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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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3-07-22 ㅣ No.2733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나해. 2003. 7. 20)

                                                  제1독서 : 예레 23, 1 ~ 6

                                                  제2독서 : 에페 2, 13 ~ 18

                                                  복   음 : 마르 6, 30 ~ 3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한 농부가 정원의 잡초를 뽑고 있었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잡초를 뽑는 농부의 얼굴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잡초만 없다면 정원이 깨끗해질 텐데, 어째서 하느님은 이렇게 쓸모없는 잡초를 만들었을까?”  농부는 혼자서 푸념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미 뽑혀 마당 한 구석에 누워있던 잡초가 농부에게 대꾸했습니다.  “당신은 나를 지긋지긋한 존재라고 말했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답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지만 우리도 당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어요.  우리는 뿌리를 흙 속에 뻗음으로써 흙을 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뽑은 뒤에는 흙이 자주 갈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또 비가 내렸을 때에는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 준답니다.  결국 우리는 당신의 정원을 지켜온 셈이지요.  만약 우리가 없었더라면 당신이 꽃을 가꾸려 해도 비가 흙을 씻어내고, 바람이 흙을 날려 벼렸을 겁니다.  그러니 꽃이 아름답게 피었을 때 우리의 수고를 기억해 주기 바랍니다.”

  이 글을 보면 이 세상에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 필요 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찮고 귀찮게 생각되고, 곡식이나 다른 식물이 자라는데 방해된다고 생각되었던 잡초도 그 나름의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리 하찮아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잡초를 다른 농작물을 위해 뽑아야 하겠지만 그것이 이 세상에서 없어질 정도로 나쁘게 생각하기보다 그들의 역할을 이해한다면 아마 잡초를 사랑하는 마음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은 무시하고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멋있어 그 주인공과 같은 인물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도 모두 주인공만 하려고 합니다.  모두가 주인공하려고 하다 보니 자신이 왜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다 거짓말도 허풍도 떨게 되고 결국 놀지도 못하고 싸움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닌 각자의 삶 속에 자신은 주인공입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 다면 결국 우리는 다른 이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결국 친구들과의 우정과 우리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쉬기 위해 떠나신 당신의 일행을 찾아 육로로 먼저와 기다리는 군중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그들을 측은히 여기시어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피곤하고 지쳐있는 예수님의 일행들 정말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피곤하고 지쳤지만 군중을 위해 가르쳐 주십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모이게 합니다.  왜냐면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관심을 가져주고 배려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관심 없고 배려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처럼 돌보아야 할 양떼를 죽이고 흩뜨려 버려 헤매게 합니다.  흩어진 양떼는 평화를 얻기 보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군중을 측은히 여겨 자신의 피곤함을 잊어버리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분이라고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였습니다.”  평화를 주는 사람은 사람들을 헤쳐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담을 헐어버리고 화해시키는 분입니다.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며 서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바로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농부가 잡초의 고마움을 인정하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서로의 고마움을 인정하고 고마워한다면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그 사랑을 그 너그러움을 그 배려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매년 7월 셋째주일을 ‘농민주일’로 교회는 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농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농지 면적의 급격한 축소(한해 여의도 면적의 28.5배가 사라지고 있음-농약 오염 심각), WTO체제 아래 급격한 농산물 수입 개방(곡물 회사에 종속될 위험), 식량 자급률의 하락(식량 자급률 25% 쌀 제외 5%이하), 식량안보의 문제(농업 기반 무너짐 현재 매일 35,000명, 일년 2,800만 명 굶어 죽음-식량수출국에서 무기화 종속가능),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무분별한 수입(국민 건강의 위험.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음) 등의 문제를 도시민과 농민들이 함께 걱정하고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하는 날입니다.  농촌이 건강해야 우리가 건강하고 농촌이 살아야 우리가 살아 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을 기억하면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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