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성모병원 노동자 인권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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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중 [lagaros] 쪽지 캡슐

2002-06-04 ㅣ No.1995

가톨릭중앙의료원 노동자들의 인간선언

 

 

파업투쟁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고통과 상처는 깊어갑니다.

조합원들은 비좁고 딱딱한 시멘트바닥 위에서 하루를 보내고, 새우잠을 잡니다.  엉덩이에는 땀띠가 나고, 밤에는 모기에 물어뜯기는 고통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루빨리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박한 바램이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자들이 농성장 옆을 지나갈 때, 환자곁을 떠나 투쟁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볼모로 삼아 대화의 문을 걸어잠그고 파업을 장기화시키고 있는 병원의 잘못된 행태에 굴복할 수 없기에 "반드시 승리해서 당당하게 환자곁으로 돌아가자."는 속울음섞인 다짐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고통, 뼛속으로 스며드는 고통은 바로 병원관리자들, 신부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 믿음이 깨지고 있는데 대한 허탈감 입니다.

병원관리자들과 신부들에 대한 소박한 소망과 바램은 실망으로 바뀌었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실망을 넘어 분노로, 분노를 넘어 적개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가슴은 숯검댕이가 되고, 불신의 칼날로 난자당하고 있습니다.  

 

왜 대화를 외면하십니까? 가장 낮은 곳에 귀기울이고, 마음의 문을 열고, 핍방당하는 자의 편에 서야할 당신들이 아닙니까?

파업에 돌입하기 전, 왜 당신들은 대화의 문을 걸어잠궜습니까?

우리들의 요구는 부당하지도 무리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대화의 문을 열었다면 파업돌입하지 않고도 충분히 타결할 수 있었습니다.

왜 파업을 유도했습니까? 얼마든지 대화로 풀 수 있는 일을 이토록 꼬이고 비틀어지게 만들었습니까?

 

병원은 ’불법파업’이니, ’징계’와 ’무노동무임금’은 철저하게 적용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파업을 하루만에 끝내고 타결한 곳이든, 사흘, 나흘, 열흘 파업이 계속된 곳이든 그 곳의 병원 어디에서도 무노동무임금을 적용한 곳이 없고, 징계를 한 곳이 없습니다. 파업이라는 사태를 겪었지만 노사 자율의 원칙을 지키고, 서로의 믿음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 평화와 화해를 이념으로 내세운 병원관리자들, 신부들은 왜 이토록 징계와 무노동무임금을 주장하면서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내몰고 있습니까?

 

노동조합이 적인가요? 사탄인가요? 병원은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여 노동조합을 깨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화와 협상의 문을 걸어잠근 채 노동조합이 무릎꿇기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악법을 동원하여 협박하고, 위협하고, 조합원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겁주고, 복귀율을 높이기 위해 공작하고, 조합원들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주고, 가족들을 협박하고,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고,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를 갈라놓고... 악덕사업주조차 하지 않는 온갖 탄압과 부당노동행위를 다 저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의 신념과 생각을 존중하고, 양심을 지켜주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줘야 할 당신들이 어떻게 이렇게 인간을 처참하게, 비참하게 짓밟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려고 이러십니까?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 양심과 인권을 이념으로 하는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악덕사업주를 능가하는 부당노동행위와 탄압이 벌어진다면, 가톨릭중앙의료원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국민들속에 신뢰받고, 역사속에 큰 역할을 해온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톨릭중앙의료원이 국민들에게 지탄받고, 노조탄압으로 악명을 떨치고, 노동자 인권과 평화를 파괴하는 곳으로 낙인찍히고, 결국은 가톨릭중앙의료원이 파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입니까?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합니까?

 

우리 조합원들은 파국을 원하지 않습니다. 결코 파업이 장기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원만하게 타결되어,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 그동안 못다한 정성을 환자분들에게 돌려드리고 싶습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소박한 소망과 바램을 짓밟지 말아 주십시오. 더 이상 가톨릭의 이념을 더럽히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들은 언제나 대화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악법과 탄압의 칼날을 거두고 대화의 광장으로 나와 주십시오.

만약 병원관리자들과 신부들이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계속 굴복을 강요하며 노동자탄압을 일삼고,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아부친다면, 우리 조합원들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그 ’잘못’에 철퇴를 가할 것입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양심의 이름으로, 숭고한 가톨릭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불의앞에 무릎꿇지 않을 것이며, 탄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를 파괴하고, 인간을 짓밟고, 가톨릭 이념을 배반하고, 가톨릭중앙의료원을 파탄으로 몰아붙이는 세력에 맞서 정의롭고 역사적인 투쟁을 전개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악질사업주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악법의 올가미에 묶인 범법자가 아니라 정당한 요구를 갖고 정당한 투쟁을 하는 인간임을 선언합니다.

 

2002년 6월 3일 / 가톨릭중앙의료원 파업투쟁의 현장에서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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