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로미오] 사생활 움치는 몰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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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1999-10-15 ㅣ No.891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이경규의 너스레에

국민  모두가 공감했던 것은 아니다. TV의 방자함을 근심하는 시청자

중에는 당시 연출자였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결코  몰래카메라

를  사랑하지 않는다. 국민 모두를 걸어 그따위 가학적인 프로그램을

띄우지 말기 바란다. 굳이 해야겠다면 `몰래카메라를 좋아하시는  일

부 시청자 여러분’이라고 고쳐 말하라"고 내게 엄중하게 항의했던 기

억이 난다.

 

   요즘 들어 부쩍 몰래카메라 혹은 몰래 녹음기(도청, 감청)의 폐해

가 TV 뉴스에 자주 드러나고 있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엿듣기를

즐기는 사람의 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그런 부질없는  욕

망을 가능케 한 기술이 발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뭏든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금언이 여전히 유효한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누군가의  삶을 엿보거나 엿듣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과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배금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한  풍경이 세기

말을 암울한 도청, 감청의 시대로 만든 것이다.

 

   이경규의 초창기 몰래카메라와 지금의 그것은 근본적으로  마음의

싹부터 다르다. 이경규의 초심이 국민 아니 시청자와 `몰카’의  대상

까지 함께 즐겁게 하고자 했다면 지금 여관이나 목욕탕, 혹은 사무실

에 설치한 몰래카메라는 순전히 몇몇 사람의 이기적 탐욕을 만족시킨

다는 게 다르다.

 

   그들은 남의 치부나 약점을 소리나 영상으로 기록해 둠으로써  더

럽게  욕정을 소비하거나 치사하게 돈을 버는 자들이다. 이경규의 몰

카는  대단히 신사적이었다. 우선 연출자인 나는 그 대상이 결정되면

반드시 그의 의향을 미리 떠보았다.

 

   "몰래 카메라가 침입(?)해도 되겠습니까"

 

   그런 제의를 받으면 "난 절대로 안 당할 거니까 한번 해보세요"라

고  반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마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

는  사람이 아니면 애당초 그런 프로포즈를 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본인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극히 일부 연예인 중에는 "난

정말 원치 않습니다. 만약 당하게 된다 해도 결코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을  거예요"라고 미리 자신의 저항의지를 굳건하게 밝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몰래 카메라에 포획되지 않았다.  선전포고

를  받고 즐거운 게임에 참여하기로 응낙한 연예인은 그때부터  한달

혹은 두 달간 매사에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점잖은 사회자 이계진씨 같은 경우는 예비군 훈련 통보서가  날아

왔을 때도 `이거 혹시 몰래 카메라팀이 보낸 거 아닐까’ 의심이 가더

라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게임이  끝나는 순간은 이경규가 "지금까지 몰래  카메라였습니다"

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백이면 백 당한 사람들은 무릎을 치며 패배

를 자인하지만 슬퍼하거나 분노하는 일은 없었다.

 

   간혹  심하게 억울함을 표할 때에도 "한 사람 희생해서  일요일밤

많은  시청자가 스트레스를 풀고 흔쾌하게 웃었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닙니까"라는 한 마디에 봄눈 녹듯 그의 감정은 사그러들었다.

 

   모두가 기분 좋은 몰래 카메라는 사랑과 호의를 바탕에 깔고 해야

만 가능하다. 그것은 깜짝 생일파티를 몰래 준비한 친구나 가족의 마

음과  비슷하다. 누가 자기의 사생활을 엿보거나 엿듣는다면  길길이

펄쩍 뛸 게 분명하면서 남의 은밀한 삶을 도둑질하는 일에는  태연하

다면 그는 물건을 훔치는 자보다 더 나쁘다.

 

   그의 죄목은 영혼절도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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