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로마 8,23 #<가연중2주일2독>#<매년성령강림대축일전야2독>[번역오류][_life][_영원한삶][_성령의열매] |
---|
. [218.55.90.*] 2013-11-16 ㅣ No.1473
당부의 말씀: 1. 들어가면서 1-1.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로마서 8,23은 매년 성령 강림 대축일 전야 제2독서(로마 8,22-27), 가해 연중 제15주일 제2독서(로마 8,18-23), 그리고 홀수 해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제1독서(로마 8,18-25)에 포함되며, 다음은 가해 연중 제15주일 제2독서(로마 8,18-23)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시자 주 1-1: 이번 글은, "새 번역 성경" 의 로마서 8,23에서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이라는 번역된 표현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735항에 주어진 가르침과 충돌하는 번역 미숙/오류임을 보고드리고자 작성되었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735항의 첫 문장에 주어진 가르침/설명에 따르면, NAB(New American Bible) 로마서 8,23에서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로 번역되는 해당 표현의 올바른 우리말 번역 표현은,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이 아니라, "성령의 첫 수확물을 받은" 입니다. 첫 결실을 말하는 "첫 수확물"은 열매(fruit)이므로, 이 직역 번역 대신에, "선물(gift)" 이라고 "새 번역 성경" 로마서 8,23에서 의역 번역한 것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735항의 첫 문장에 주어진 가르침/설명과 충돌하기에, 번역 미숙/오류입니다.
1-2.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새 대중 라틴말 로마서 8,32을 포함하여, 로마서 8,23의 여러 영어본들입니다:
(Clementine Vulgate, 즉 대중 라틴말 성경 로마서 8,23)
(새 대중 라틴말 성경 로마서 8,32)
(Douay Rheim Bible)
(Revised Standard Version)
(New American Bible)
게시자 주 1-2: 그리고 로마서 8,23에서 "the firstfruits" 으로 번역된 표현의 그리스어 어원의 자구적 의미/어의(literal sense)가, "선물"이 아니라, "첫 수확물(the first fruits)" 임은 다음에 접속하면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biblehub.com/lexicon/romans/8-23.htm <----- 클릭하여 필히 확인 하십시오.
2.
2-1.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생명" 과 "삶" 이라는 명사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124.137.201.223/search/View.jsp 「1」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
삶 「1」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 ≒생02(生)「1」.
게시자 주 2-1: (중간 결론 1) 특히 아래의 제2-3항, 그리고 제2-4항에서 영어 "life" 로 번역되는 신학적 용어가 어떤 상태를 나타내므로, 바로 위의 제2-1항에서 보았듯이, 어떤 "힘" 을 나타내는 "생명" 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살아 있음(生)" 이라는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삶" 이라는 단어로 번역하는 것이,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문헌들에서 "life" 로 번역되는 표현의 원 의미에 더 가까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1월 21일] 이것은 또한 다음의 논문 제60쪽에서, "life" 에 대응하는 우리말 번역 용어를 "생명(生)" 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부터도 또한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philosophy.snu.ac.kr/center/analysisPDF/7-25.pdf [옛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info/토픽맵에_기초한_철학_디지털_지식_자원_구축_1_072.pdf [새 주소; 2023-11-26] [이상, 내용 추가 끝]
2-2.
1391(사는 삶); 2038(사는 삶); 2813(삶). 바로 위의 나열은, "life in Christ" 에서 "life" 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의 해당 항들에서 어떻게 번역하였는지를, 필자가 직접 확인한 후에, 괄호 안에 표기한 것입니다.
(중간 결론 1 계속) 즉,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영어로 "life in Christ" 로 번역되는 표현에서 "life" 가, "생명" 대신에, "삶"이라고 번역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는데, 다만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 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 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나은 직역 번역(lietral translation)이라는 생각입니다.
2-2-2. 그리고,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 대한 "new life in Christ" 으로 검색한 결과는
여기를 클릭하면 다음의 항들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68(새로운 생명); 735(새로운 생명); 740(새로운 삶); 1254(새 삶); 1277(새 생명). 바로 위의 나열은, "new life in Christ" 에서 "new life" 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의 해당 항들에서 어떻게 번역하였는지를, 필자가 직접 확인한 후에, 괄호 안에 표기한 것입니다.
(중간 결론 1 계속)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서 "life" 가 벌다른 뚜렷한 이유 없이, "생명" 혹은 '삶"으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동일한 번역자 한 분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전문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도, 두 명 이상의 분들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을 임의적으로 나누어서 할당된 본문에 대하여 번역을 한 후에 취합하였던 것 같음), 그 결과 지금 지적하고 있는 문제가 발행하였다는 생각이며, 그러나 이미 말씀드렸듯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영어로 "new life in Christ" 로 번역되는 표현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삶"으로 일관성 있게 그리고 원 용어의 의미에 충실하게 번역되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68항, 735항, 1277항에서 "새로운 생명" 혹은 "새 생명" 으로 번역된 표현들은 모두 "새 삶" 으로 번역하는 것이, 번역 이전의 단어의 원 의미에 더 충실한 직역 번역(lietral translation)이라는 생각입니다.
2-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주어진 "life"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l/l139.htm Inward activity. The essence of a being to act from within; ranging from the life of God, which is identical with his nature, on through all the forms of life in the created universe. The higher a nature the more intimate what comes from it, for its inwardness of activity corresponds to its rank of being. Life is immanent activity, which begins and terminates within the living being.
삶/살아 있음/생명(生, life)
내향의 활동(inward activity)을 말합니다. 내부로부터 활동하는 한 개의 있음(a being act from within)의 본질(essence)이며, 그리고 하느님의 본성과 동일한(identical) 하느님의 삶(the life of God)에서부터 창조된 우주에 있는 삶의 모든 형식들에 이르기까지 입니다. 한 본성(a nature)이 고등일수록(the higher) 이 활동으로부터 나오는 바는 더 내재적인데(intimate), 이는 활동의 그 내향성(its inwardness)이 있음(being)의 그 등급(its rank)에 대응하기 때문입니다. 삶은, 살아있는 있음(the living being) 안쪽에서 시작하고 그리고 끝내는(terminate), 내재하는 활동(immanent activity)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11월 21일] 게시자 주 2-3:
출처: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view.asp?ctxtIdNum=1522
생명이란 '내적인 동력(動力)'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내부로부터 행동하는 존재의 본질이다. 위로는 신의 생명(이것은 신의 본성과 동일하다)에서부터 아래로는 피조물 세계의 모든 생명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로 적용되는 용어이다. 본성(本性, natura)이 고도한 것일수록 거기서 생기는 것은 더욱 본질적이게 마련인데, 그 까닭은 행동의 내재성이라는 것이 존재의 순위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내재적인 행동인 것이며, 생물 내부에서 시작하여 내부에서 끝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2) 다음은 The New Catholic Dictionary 1910에 주어진 "life"에 대한 설명인데, 이 설명의 뒤에서 두 번째 문장은, "life" 가 수반하는(involves) 세 개의 본질적 요소들 중의 한 개가 바로 "내적인 동력(動力)"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saints.sqpn.com/ncd04772.htm
The perfection in virtue of which an agent is capable of immanent action. Bodies as natural units are found to be possessed of various kinds of activity. Organic or living bodies have an organized structure of heterogeneous parts; inorganic bodies are homogeneous in structure. Organic bodies through the action of the physical and chemical forces inherent in them produce effects which always pass from the agent to some object distinct from it; these activities are called transient. The organized bodies, however, besides exercising transient activities are endowed with other activities never found in the inorganic, e.g., nutrition, growth, and reproduction; some organized bodies are also capable of consciousness and the various local motions arising therefrom; living man is conscious of forming judgments, of reasoning, and of striving for the attainment of non-sensible good. All of these activities are living, vital, and in the corporeal universe are found to be the exclusive properties of bodies which we call living. The definition of life, then, must be found in some quality common to all of these functions and to these alone. Analysis shows that everyone of them results in a term which remains, and must of its nature remain, as a perfection of the natural unitary whole producing it. Hence the name immanent activity, also called self-movement. It involves three essential elements: the unit of activity must be a natural unitary whole, not merely an artificial unit; the efficient cause immediately eliciting the activity must be a power within this unit; the immediate term of the activity must remain as a perfection of the unit. Thus an organism in nutrition by its own active power produces as a term the anabolism within the cells comprising the organism.
삶/살아 있음/생명(生, life)
그것의 덕분으로 어떤 행위자(an agent)가 내재하는 행위(immanent action)를 할 수 있는 완미(perfection)를 말합니다. [...] 이 용어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본질적 요소들을 수반합니다(involves): 활동의 단위(unit)는, 단순히 어떤 인공적인(artificial) 단위가 아니라, 어떤 자연적 단일의 전체(a natural unitary whole)이어야 하고, 이 활동을 즉시 도출하는(elicit) 동력인(動力因)/ 작용인(因)(the efficient cause)(*)은 바로 이 단위 안쪽에 있는 어떤 힘(a power)이어야 하며, 그리고 활동의 즉각적 말단(immetiate term)은 이 단위의 어떤 완미(a perfection)로서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
----- [이상, 내용 추가 끝]
2-4.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life"에 대한 설명입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해당 요약 설명을 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항들의 번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catechism/text/glossary.shtml#l
삶/살아 있음/생명(生, LIFE): 창조된 인간의 삶(created human life) 및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당신 하느님의 삶(His divine life)이라는 하느님의 선물(gift) 둘 다를 말합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그 통상의(ordinary) 의미를 넘어서, 예수님께서는 ‘삶(life, 살아 있음)’을 당신 고유의 하느님의 성삼위적 존재(divine Trinitarian existence) 안으로 어떤 참가(a share in)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셨는데, 이 참가는 죄로부터 돌아서며(turn away from, 외면하며) 그리고 자신들의 심장(hearts)들을 하느님의 영속적인 사랑(abiding love) 쪽으로 개방하라(open)는 당신의 초대(invitation)에 응답하는 자들에게 가능하게 됩니다(becomes possible). 영원한 생명/삶(eternal life)은 이러한 선물이 하늘(heaven, 천당)이라는 축복받은 상태(blessedness of heaven)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임을 나타냅니다(signifies). 바로 이 하느님의 선물은 믿음의 ‘삶’(‘life’ of faith) 및 세례의 ‘새 삶’(‘new life’ of Baptism)과 함께 시작하고(CCC 1225), 성화은총으로 나누어 주어지며(is communicated)(*)(CCC 1997), 그리고 하늘(heaven)에 계신 거룩한 성삼위와의 삶과 사랑(life and love)에 있어서의 통공(communion, 하나 됨) 안에 있는 완미(完美)(perfection)에 도달합니다(CCC 1023).
-----
2-5.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CCCC) 제145항 전문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va2005cccc.htm 733-741
The Spirit builds, animates and sanctifies the Church. As the Spirit of Love, he restores to the baptized the divine likeness that was lost through sin and causes them to live in Christ the very life of the Holy Trinity. He sends them forth to bear witness to the Truth of Christ and he organizes them in their respective functions so that all might bear “the fruit of the Spirit” (Galatians 5:22).
(번역문)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3. 3-1.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5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24.HTM (발췌 시작) -----
735 그분(성령)께서는, 그런 다음에, 우리의 상속(inheriance, 유산)(*)에 대한 "보증(pledge)" 혹은 "첫 수확물(the firstfruits)"을, 즉, 거룩한 성삼위의 바로 그 [영원한] 삶/생명(life, 살아 있음)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이 [영원한] 삶/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미) 사랑하셨던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as)" 사랑하는 것(to love)에 있습니다/존재합니다[quae diligere est "sicut Ipse dilexit nos"].127 바로 이 사랑[1코린토 제13장의 "애덕(charity)"](**)은,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힘(power)"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128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삶/생명의 원천(the source of the new life)입니다.
-----
게시자 주 3-1:
즉, 그 주어가 성령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5항의 첫 문장은, 로마서 8,23에서 말하는 "거룩한 영의 첫 수확물(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이, 1코린토 제13장에 서술되어 있는 애덕(charity) 자체인 것이 아니라, 이 애덕(charity)에 존재하는/있는 성삼위의 바로 그 [영원한] 생명/삶(life, 살아 있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음을 우리는 이 글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2) 다른 한편으로, 이 첫 수확물(the firstfruits)은 "산출물"이기 때문에 그 자구적 의미에 따라 당연히 열매(fruit)로 불려야 하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문맥의 전후 안에서 이것을 파악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어지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6항의 첫 번째 문장, 그리고 또한 성령의 열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위의 제2-5항에 발췌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145항의 마지막 문장을 꼭 참고하십시오.
(3)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고
성령의 선물(gifts)들과 성령의 열매(fruits)들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3-1-1: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25항 전문입니다. 바로 위의 졸번역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 하십시오. 예를 들어, 위의 제2-5항에 발췌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145항에서의 요약 설명 때문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5항에서 영어로 "life" 로 번역되고 있는 표현을,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설명에 의하면 어떤 힘을 뜻하는 "생명"으로 번역하는 것 보다는, "삶" 으로 번역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번역임을 알 수 있습니다:
-----
3-2. 다음은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6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24.HTM (발췌 시작) Through the Holy Spirit we are restored to paradise, led back to the Kingdom of heaven, and adopted as children, given confidence to call God "Father" and to share in Christ's grace, called children of light and given a share in eternal glory.131
736 거룩한 영(the Spirit)의 바로 이 힘(power)에 의하여, 하느님의 자녀들은 많은 양의 열매(much fruit)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참 포도나무(true vine)에 이미 접목하셨던(grafted) 그분께서 장차 우리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거룩한 영의 열매(the fruit of the Spirit)"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 사랑(애덕), 기쁨(joy), 평화, 인내, 호의(kindness), 선의(goodness), 성실(faithfulness), 온유(gentleness), 절제(self-control)."129 "우리는 거룩한 영에 의하여 살아가고,"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더 많이 포기할수록, 더 많이 우리는 "거룩한 영에 의하여 걷습니다(walk by)."130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낙원(paradise)으로 회복되고,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로 돌아가게 인도되며, 그리고 자녀들로서 입양되고, 하느님을 "아버지 (성부, Father)" 라고 부르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함께 공유하는 확신이 주어지며, 빛의 자녀들이라고 불리고 그리고 영원한 영광 안에 참가(a share in)가 주어집니다.131
-----
게시자 주 3-2: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6항 전문입니다. 이 항에서 또한 "거룩한 영(성령)의 열매"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위의 제735항에서, 성령의 첫 열매를 말하는, "거룩한 영의 첫 수확물(the firstfruits)", 즉, "거룩한 영의 영원한 생명/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735.htm
자녀로 받아들여집니다. 또한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신뢰심이 생겨, 그리스도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으며, 빛의 자녀라 불리고,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115) 됩니다.
-----
게시자 주: 여기를 클릭하여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6항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면,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6항에는 있는 "much" 가, 바로 위의 우리말 번역문과 마찬가지로,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3-3. (번역 오류) 다음은 "주석 성경"에 주어진 로마서 8,23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3-3: (1) 위의 "주석 성경"의 로마서 8,23에 대한 주석이 프랑스어본 공동번역성경(TOP)의 주석을 우리말로 직역 번역한 것인지 혹은 별도로 국내에서 "주석 성경"의 주석을 마련한 분들에 의하여 대체된 주석인지에 대하여 필자는 알지 못합니다.
(2) 어찌되었든지 간에, 위의 "주석 성경"의 로마서 8,23에 대한 주석은, 명백하게,
(i) 위의 게시자 주 1-2의 해당 단어의 그리스어 어원과 충돌하고, 그리고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주석에서, 특히, 다음에 주목합니다:
[여기서 "성령" 과 "맏물" 은 동격이다. 곧 '맏물 곧 성령', 또는 '성령으로 이루어진 맏물' 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반대로, 하느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내려 주시는 "맏물" 곧 "첫 선물" 을 뜻한다. 이러한 "첫 선물" 은 미리 베풀어지는 부분적인 선물이며,]
다른 한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자신의 저술인 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q38, a2 에서, 성령(the Holy Spirit)에 고유한 이름(proper name, 고유명사) 이 "선물(gift)" 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라도,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중에 "부분적인 선물(partial gift)" 이라는 표현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2005년에 초판 발행된 "새 번역 성경" 로마서 8,23에서, 그냥, "성령의 첫 맏물을 받은" 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였더라면 이 글과 같은 글을 작성할 이유도 없고 또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을, 무슨 이유로, 대신에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였고, 그리고, 위의 제3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심지어 1992년에 초판 발행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5항에 주어진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해석/가르침에 의하면 교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주석을 "주석 성경"의 로마서 8,23의 주석으로 제시하였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과거에 국내의 개신교측과 함께 작업하여 1977년에 초판 발행된 공동번역성서 로마서 8,23에서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라고 또한 의역 번역을 하였던 것 때문인지요???
3-4. 다음은 NAB(New American Bible)에 주어진 로마서 8,18-27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romans/romans8.htm
[18-27]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기로 예정되어 있는 영광은 현재의 삶에 있어서의 고통받음들을 훨씬 더 능가합니다. 바오로는 창조된 세상의 운명이 믿는 이들에게 속하는 미래와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considers). 이 운명이 죄에 의하여 야기된 부패라는 형벌(penalty of corruption)에 있어 공유하듯이, 마찬가지로 또한 이 운명은, 하느님의 백성의 궁극적 해방을 이룰, 속량 및 미래의 영광이라는 혜택(benefits)들에 있어서도 장차 공유할 것입니다(로마 8,19-22). 확고한 예상에 대한 끈기있는 인내 후에, 거룩한 영의 현존의 충만한 수확(the full harvest of the Spirit's presence)은 장차 실현될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믿는 이들은 첫 수확물(the firstfruits), 즉(i.e.,), 거룩한 영(the Spirit)을, 반란을 일으키는 옛 자아(old self)의 영향으로부터 자신들의 몸들의 전적인 해방(total liberation)에 대한 한 개의 보증(a guarantee)으로서, 향유합니다(로마 8,23).
게시자 주 3-4: (1) 1970년에 초판 발행된 이 NAB(New American Bible) 주석의 마지막 문장의 문제점은, 위의 제3-1항에 발췌한, 1992년에 초판 발행된 그리고 그 권위에 있어 NAB 주석의 권위보다 월등히 더 존중받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35항의 가르침과 충돌함에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5월 30일] (2) 그리고 1970년에 초판 발행된 이 NAB(New American Bible) 주석의 마지막 문장의 문제점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의 로마서 8,23에 대한 해석과도 충돌함에 있습니다: https://aquinas.cc/la/en/~Rom.C8.L5 <----- 필독 권고
3-5. 다음은, 교황청 소속 성직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이며, 로마서 8,23에 대한 그리스 교부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7-407년)의 해설 전문인데, 바로 위의 게시자 주 4-3: 제(2)항에 안대된 로마서 8,23애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해설처럼, 위의 제3-4항에 발췌된 NAB 주석과는 대단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바로 여기서 "성령의 첫 수확물"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있다(is defined)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dmd.htm#dr (발췌 시작) Rm 8,23. “And not only they, but ourselves also, which have the first-fruits of the Spirit, even we ourselves groan within ourselves.” (이상, 발췌 끝)
3-6. 다음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욛 1998년 5월 20일 수요일 일반 알현 강론 말씀에서 발췌한 바인데, 바로 위의 게시자 주 4-3: 제(2)항에 안대된 로마서 8,23애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해설 및 위의 제3-5항에 발췌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해설처럼, 위의 제3-4항에 발췌된 NAB 주석과는 대단히 다른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content/john-paul-ii/en/audiences/1998/documents/hf_jp-ii_aud_20051998.html (발췌 시작) 3. St Paul in turn highlights the aspect of renewal and the eschatological dimension of the Spirit’s work: the Spirit is seen as the source of the new and eternal life that Jesus communicates to his Church.
In the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we read that Christ, the new Adam, by virtue of the Resurrection, became “a life-giving spirit” (1 Cor 15:45): he was transformed by the vital power of God’s Spirit so as to become, in turn, a principle of new life for believers. Christ communicates this life precisely through the outpouring[분출/다량의 주어짐] of the Holy Spirit.
Believers no longer live as slaves under the law, but as sons, because in their hearts they have received the Spirit of the Son and can cry out: “Abba, Father!” (cf. Gal 4:5-7; Rom 8:14-16). It is a life “in Christ”, that is, a life of belonging exclusively to him and of incorporation into the Church: “For by one Spirit we were all baptized into one body” (cf. 1 Cor 12:13). The Holy Spirit gives rise to faith (1 Cor 12:3), pours love into our hearts (cf. Rom 5:5) and guides the prayer of Christians (cf. Rom 8:26).
As the principle of a new existence, the Holy Spirit also produces a new and active dynamism in the believer: “If we live by the Spirit, let us also walk by the Spirit” (Gal 5:25). This new life is opposed to that of the “flesh”, whose desires displease God and enclose the person in the suffocating prison of an ego turned in on itself (cf. Rom 8:5-9). Instead, by opening himself to the Holy Spirit, the Christian can taste the fruits of the Spirit: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etc. (cf. Gal 5:16-24).
According to Paul, however, what we now possess is only a “down payment” or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cf. Rom 8:23; cf. also 2 Cor 5:5). In the final resurrection, the Spirit will complete his masterpiece by bringing about, for believers, the full “spiritualization” of their bodies (cf. 1 Cor 15:43-44) and in some way involving the whole universe in salvation as well (cf. Rom 8:20-22). (이상, 발췌 끝) [이상, 2020년 5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 그러므로 애덕(charity)은 삶/생명(살아 있음, 生)으로 채워져 있다. "the first fruits of the Spirit" site:vatican.va
0 1,200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