -ion-, -io -ion

1 a : the act of recapitulating : a summing up [요약, 약술(略述)]  b : the process by which according to Irenaeus the Logos passed through all phases of human experience thus reversing the evil caused by sin and winning complete salvation for man [이레네오(Irenaeus)에 따라, 거룩한 말씀(the Logos)께서 인간의 경험의 모든 단계들을 겪으셨던 바로 그러한 방식(thus)으로써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려서(reversing) 그리하여 사람을 위한 완미한 구원을 쟁취하는(winning)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2 : the supposed repetition in the development of the individual of its phylogenetic history -- see RECAPITULATION THEORY
3 : the third section of a musical movement in sonata form consisting of a usually modified repetition of the exposition and typically followed by a coda
(이상, 발췌 끝)

참고: 사실 위의 사전에는, 예를 들어, 중세 스콜라 철학 분야(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대전 포함)의 전문 용어들에 대한 정의들도 주어지고 있는데, 초기 교회 시절의 교부학 분야 전문 신학자들이 성 이레네오에 따른 "recapitulation"이라는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위 사전측에 제공하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9-3. 위의 제9-2항의 사전적 정의에 따라, 필자는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를 다음과 같이 우리말로 용어 번역할 것을 이 글의 바로 첫 부분에서 제안하였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한 후에, 이 글의 첫 부분인, 제2항을 읽도록 하라.

[발췌 시작]

(1) "recapitulate""총괄적으로 되돌리다"로 번역한 것은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 이레네오(St. Irenaeus)정의한(define) ”recapitulation“ 단어의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 때문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mw/u_d.htm

(발췌 시작)
recapitulation: the process by which according to Irenaeus the Logos passed through all phases of human experience thus reversing the evil caused by sin and winning complete salvation for man

(악으로부터)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n): 이레네오(Irenaeus)에 따라, 거룩한 말씀(the Logos)께서 인간의 경험의 모든 단계들을 겪으셨던 바로 그러한 방식(thus)으로써 죄에 의하여 야기되었던 악을 되돌려서(reversing) 그리하여 사람을 위한 완미한 구원을 쟁취하는(winning) 바로 그 과정을 말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이 중요한 신학적 용어를, 과거에는, 즉 적어도 2000년(대희년) 이전에는 "수렴(收斂)"으로 번역하였으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8항에서는 "총괄 실현(recapitulatio)"으로 번역하고 있으며 국내의 일부 개신교측에서는 이 용어를 ”총괄 갱신“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러한 번역 용어들보다는, "총괄 되돌림(總歸)(recapitulatio)"으로 번역하는 것이,

2-(i) 성 이레네오가 정의한 원 용어(라틴어: recapitulatio)의 신학적 의미에 더 충실하고,

2-(ii)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해당 번역 용어와 일치하게 되며, 그리고

2-(iii) 가톨릭 보편 교회에 의하여 이후의 세기들에 이르러 가톨릭 신학적으로 정립되었고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의하여 수용된 "통공 교의"의 범주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유일한 구속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있어서의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merit)에 의한] 회복[restoration/recovery/atonement, 벌충, 보(補)/보상(補傷)]"이라는 신학적 개념으로, 일곱 성사들의 핵심 신학적 근거들 중의 하나로서, 더 분명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3) 다음의 주소에 있는 “Recapitulation theory of atonement [회복(벌충, 補, atonement)이라는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이론]” 제목의 글을 또한 참고하라:
http://en.wikipedia.org/wiki/Recapitulation_theory_of_atonement


(**)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유비(analogy)”라는 가톨릭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8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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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recapitulation"으로 번역되고 있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투입하여 깊은 묵상과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이 단어를 "반전/회복/갱신 과정"으로 번역을 하였으나, 그러나 이어지는 며칠 동안에 다른 자료들에서의 이 영어 단어의 용례들 및 우리말 번역 용어들과의 추가적인 정밀한 비교/검토의 결과, 최종적으로 "(악으로부터)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recapitulation)"으로 번역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위의 "번역자 각주"를 남겼습니다.

[이상, 발췌 끝].

9-4. 1997년 판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우리말 번역 과정에서, 전후 문맥에 따라 "recapitulation"이라는 단어를 세속의 통상적 의미인 "요약"으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라는 신학적 용어를 다음과 같은 번역 용어들로 번역할 것이, 국내에서 2003년 5월 이전에, 제안되었습니다: "총괄갱신", "재창조", "총괄 실현".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미 적어도 1987년 이전에 국내 가톨릭계에서 사용 중이었던 "수렴"이라는 단어를 번역 용어로 채택하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9-5. 또한 이미 말씀드렸지만,

(***) 시작 
성 이레네오가 자신의 "recapitulation" 개념을 동정 마리아의 역할에 적용하면서, 자신이 도입하는 개념 안에는, 성 바오로 에페소서 1,10의 표현 그 자체가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동참하는 바로 이 과정이, 그 과정에서 성향에 있어 하느님으로붙터 멀어지는 진행 방향을 온전히 거꾸로 되돌림으로써/총괄복귀(總括復歸)시킴으로써 원죄 이전의 상태로의 회복에 우리들을 처음으로 참여하게 하고(콜로새 2,12 참조), 그리고, (i) 기도 생활, (ii) 성사 생활, 그리고 (iii) 실천 생활로 이루어진, 이어지는 우리들의 삶 안에서, 역시 총괄복귀(總括復歸)의 나머지 부분인, 소위 말하는,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을, 선행 구속(pre-redemption)에 의하여 피조물인 동정 마리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처음으로 실천하여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셨던 "믿음의 순종(the obdience of faith)"이라는 바로 그 실천을, 우리들도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즉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서, 마찬가지로 실천하여야 함에까지 적용할 수 있게 하는 그리스도교 신학적 기초/근거 개념으로 추상화(abstraction)된 개념이, 성 바오로 에페소서 1,10의 표현 그 자체가 명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방향과 순서(direction and order)에 있어서의 "역[逆, inversion, 전도(轉倒)]"의 과정이 개입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개념이, 바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이라는 생각입니다.
(***) 끝.

9-5. 따라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에,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혹은 "recapitulate" 라는 용어를 단순히 에페소서 1,10에 있는 표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은, 창세기 3,15에페소서 1,10의 해석에 근거하여 피조물들에게도 또한 적용하고자 추상화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거꾸로 되돌리는, 즉 오히려 축소하는 잘못된 번역일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본글에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였듯이 [역시 본글의 첫 부분인, 여기를 클릭하여, 제3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2010년 4월쯤에 공개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있어서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가, 에페소서 1,10에 있는 표현 그대로 번역된 것이 아니라, 필자가 생각할 때에 우리말 표현에 있어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에 등가(equivalent value)로 대응하는, "總歸(총귀)"로 번역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9-6. 이제, 여기를 클릭한 후에, 제3으로 이동한 후에 직접, 거기에 일목요연하게 발췌되어 있는 "우리말 번역문" 중의 해당 번역 표현에다, 필자가 제안하는 번역 용어인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그리고 2003년 5월 이전에 제안된  "총괄갱신", "재창조", "총괄 실현""총괄갱생", 그리고 "수렴" 등의 그동안의 제안된 번역 용어들 각각을 대체 삽입하여, 전후의 문맥 안에서, 어느 번역 용어가 과연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잘 전달해 주는지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입니다만, 바로 이 대입의 원리의 적용이, 이글의 작성 첫 부분에서 필자가 제일 먼저 행하였던 바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9월 16일]

예를 들어,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8항에 이 대입의 원리를 적용해 보십시오:

(프랑스어본)
518 Toute la vie du Christ est mystère de Récapitulation. Tout ce que Jésus a fait, dit et souffert, avait pour but de rétablir l’homme déchu dans sa vocation première :

     Lorsqu’il s’est incarné et s’est fait homme, il a récapitulé en lui-même la longue
     histoire des hommes et nous a procuré le salut en raccourci, de sorte que ce que nous
     avions perdu en Adam, c’est-à-dire d’être à l’image et à la ressemblance de Dieu,
     nous le recouvrions dans le Christ Jésus (S. Irénée, hær. 3, 18, 1). C’est
     d’ailleurs  pourquoi le Christ est passé par tous les âges de la vie, rendant par là à
     tous les hommes la communion avec Dieu (ibid. 3, 18, 7 ; cf. 2, 22, 4).

(영어본)
518 Christ's whole life is a mystery of recapitulation. All Jesus did, said and suffered had for its aim restoring fallen man to his original vocation:

     When Christ became incarnate and was made man, he recapitulated in himself the long
     history of mankind and procured for us a "short cut" to salvation, so that what we had
     lost in Adam, that is, being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we might recover in
     Christ Jesus.185 For this reason Christ experienced all the stages of life, thereby
     giving communion with God to all men.186

(졸번역)
518 그리스도의 전체 삶은 한 개의 총괄복귀 신비입니다(a mystery of recapitulation).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말씀하셨던 그리고 고통겪으셨던 것 모두는 타락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그의 원래 소명(original vocation)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그 목적으로 가졌습니다:


     우리가 아담 안에서 이미 잃어버렸던 바를, 즉, 하느님의 모상과 비슷함으
     로 있음(being)을,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회복할 수 있도록 하시고
     자, 그리스도께서 육화되시어 그리하여 사람으로 되실 때에, 당신께서는
     당신 자신 안에 인류의 오랜 역사를 이미 총괄적으로 복귀시키셨으며
     리고 우리를 위한 구원을 향한 한 개의 "지름길"(a "short cut")을 획득하
     셨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삶의 모든 단계들을 경험하셨던 이유이
     며, [그리고] 바로 이 경험에 의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느님과의 하나 됨(communion, 통공, 친교)을 제공하십니다.

(기존의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518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총괄 실현’ (recapitulatio)의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고 고통 받으신 모든 것은 타락한 인간의 원초적인 소명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실 때, 그분께서는 자신 안에
     서 인간의 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지름길
     을 마련해 주셨다. 그러므로 아담으로 잃은 것, 곧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게 된다. 199)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인생의 온갖 단계
     를 거치셨다. 200)

[이상, 내용 추가 끝].

9-7. 이상, 3부로 나누어진 본글에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의 우리말 번역 용어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제가 대단히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9-7-1. 만약에, 2010년 4월쯤이 아니라2003년 봄 이전에, 교황청 홈페이지에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제공되었고 또 이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해당 번역 용어가 總歸(총귀)라는 사실이 국내의 가톨릭계에 의하여 인지되었더라면, 

그리고/혹은 

9-7-2. 만약에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의 사전적 정의(definition)2003년 봄 이전에 국내의 가톨릭계에 의하여 인지되었더라면,

2003년 봄 당시에, 한편으로 성 이레네오의 "수렴"이라는 기존에 사용되어온 해당 번역 용어를 굳이 외면(?)하면서까지 "총괄갱신", "재창조", 혹은 "총괄실현" 등의 표현들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대응하는 번역 용어로 제안되는 대신에, 어쩌면, "중국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의 해당 번역 용어인 "總歸(총귀)"라는 표현에 등가인 우리말 표현인 "총괄 되돌림(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이 제안되고 또 이미 채택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10.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가톨릭 보편 교회가 수정/보완하여 1979년에 인준한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에페소서 1,10에서는, 그 이전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대중 라틴말 성경(즉, Clementine Vulgata)의 에페소서 1,10에서 "instaurare" 라는 [성 예로니모(St. Jerome, 347년경-420년)에 의한 번역으로 추정되는] 라틴어로 번역된 표현을, "recapitulare"로 교정하였습니다. 에페소서 1,10에 대한, 다음의 두 개의 라틴어 본문들을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1979년 이전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대중 라틴말 성경, Clementine Vulgte]
출처: http://www.newadvent.org/bible/eph001.htm

(에페소 1,10) in dispensatione plenitudinis temporum, instaurare omnia in Christo, quæ in cælis et quæ in terra sunt, in ipso;

[1979년에 공인된 가톨릭 보편 교회의 대중 라틴말 성경, Nova Vulgata]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에페소 1,10) in dispensationem plenitudinis temporum: recapitulare omnia in Christo, quae in caelis et quae in terra, in ipso;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3일]

그리고, 필자가 알기로, 적어도 2010년 4월경부터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제공하기 시작한 중국어본 신약 성경 에페소서 1,10에서도 또한 "總歸"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에페소 1:10]
就是依照他的措施,當時期一滿,就使天上和地上的萬有,總歸於基督元首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접할 수 있는, 최근의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본 성경의 마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2012년 9월 29일자로 복자 반열에 오르신, 프란체스코회 소속의 이탈리아인 사제였던,  Gabriele Allegra (1907–1976년) 신부님께서 1968년경에 최종적으로 번역 완료하였던 최초의 구약 및 신약 합본의 중국어본 성경인 思高聖經(Franciscan Bible)의 신약 성경의 에페소 1,10에서도 또한 동일하게 "總歸"라는 번역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페소 1:10]
就是依照?的措施,當時期一滿,就使天上和地上的萬有,總歸於基督元首

[이상, 내용 추가 끝].

     이러한 바로잡음/교정(correction)은 다음을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0-1. 라틴어 "instaurere" 동사는 "(1) to set up, establish (제정하다, 설정하다), (2) to renew, restore (새롭게 하다, 원상 복구시키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instaurare" 로 번역하였을 때보다 "recapitulare"로 번역하였을 때에, 성 바오로(St. Paul)가 사용하였던 그리스어 해당 동사의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 즉 리옹의 성 이레네오(St. Irenaeus of Lyons)가 해석한 그리스도교 신학적 의미가 더 정확하게 전달된다.

10-2.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은 2세기의 교부였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을 정통 교리로 지금까지도 인정하고 있음을 재천명하였다.

10-3.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개념 안에는, "instaurere(원상 복구시키다)" 동사가 가지고 있는 개념을 포함하며, 그리고, 이미 이글의 첫부분에서 말씀드렸듯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의 가장 핵심 주제인 "통공 교의"의 핵심 가르침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량/구속 교리(the doctrine of redemption)"가 포함되어 있다.


본글의 작성을 끝내면서: 가톨릭 신학적으로 깊은 내용의 글들의 경우에 있어 상당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서 여러 번에 걸쳐 단계적으로 작성하였던 필자의 다른 글들과는 달리, 이번의 글은, 동정 마리아에 대한 상경지례의 표현인 "새 하와(new Eve)"라는 매우 특별한 칭호(title)의 신학적 근거를 향하여 출발한, 그리하여, 그리스도교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으로 거의 첫 번째에 해당하는, 대단히 중요한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근본을 상당히 깊게 들여다 본 글로서, 거의 한 달 이내에, 세 번에 걸쳐 나누어, 필력이 많이 부족한 죄인에 의하여, 그 초벌 작성이 이제 완료되었습니다. 

특별한 감사의 말씀: 이글을 마무리하면서 특히,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recapitulation"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셨던 리옹의 성 이레네오(St. Irenaeus of Lyons, 축일: 6월 28일)께 필자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바람 한 개: 비록 필력이 많이 부족한 죄인에 의하여 마련된 글이기는 하나, 본글이 부디,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께서, 2세기 이후 지금까지의 그리스도교의 정체성(the identity of Christianity)을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데에 약간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 봅니다.

2012년 9월 10일에 이 글을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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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대단히 많음


게시자 주: 총 3부로 이루어진 이글을 처음부터 읽고자 하는 분들께서는, 여기를 클릭한 후에, 1/3, 2/3, 3/3이 붙어있는 글들만을 게시글의 날짜 순서대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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