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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본당 성시간 묵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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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운 [lsu] 쪽지 캡슐

2005-11-30 ㅣ No.4572

  


2005년 12월 성시간

1989년 7월11일 서울교구 사제 피정시 추기경님 강론 중에


기   도



많은 숫자의 신자가 있지만 신자들의 절반가량은 냉담자 아니면 행불자입니다.

또한 우리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신심에는 열심히 하기는 합니다마는, 신앙이 아직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고, 생활 가치관이 신자 아닌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든지, 심지어 낙태가 교회가 엄금하는 것인데도 신자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을 뿐 아니라 비율로서는 더 높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신자 재교육과 신앙의 내실화는 참으로 중요한 사목문제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신앙 내면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 없이 우리는 하느님 안에 살 수 없고 하느님 안에 살지 않으면, 우리는 미사성제나 성사 거행을 직무상 행하는 사람으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제가 전에 신부이면서 정말 경본과 성체조배, 묵주기도 등 의무적으로 하는 것 외에 달리 기도해 본 일이 없다가, 루르드에서 기도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 평신도를 만나 그분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평신도들이고 세속 가운데 살면서도 기도와 함께 복음적 삶을 사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 한사람이 “어떻게 기도하는지를 기도함으로써 알 수 있습니다.”라고 답을 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이요, 그 이상의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기다림이라고 말합니다.

왜 기다림이며 무엇을 기다리는 것입니까?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께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주여 말씀하소서.”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하느님께 무엇을 말씀드리고 무엇을 주십시오. 하며 청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나와 남을 위해 기도로서 영육간의 은총도 빌고, 건강도 빌고, 병 치유도 빌고, 마음의 위로, 평화 …… 등 등 빌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 친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하느님께 말씀을 드렸어도 한 번도 제대로 하느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 기회를 하느님께 드려본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기도는 일방적이고 따라서 도무지 깊어질 수가 없습니다.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가 되고, 친교가 될 때에 깊어집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여, 말씀하소서.”하고 기다리는 자세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럼 그렇게 기다리면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오시느냐?

인간과 인간 사이에 대화에서와 같은 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히 내 마음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이런 침묵의 기도를 매일같이 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밤의 이슬을 내리시어 대지를 적셔 주듯이 우리 마음을 그렇게 적셔 주실 것입니다. 한 주일이나 열흘을 두고 대조해 보면 이 차이를 즉시 알 수 있습니다. 기도 중에 대부분의 시간을 분심으로 보냈다 할지라도 기도를 하면서 지낸 열흘과 기도 없이 지낸 열흘의 차는  분명히 그 차이를 느껴질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더욱 깊게 마음속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말씀해 오시는 것을 기다리면서 내가 원하는 답을 기다린다면 - 내가 바라는 무엇을 답으로 주실 것으로 기다린다면 - 그것은 참된 기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친구와 사귈 때 - 그 친구 또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것만을 얻어 내려는 태도와 같습니다. 그것은 참 우정도, 사랑도 아닙니다.



기다림의 자세는 정말 빈 마음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내게 무엇을 주시든지 무엇이든  그것이 내게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전적으로 열린 마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께서 구세주 잉태의 소식을 전해 듣고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하며 완전히 자신을 주님의 손에 내맡긴  그 자세입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오직 주님뿐이어야 합니다. 참으로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처럼 오직 하느님으로써 족하다는 생각으로 주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열고 나와 있는 자세,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는 진정 이런 기도를 하기 위하여 혼자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본회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대가 자기 자신과 혼자 있을 줄 모르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이다.’ 즉 기도 속에 혼자 있을 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성자들이 고독 속의 기도 - 특히 사막에서의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의 깊은 친분을 맺고 이로 말미암아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에도 고독과 침묵 속의 기도는 참으로 필요합니다. 이런 의미로 어떤 이는 우리는 각기 자기 사막을 가질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 사막은 자기 방의 한 모서리일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매일 주님과 마주 앉을 줄 알면 말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분은 나를 한 없이 사랑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시작하면 참으로 좋습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지 말고, 그저 하느님 앞에 나와 있는 마음, 기다리는 마음이면 족합니다. 하루에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이것은 하느님의 시간이니 그분께 드린다. 그리고 어차피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내 생활이니 하루에 이만큼의 시간은 하느님 앞에서 낭비해 보겠다.” 생각하고, 분심 중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그 시간만큼 봉헌한다면 우리는 큰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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