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RE:5336]듣는 사제? 말하는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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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11-18 ㅣ No.5338

은주야!

 

네 글을 읽으면서 중학생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 한권이 떠올랐다.

 

미카엘 엔데가 지은 "모모"

 

모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모모는 끝까지 들어주었어. 모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스스로 치유되었지.

 

갈수록 사람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남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통로로 워낙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직접 듣기 전에 이미 판단을 해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미 자신이 듣고 알고 있는 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한번 내려진 판단을 뒤짚어 없기는 하늘에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지.

 

내가 모모 정도는 되지 못할지라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 그 사람이 누구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사실 말을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참 많이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나를 사제로 부르신 까닭이 가슴에 응어리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기 위함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기꺼이 듣고 싶다. 물론 내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만한 능력도 없고 나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그 사람의 일에 대해 더 절실한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야. 그러기에 다만 들을 뿐이다. 누군가 나에게 말하고 나는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그 안에 주님께서 함께 하시어 당신 보시기에 참 좋은 결론을 맺어주시리라 확신하기에 말이야.

 

우리 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억지로 찾아가서 듣지는 못할지라도 굳이 귀를 막을 필요까지 있을까 싶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기를 바라며.

 

 

주님 안에 사랑담아 은주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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