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공지사항 [필독] 성교요지 의 외유(外遊)(중국, 미국 등)의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s)들 [唐詩鈔選] [당시초선] [성교요지] 1990_ 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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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5 ㅣ No.1996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1. 들어가면서

 

우선적으로, 아래의 제1-1항, 제1-2항, 그리고 제1-3항에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수행한 그동안의 연구 결과들 중의 일부 유관 글/논문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1. 

1-1-1. 우리나라 조선에서 1785년에 발생한 을사추조적발 사건1791년에 발생한 진산 사건, 그리고 천주교를 국법으로 금지하고 이를 더욱 더 강력하게 집행하기 위하여 천주교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5가작통법"을 적용하기 시작한 1801년신유 박해를 비롯하여 1866년병인 박해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번에 걸친 참혹한 박해들의 결과로서, 이들 "성교요지"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인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의 대부분을 180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우리나라 조선에서 모두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85.htm <----- 필독 권고

[제목: 성교절요의 십계명 제1계에 대한 월권의 자의적 해설들이 한문 문화권에 초래한 참혹한 결과들; 2017-03-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8.htm <----- 필독 권고

[제목: 아담 샬 신부님의 주교연기 초판은 명나라 멸망 이전인 1643년에 발행되었다; 게시일자: 2017-11-2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23.htm <----- 필독 권고

[제목: 1791년5월 진산사건 직후 다수의 국내 성리학자들이 통문/상소들을 올린 결정적 근거는, 벗이었던 이기경의 폭로 배반으로, 성교절요 에 제시된 십계명의 제1계 해설들을 읽었기 때문; 게시일자: 2018-06-06]

 

1-1-2. 중국 청나라 조정에 전달된 우리나라 조선에서 1785년에 발생한 을사추조적발 사건1791년에 발생한 진산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다음은 1799년(청나라 가경 4년) 11월 17일정조실록에 기록된 서장관(書狀官) 한치응(韓致應)의 별단(別單)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sillok.history.go.kr/id/kva_12311017_008

(발췌 시작)

所謂西洋邪敎事, 或與朝紳間酬酢, 則以爲: ‘堂獄之說, 初不過愚惑匹庶之事, 而未始至於浸染蔓熾之境, 近因邦禁之截嚴, 委巷之間, 幾乎止熄’ 云云。

 

이른바 서양(西洋)의 사교(邪敎)[즉, 천주교]에 대한 일을 가지고 더러 [중국 청나라] 조정 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천당(天堂)과 지옥(地獄)에 대한 설은 당초 일반 서민들을 바보스럽게 미혹시키는 데 불과했던 것으로서 처음에는 점점 만연되어 치성해지는 결과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는 국가[주: 중국 청나라를 말함]에서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였습니다.

(이상, 발췌 끝)

 

1-1-3. 그리고 또한 중국 청나라 조정에 전달된 우리나라 조선에서 1801년에 발생한 신유사옥과 무관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1806년에 이르면, 중국 청나라 황제 가경제 치세 10년과 11년 시기에 대박해/대교난의 한 결과로서, 중국에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출판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이 금서(禁書)들이 되었음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우리나라 역관이 조선의 임금에게 보고한 바로서, 순조 6년(1806년) 2월 7일자, 일성록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21.htm <----- 필독 권고

 

1-1-4. 다른 한편으로, "성교요지"가 1778년 경에 이벽 성조(1754-1785년)에 의하여 작문되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지역 천주교회의 전승이며, 이 전승의 근거 문헌들은 (i) 좌수본 "성교요지"(ii)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입니다. [주: 이들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은 아래의 게시자 주 2-0항에 있음.]

 

1-2. [성교요지 한문 주해들 중의 개신교회 성경 용어들의 출처] 만천유고본 "성교요지", 즉, "만천유고"에 수록된, 49개의 장들로 구분된, "성교요지"의 각 장의 끝부분에 붙어 있는 한문 주해들은, 아무리 빠르더라도, 1863년 혹은 그 이후에 마련된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교요지", 2,15에서 사용되고 있는 "方蓋"(방개)를 두고서 "方舟"(방주)를 말한다고 설명하는 한문 주해가 붙어있는데, 그러나 "성교요지" 본문의 저자가 본문에서는 "方蓋"(방개)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또한 동시에, 한문 주해에서 "方蓋"(방개)기 "方舟"(방주)를 말한다고 설명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에, 따라서, "성교요지"의 한문 주해들의 저자는, "성교요지" 본문의 저자가 결코 아니며, 1863년 경 혹은 그 이후의 시기에 살아 있었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됩니다.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의 졸글/논문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4.htm <----- 필독 권고

[제목: 성교요지 본문에 필사 과정에서 추가된 한문 각주들 중의 개신교회 성경 용어들의 출처와 기원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7-10-26]

 

따라서, "성교요지"는, 그 본문이 어디에서 작문되었음과 무관하게, 아무리 늦더라도, 1863년 이전에 작문되었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됨을 알 수 있습니다.

 

1-3. [성교요지 본문의 원 출전(出典)들] "성교요지" 본문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인,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저술된,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은 중국의 명나라 말기의 시기까지, 즉, 중국에서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이 청나라 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1644년 이전의 시기에, 저술되었습니다. 지금 지적한 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의 졸글/논문들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들 중에 안내되어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0.htm <----- 필독 권고

[제목: 교회사 연구에 있어 판단의 기준/근거인 rectitude는 넓고 깊이 있는 성경 및 교리 지식이다; 게시일자: 2017-10-0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3.htm <----- 필독 권고

[제목: 주교연기, 천주강생인의, 천주강생언행기략 은 이벽 성조의 성교요지 5,1-10의 내용 출처 및 자구 출처이다; 2018-03-28]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9.htm <----- 필독 권고

[제목: 연대순에 있어 주교연기 까지 학습한 성교요지의 저자 이벽 성조는 신경 이 곧 성박록 을 말함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게시일자: 2018-05-04]

 

게시자 주 1-3: 최근(2019년 5월 18일)에, 이벽 성조(1754-1785년)가 그 작문자로 알려진 "성교요지"의 본문이 1863년 경에 중국에서 처음으로/최초로 작문되었다는 주장이 국내의 개신교회 측의 한 연구팀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거짓(false)임을, 오류(error)임을, 따라서, "성교요지"가 1863년 이전에 중국에 전달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작성한 졸글/논문들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을 요청드립니다:

 

1-4.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0.htm <----- 필독 권고

[제목: 성교요지 2,15의 방개方蓋 라는 단어의 출처는 중국이 아니고 우리나라 조선의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년)이며 그 의미는 이 문헌 중의 그림(건고建鼓)이 나타내는 바이다; 게시일자: 2019-05-30]

 

1-5.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 필독 권고

[제목: 세 번(1863년, 1897년, 1910년)에 걸쳐 중국 상해에서 마틴(Martin)에 의하여 출판된 책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들의 비교 분석과 그 결과들; 게시일자: 2019-06-18]

 

게시자 주 1: (1) 따라서, "성교요지"가, 중국에서 작문될 수 없고, 우리나라 조선에서 1863년 이전에 작문되었음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됨을 알 수 있습니다.

 

(2) 이번 글에서는, 바로 위의 제1-4항제1-5항에서 이미 말씀드린 다수의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문헌 증거(many detailed and positive documentary evidences)들과는 독립적인(independent)"성교요지의 외유(外遊)(중국, 미국 등)의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s)들"로서 필자가 또한 최근에 추가적으로(additionally) 이미 찾아낸 더 구체적인, 그리고 어쩌면 보통 수준의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실증적인 증거(positive evidences)들을 함께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3)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1 끝)

 

2. 사료 분석 I

 

2-0.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세 번(1863년, 1897년, 1910년)에 걸쳐 중국 상해(上海)에서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마틴(Martin)에 의하여 출판된 책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들과 1863년에 혹은 그 이전에 인쇄된, "The Analytical Reader" 별쇄본인, "쌍천자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0월 7일]

출처 0: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63_analyticalreade00martgoog_정오표가_없음.pdf [주: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 

[주: 바로 위에 안내된 자료는, 필자가 본글에 제시된 정밀한 비교/분석 작업 과정에서, 프린터로 출력하여, 본글에서 다 말씀드리지 않은 다수의 분석 결과들도 여백에 기록하면서, 들여다본 자료임. Part I 바로 앞에 Postscripts와 Contents가 있는데, 그러나 Contents의 부록(Appendix)에 나열된 정오표(Corrigenda)는 맨 마지막 페이지에 없으며, 낙장된 것으로 보임]

[이상, 2021년 10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63_analyticalreader00martiala.pdf [주: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 (2021년 10월 7일자 내용 추가) 맨 마지막 페이지에 정오표(Corrigenda)는 있으나, 그러나 Part I 바로 앞의 한 장[즉, 두 페이지, Postscripts 및 Contents]이 낙장된 것으로 보임 (이상, 2021년 10월 7일자 내용 추가 끝)]

 

출처 1-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63_쌍천자문_fr_Yale.pdf [주: 별쇄본]

출처 1-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63_쌍천자문_fr_Harvard_Yenching.pdf [주: 별쇄본]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97_analyticalreader00mart.pdf [주: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910_The_Analytical_Reader.pdf [주: 1910년 제3판 "The Analytical Reader"]

 

이들 자료들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서 지적된 바들과 이번 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정밀하게 비교/검토할 때에 들여다보아야 하는, 필수적인 자료들입니다.

 

게시자 주 2-0: 아래에 있는 본글 중의 여러 항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좌수본 "성교요지"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당나라 시대의 한시(漢詩)들을 발췌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의 본문들을 구성하는 한지(韓紙/漢紙)들을 모두 뒤집어서 마련된 후면(後面)들에 필사된, 왼손으로 쓰였다고 필사자가 또한 밝히고 있는, 다음의 출처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성교요지"를 말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4-1785_이벽/좌수본_성교요지_본문_in_당시초선_후면들_제1-4쪽_black.pdf  

 

그리고 최근에 들어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당나라 시대의 한시(漢詩)들을 발췌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의 본문들을 구성하는 한지(韓紙/漢紙)들을 모두 뒤집어서 마련된 후면(後面)들에는 "성교요지"오로지 필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글들도 필사되어 있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아래의 제3-1항에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만천유고본 "성교요지"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만천유고"에 수록되어 있는, 한문 주해/각주가 붙어 있는, "성교요지"를 말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4-1785_이벽/성교요지_in_만천유고.pdf

 

(3) 1863년 버젼 A1863년 버젼 B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 중에 있는 한 개의 단일한 한시(漢詩)의 두 개의 버젼들, 버젼 A[즉, 常字雙千(상자쌍천)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 버젼 B[즉, 常字雙千合釋(상자쌍천합석)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를 말합니다.

 

(4) 1863년 쌍천자문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출판년도도 표기되어 있지 않고 저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서문도 없는, 학교들에서 한 권의 철자책(a spelling book)으로서 사용하기 위하여 인쇄된, 별쇄본인 "쌍천자문"을 말합니다.

 

특히 바로 이 "雙千字文"(쌍천자문)이라는 표현은, 중국 상해에서 1863년, 1897년, 그리고 1910년, 총 세 번에 걸쳐 출판된 "The Analytical Reader" 제목의 책들 안의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표현입니다. 대신에, "常字雙千"(상자쌍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5) 1897년 버젼 A1897년 버젼 B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 중에 있는 한 개의 단일한 한시(漢詩)의 두 개의 버젼들, 버젼 A[즉, 常字雙千(상자쌍천)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 버젼 B[즉, 常字雙千合釋(상자쌍천합석)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를 말합니다.

 

(6) 1910년 버젼 A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1910년 제3판(주: 최종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본문 중에 있는 한 개의 단일한 한시(漢詩)의 한 개의 버젼, 버젼 A[즉, 常字雙千(상자쌍천)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를 말합니다.

(이상, 본글 중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에 대한 설명 끝)

 

(7) 참고로, 최종판인 1910년 제3판(주: 최종판) "The Analytical Reader"에는, 초판제2판에 포함되어 있었던 버젼 B[즉, 常字雙千合釋(상자쌍천합석)에 포함된 한시(漢詩)의 본문]가 삭제되고 없습니다.

 

(8) 저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서문도 없는, 학교들에서 한 권의 철자책(a spelling book)으로서 사용하기 위하여 인쇄된, 별쇄본"雙千字文"(쌍천자문)이, (i) 1863년 버젼 A의 인쇄 이후에, 그러나 1863년 버젼 B의 인쇄 이전에, 인쇄되었음, 그리하여 그 결과, (ii) 별쇄본인 "雙千字文"(쌍천자문)1863년 버젼 A를 따르고 있음 등에 대한 필자의 실증적인(positive) 고증/입증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제5항. 사료 분석 III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9) 아래의 제2항 제4항에서는, 최근에 들어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미 수행하여 파악한, 

 

(i) 좌수본 "성교요지"본문만천 유고본 "성교요지" 본문,  

(ii) 1863년 버젼 A 본문, 1863년 버젼 B 본문, 1863년 쌍천자문(雙千字文) 본문, 1897년 버젼 A 본문, 1897년 버젼 B 본문, 그리고 1910년 버젼 A 본문을, 


각각 총 2,016개의 낱글자들로 구성된, 이들 여덟 개의 본문들을, 상호 대조하면서 정밀하게 비교/검토한 결과들 중에서, 상이(相異)한 한자 낱글자들이 인지되는 유관 4언절구들을, 표(Table)들의 형식으로, 요약 정리하여 말씀드리고, 그리고 필자에 의하여 이들로부터 도출된 (이 글의 결론)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에 있는 표(Table)들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에 위에서 아래로 나열된 바들는, 이들이 인쇄된 연대순에 따라, 나열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글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취한 조치입니다만, 상이(相異)한 한자 낱글자들이 인지되는 유관 4언절구들을 누구든지 매우 손쉽게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해당 책들의 해당 페이지/쪽 번호들도 모두 구체적으로 밝혀드립니다.

(이상, 게시자 주 2-0 끝)

 

2-1. versus in 48,7

 

좌수본 성교요지 [제8면]

踧踖 [8열4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27면] 踧踖 [5열3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踧踖    [77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踧踖  [26a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踧踖   [128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踧踖    [78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踧踖   [130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踧踖    [78쪽]

 

 

게시자 주 2-1: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구부릴 구)가 ""(절둑거릴 구)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_Remark2-1_c1404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_Remark2-1_b0014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_Remark2-1_이체자_검색엔진.htm [주: 이체자(異體字) 검색엔진]

 

그런데, 일부 스마트폰 화면에서, 대단히 어려운 한자 낱글자 "𨄅"(즉, "")를 표시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글자의 이미지(image)는 "" 입니다.

 

(1) (이 글의 결론 1) 바로 위의 표(Table)로부터, (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버젼 A 둘 사이에서 어느 것으로부터 어느 것이 필사 혹은 인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i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동일한 필사대본/인쇄대본을 가짐을,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제1-4항제1-5항에 의하여,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3) 다른 한편으로, "The Analytical Reader"의 출판자인 마틴(Martin)이, 학교들에서 철자책(a spelling book)으로서 사용하기 위하여, 애초에 자신의 중국인 필기사 하사맹에에 요구하였던 세 개의 법칙들 중의 한 법칙은 오로지 기 선정된 2천자의 한자 낱글자들을 사용하여야 함이었는데,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낱글자 ""이 이들 2천자에 결코 포함될 수 없음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𨄅(절둑거릴 구)가 한국고전종합DB,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규장각 검색엔진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는 문제가 왜 존재하는지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에서 별도로 확인하였듯이, 대단히 명백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7.htm 

 

그리고 바로 위에서 지적한 바는 그 부정적 의미가 상당히 커서, 학교들에서 철자책(a spelling book)으로서 사용하기 위하여 애초에 자신의 중국인 필기사 하사맹에게 요구하였던 세 개의 법칙들 자체가, 언뜻 읽기에 "The Analytical Reader"의 독자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이 있을 듯 하게 보일 수는 있으나, 그러나 대단히 피상적(皮相的)인 그리하여 사실은 유명무실한 조건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상, 게시자 주 2-1 끝)

 

2-2. versus in 31,5

 

좌수본 성교요지  [제6면]

       [8열5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18면]  [3열1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63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18b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114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64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115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64쪽]

 

 

게시자 주 2-2: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_Remark2-2_c0516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6_Remark2-2_a01590.htm  

 

(1) (이 글의 결론 1) 바로 위의 표(Table)로부터, (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버젼 A 둘 사이에서 어느 것으로부터 어느 것이 필사 혹은 인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i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동일한 필사대본/인쇄대본을 가짐을,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제1-4항제1-5항에 의하여,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2-3.  versus  in 1,14

 

좌수본 성교요지  [제1면]

女兮         [6열4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1면] 女兮        [5열2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女兮事           [19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女兮           [1b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女兮           [82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女兮           [20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女兮           [83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女兮          [20쪽] 

 

 

게시자 주 2-3: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의 이체자(異體字)임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guoxuedashi.com/zidian/ytz_s1278m.html [옛 주소]

http://www.guoxuedashi.net/zidian/ytz_z6295m.html [새 주소]


(1) (이 글의 결론 1) 바로 위의 표(Table)로부터, (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버젼 A 둘 사이에서 어느 것으로부터 어느 것이 필사 혹은 인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ii) 좌수본 "성교요지"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동일한 필사대본/인쇄대본을 가짐을,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2) 따라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제1-4항제1-5항에 의하여,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2-4. versus in 20,4

 

좌수본 성교요지  [제4면]

露踐塵       [14열4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12면] 露踐塵    [1열4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露踐塵           [49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露踐塵         [13b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露踐塵          [104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露踐塵           [50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露踐塵          [105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露踐塵           [50쪽]

 

 

게시자 주 2-4: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1508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1529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1508[새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1529 [새 주소]


(1) (이 글의 결론 3)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 중의 해당 4언절구 중의 "은 필사본인 인쇄대본 중의 대응하는 4언절구 중의 ""의 판독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전후 문맥 안에서, "露踐塵"[졸번역: 이슬()/() 붙잡아 [자라남] 도우고(扶, nourish, raise, foster, 撫養) () 밟아()]이 "露踐塵"[졸번역: 이슬 문지르고/털고 티끌/먼지 밟아]보다 훨씬 더 부합함(conform)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79.htm <----- 필독 권고

 

그런데, 농부가 농사를 짓는 모습을 서술하고 있는 여기서의 전후 문맥 안에서 "露"(이슬 로)를 읽고서, 예를 들어, 신선(神仙)이 먹고 산다는 자양분 많은 물로 알려진, 천지가 상합하여 그리하여 내린다고 하는[출처:  《老子》:“天地相合,以降甘露。”] 아침 이슬을 말하는, 따라서 한 개의 시어(詩語)인, "露"(감로, 단 이슬)가 전혀 연상되지 않는 분들은, 틀림 없이, (i) 우리나라 조선과 중국에서 등급이 높은 과거(科擧)에 급제한 학덕(學德) 높은 유학자(儒學者)들과 (ii) 요즈음의 한시(漢詩)를 전공한 분들 중에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 (이 글의 결론 4) 따라서, 바로 위에 있는 (이 글의 결론 3)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2-5. 夜深投遠 및 挪負脫去 [좌수본 성교요지와 버젼 A] versus 挪負投遠 및 夜深脫去 [버젼 B] in 6,3 및 6,8 

 

좌수본 성교요지   [제2면]

... 夜深投遠 ... [7열2행]

... 挪負脫去 ... [8열2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4면]

... 挪負投遠 ... [6열3행]

... 夜深脫去 ... [7열4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夜深投遠 ... 挪負脫去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夜深投遠 ... 挪負脫去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挪負投遠 ... 夜深脫去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夜深投遠 ... 挪負脫去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挪負投遠 ... 夜深脫去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夜深投遠 ... 挪負脫去

 

 

게시자 주 2-5: (1) (이 글의 결론 5) 바로 위의 표(Table)로부터, 몇 개의 열들을 제외하고 각 열이 5개의 4언절구들로 구성된  좌수본 "성교요지"로부터, (i) 몇 개의 열들을 제외하고 각 열이 4개의 4언절구들로 구성된1863년 버젼 A의 인쇄대본인 필사본의 낱글자들의 배열이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에 있는 낱글자들의 순서대로 배치되면서 필사되었음은 자명하고, 그리고 또한 (ii) 몇 개의 열들을 제외하고 각 열이 4개의 4언절구들로 구성된1863년 버젼 B의 인쇄대본인 필사본의 낱글자들의 배열이, 상대적으로 오른쪽 열(R)과 왼쪽 열(L)에 있는 동일한 행(row)에 있는 인접한 두 개의 낱글자들로 구성된 두 개의 조(sets)들이 필사자의 착시(錯視) 등에 의한 인지 오류 때문에 상대적으로 왼쪽 열(L)과 오른쪽 열(R)로 뒤바뀌어 읽히게 되어, 결과적으로 순서대로 배치되지 못하면서 필사되었을 것임은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되나, (iii) 그러나 역으로(conversely), 몇 개의 열들을 제외하고 각 열이 4개의 4언절구들로 구성된1863년 버젼 A 혹은 버젼 B에 있는 너무도 명확하게 판독되는 2개의 인접하지 아니한 유관 4언절구들의 배치 "夜深投遠 ... 挪負脫去" 혹은 "挪負投遠 ... 夜深脫去"로부터, 이들 2개의 인접하지 아니한 유관 4언절구들이, 몇 개의 열들을 제외하고 각 열이 5개의 4언절구들로 구성된 좌수본 "성교요지"의 인접한 2개의 열들의 2번째 4언절구들로서, 즉, 제2면의 제7열2행 및 제8열2행으로서, 인접하게 되도록 필사하는 것은, 설상가상으로, 좌수본 "성교요지"의 본문 중의 앞에 위치한 열로서 4언절구 忽産男嗣 을 포함하는 열에 있어, 바로 이 4언절구 忽産男嗣 직후에 4언절구 한 개가 배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즉, 제2면의 제5열5행의 위치에 한 개의 4언절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함(almost impossible)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6) 따라서, 바로 위에 있는 (이 글의 결론 4)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 혹시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바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께서는, 다음의 사진들을 면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위의 제(1)항에서 말씀드린 바를 여러 번 천천히 읽도록 하십시오:

 

(3)-(i) 다음에 발췌된 바는, 좌수본 "성교요지" 제2면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 열(column)의 두 번째 행(row)과 여덟 번째 열의 두 번째 행[즉, 제7열2행 및 제8열2행]에 있는 인접한 두 개의 4언절구들 을 보라. 그리고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열의 다섯 번째 행[즉, 제5열5행]이 비어있음을 보라.

(이상, 발췌 끝)

 

(3)-(ii) 다음은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 제29쪽과 제89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발췌 시작)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

제29쪽(왼쪽 면, 버젼 A)과 제89쪽(오른쪽 면, 버젼 B):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i) '제29쪽인 왼쪽 면'의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의 세 번째 행(row) 및 세 번째 열의 네 번째 행과 (ii) '제89쪽인 오른쪽 면'의 왼쪽에서 첫 번째 열의 세 번째 행 및 두 번째 열의 네 번째 행, 각각을 위의 제(3)-(i)항에 발췌된 바 중의 대응하는 인접한 두 개의 4언절구들 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2-6. versus in 1,20

 

좌수본 성교요지  [제1면]

聽手取         [7열5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1면]

聽手取         [6열4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聽手取           [21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聽手取           [2a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聽手取           [82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聽手取           [22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聽手取           [83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聽手取           [22쪽] 

 

 

게시자 주 2-6: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0407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1317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0407 [새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1317 [새 주소]

 

(1) (이 글의 결론 7)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 중의 해당 4언절구 중의 "" 필사본인 인쇄대본 중의 대응하는 4언절구 중의 ""판독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i) 왜냐하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낱글자들이 너무도 명확하게 판독되는 인쇄본인 "The Analytical Reader"의 해당 부분 "聽手取"을 읽고서 필사하는 자가, 아무리 부주의한 자라고 하더라도, "聽手取"로 필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almost impossible) 일이나, 그러나 역으로(conversely), 필사본인 인쇄대본의 해당 부분 "聽手取"을 읽고서, (i) 단순 실수, (ii) 판독 오류, (iii) 성경 내용에 대한 선입견 등의 이유로 인하여, "心" 받침을 빠뜨리고서,  "聽手取"로 인지하였을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그리고 (ii) 왜냐하면, 전후 문맥 안에서, "聽手取"[졸번역: 손(手)에 가져라(取, take)는 소리를 갑자기(忽, suddenly) 들었다네(聽)]가, 예를 들어, "손대지 말라는 금령" 혹은 이에 등가인 바를 추가하는 등의, 어떠한 의역 번역(any free translation)을 하더라도 참으로 대단히 어색한, "聽手取"[졸번역: 손대지 말라는 금령을 듣지 않았네(勿)]보다 훨씬 더 부합함(conform)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20.htm <----- 필독 권고

  

(2) (이 글의 결론 8) 따라서, 바로 위에 있는 (이 글의 결론 7)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더 정확하게,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마틴(Martin)하사맹에 의하여 1863년초판 발행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의 인쇄대본으로 사용된,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3. 사료 분석 II

 

게시자 주 3: (1) 위의 게시자 주 2-0제(1)항에서, "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당나라 시대의 한시(漢詩)들을 발췌하여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소책자의 본문들을 구성하는 한지(韓紙/漢紙)들을 모두 뒤집어서 마련된 후면(後面)들에는 "성교요지"오로지 필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글들도 필사되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이번 항에서는, 우선적으로, "성교요지" 이외의, 어떠한 내용의 다른 글들이 "唐詩鈔選"(당시초선)에 포함되어 있는지 제3-1항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 그런 다음에, 바로 이 "唐詩鈔選"(당시초선)에 포함된 바 안에서, "The Analytical Reader"에 실린 두 개의 버젼들, 벼젼 A버젼 B가 중국에 전달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을 그 인쇄대본으로 삼았음을 제3-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3-1. 왼손으로 썼다고 필사자가 또한 밝히고 있는 "성교요지", 즉, 좌수본 "성교요지"의 겉표지에 "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것에 대하여, 지금까지 국내의 교회사학 연구자들 중의 일부는 다음과 같이 잘못 이해해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즉, 유물/자료들을 정리하던 어떤 학예사가, 이들 자료들 주변에 있던 "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러나 본문이 없는 책의 겉표지를 재활용하여, 겉표지가 없는 죄수본 "성교요지"의 겉표지로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 혹은 이와 유사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3-2. 바로 위의 제3-1항에서 지적한 바를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唐詩鈔選"(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이 붙은 소책자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확인한 바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3-2-1. 이 책자의 본문들은 총 15면/페이지/쪽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2-2. 이 책자의 본문들의 면(面)들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한시(漢詩)들이 필사된 한지(韓紙/漢紙)들을 뒤집어서 마련한 면(面)들입니다. 그리고 필자가 이렇게 파악한 이유는, 이 소책자의 제목 "唐詩鈔選"(당시초선)과 부합하게(conform), 이들 중의 일부 한시(漢詩)들의 저자들과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시자 주 3-2-2: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 소책자에 실려있는 당나라 시대의 한시(漢詩)들은, (i) 중국 명나라 말기에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唐詩選"(당시선)제목의 책, 혹은 (ii) 중국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명에 따라 팽정구(彭定求) 등에 의하여 1703년에 출판된 "전당시(全唐詩)"[즉, 어정전당시(御定全唐詩)] 등에 수록된 한시(漢詩)들 중에서 발췌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3-2-3. 이 책자의 본문들은, 다음의 소제목(subtitles)들을 가지는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 聖敎要旨(성교요지) [즉, 천주의 거룩한 가르침(聖敎)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내용(要旨)], 1면 - 8면,

(ii) 隨書錄(수서록) [즉, 뒤따르는(隨, follow) 글(書)의 기록(錄)], 9면 - 13면,

(iii) 金安德利亞 自書錄(김안덕리아 자서록), 15면. 

 

3-2-4. 이 소책자의 1면-8면에는, "聖敎要旨"라는 제목 아래에 다음과 같은 한문 주해가 붙어 있는, 소위 말하는 좌수본 "성교요지"가 필사되어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4-1785_이벽/좌수본_성교요지_본문_in_당시초선_후면들_제1-4쪽_black.pdf  

(발췌 시작)

 

朝鮮國人李檗 輯

東方大建金安德利述

 

조선국 사람(朝鮮國人) 이벽(李檗)이 집요(輯要)하고(輯, summarize, 요지를 모으고),(*)

동방(東方)의 대건이라는 사람(大建) 김안덕리(金安德利)가 전술(傳述)하다(述, 기술하여 전하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10월 8일]

-----

(*) 번역자 주: 여기서 사용된 "輯"(집) 낱글자는 이벽 성조"성교요지"의 저자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들여다볼 수 있는 "아학편", 상,하 둘 다의 본문 첫 페이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벽 성조의 학문적 제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님에 의하여 1803년경에 저술된 "아학편"[주: 쌍천자문]에서도 또한,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다산 정약용 선생님께서 자신이 "아학편" 책의 저자임을 밝히고자 ""(집) 낱글자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2.htm <----- 필히 확인하라

 

[내용 추가 일자: 2024-03-25]

그리고 또한,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제공의 다산 정약용 선생님여유당전서(定本 與猶堂全書),《정본 여유당전서》해제, 《풍수집의》 해제, 3. 판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주어져 있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님《풍수집의》 책의 저자임을 밝히고자, 낱글자 "著"(저) 혹은 낱글자 ""(집)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https://db.itkc.or.kr/dir/item?grpId=hj#/dir/node?grpId=hj&itemId=GO&dataId=ITKC_MP_0597A&solrQ=query%E2%80%A0%E8%BC%AF$solr_sortField%E2%80%A0%EA%B7%B8%EB%A3%B9%EC%A0%95%EB%A0%AC_s%20%EC%9E%90%EB%A3%8CID_s$solr_sortOrder%E2%80%A0$solr_secId%E2%80%A0GO_HJ$solr_toalCount%E2%80%A01$solr_curPos%E2%80%A00$solr_solrId%E2%80%A0HJ_ITKC_MP_0597A 

(발췌 시작)

숭실대본은 필사본의 복사본으로서, 본문 주석 여섯 곳이 누락된 점에서는 규장각본과 같지만, 〈풍수집의목록〉과 권수제에서 ‘與猶堂集’이라는 제목이 빠지고 ‘風水集議’의 권수제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장서각본과 같다. 또한 1권과 2권이 ‘洌水 丁鏞 ’로, 3권이 ‘洌水 丁鏞 ’으로 표기된 장서각본이나 규장각본과는 달리, 숭실대본은 3권이 ‘洌水 丁鏞 ’로 표기되어 있다. 따라서 숭실대본은 기본적으로 규장각본에서 변형된 필사본으로 추정된다.

(이상, 발췌 끝)

[이상, 2024-03-25일자 내용 추가 끝]

-----

 

따라서, 바로 위의 (*) 번역자 주에 의하여,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8)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朝鮮國人李檗 輯"에서 "" 낱글자는, "성교요지"의 저자가 이벽 성조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10월 8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졸번역 끝)

 

3-2-5. 그리고 이 소책자의 9면 - 13면을 구성하고 있는 隨書錄(수서록) [즉, 뒤따르는(隨, follow) 글(書)의 기록(錄)]은,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의 Part I에서 발췌된, 세 개의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i) 그 첫 번째 부분은, 이 책의 제12-13쪽에 있는, Part I의 본문에서 발췌한 바, (ii) 그 두 번째 부분은, 아 책의 제7쪽에 있는, Part I의 한문 주해에서 발췌한 바, 그리고 (iii) 그 세 번째 부분은, 이 책의 제8-9쪽에 있는, Part I"姓氏俗解"(성씨속해)라는 소제목을 가진 부분의 본문 전문을 발췌한 바, 이렇게 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시자 주 3-2-5: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세 부분들은 바로 아래의 제3-2-6항에 안내된 출처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2-6. 그리고 바로 위의 제3-2-5항에서 말씀드린 隨書錄(수서록) [즉, 뒤따르는(隨, follow) 글(書)의 기록(錄)] 소제목 아래에 있는 본문의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필사자의 한문 주해가 붙어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4-1785_이벽/수서록_본문_in_당시초선_후면들_제5-7쪽_black.pdf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및 첫 번째 열(columns)들을 보라. 그리고 다음에 있는 바는 바로 이 부분을 필자가 발췌한 것이다:

 

病人金安德利亞

東方大建

 

오른쪽 기록()은 오른손()이 병든 사람(病人)인 김안덕리아(金安德利亞)의 꾸짖는(谴) 글(書)인데,

동방(東方)의 대건이라는 사람(大建)이 삼가하면서(謹) 쓰노라().

(이상, 발췌 및 우리말 졸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9월 30일]

게시자 주 3-2-6: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필자에 의하여 로 판독된 낱글자는 "讠(말씀 언) + 遣(보낼 견)"의 형태인데, 특히 "遣(보낼 견)" 낱글자가, 한국고문서자료관 제공의 문헌 자료 "1775년 서▣▣(徐▣▣)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붓으로 필기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다:

 

(i) 출처 1: https://kostma.aks.ac.kr/segment/segmentList.aspx 
          [주: 한국학자료센터 > 고문서서체용례사전]

 

(ii) 바로 위의 출처에 접속한 후, (iii) 왼쪽 메뉴판의 상단에서 "표제한자"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검색 창에 ""를 입력하여 검색하면, (iv) 다음의 검색 결과를 확보할 수 있다:

(발췌 시작)

보낼_견_in_1775년_서oo(徐oo)_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_1958_70.00.jpg

(이상, 발췌 끝)

 

이제, (i) 바로 위에 발췌된 바와 (ii) 바로 아래의 제3-2-7항에 발췌된 바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라. 특히 ‘자의 변형인 책받침 부수 ‘辶’를 제외하고 나머지 부분의 첫 시작 부분, 즉, "가운데 중" 부분과, 그 아래에 있는 나머지 부분, 각각을 바로 아래의 제3-2-7항에 발췌된 바 중의 대응하는 부분과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 바로 아래의 제3-2-7항에 발췌된 낱글자가, 분명하게, "+ "인 것으로 판독된다는 생각이다.

(이상, 게시자 주 3-2-6 끝)

[이상, 2022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3-2-7. 바로 위의 제3-2-6항에 발췌된 바에서, 특히, 왼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에 있는 낱글자 ""이 "", 즉, "+ "임은, 예를 들어, 추가적으로,

 

3-2-7-1. (i) 한자자전인 "옥편(玉篇)", 그리고 (ii) 한한대사전, 권12 등에서, "", 즉, ""(말씀 언) 부수(部首)에서, 책받침 ""이 포함된 낱글자들 모두를 찾아보면,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9월 30일] ["한한대사전"의 경우에 11개] 이들 중에서, ""이 ""에 가장 근접하는 유일한 낱글자임을 [이상, 2022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2-7-2. 그리고 (i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보되는, "Chinese Text Project" 홈페이지 제공의 한자자전에 접속한 후에,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rad=149 <----- 여기를 클릭한 후에 바로 아래의 문장엥 기술된 바를 필히 확인하도록 하라

 

"", 즉, ""(말씀 언) 부수(部首)에서, 책받침 ""이 포함된 낱글자들 모두를 찾아보면,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9월 30일] ""이 ""에 가장 근접하는 유일한 낱글자임을 [이상, 2022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2-7-3. 그리고 (iv) 國學大師 홈페이지 제공의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한 후에, "", 즉, ""(말씀 언) 부수(部首)에서, 책받침 ""이 포함된 낱글자들 모두를 찾아보면,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9월 30일] ""이 ""에 가장 근접하는 유일한 낱글자임을 [이상, 2022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www.guoxuedashi.com/zidian/bs/讠.html [옛 주소]

http://www.guoxuedashi.com/zidian/bs/言.html [옛 주소]

http://www.guoxuedashi.net/zidian/bs/讠.html [새 주소]

http://www.guoxuedashi.net/zidian/bs/言.html [새 주소]


3-2-7-4. 또한 다른 한편으로, (v)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지게 되는 "네이버 한자사전" 제공의 필기인식기에,

https://hanja.dict.naver.com/search?query=%E8%B0%B4 

 

마우스의 끝으로 ""와 ""를 그려넣은 후에, ""의 나머지 부분을 그려넣으면 인식되는 16개의 낱글자들 중에서,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9월 30일] "" 이 ""에 가장 근접하는 유일한 낱글자임을 [이상, 2022년 9월 30일자 내용 추가 끝],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3. 지금까지 바로 위의 제3-2항에서 필자가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한 바들로부터, 아래의 제3-3-2항제3-3-3항 등에 기술된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3-1. 다음은 아래의 제3-3-2항제3-3-3항 등에 기술된 결론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최소한도의 필요한 내용들이라는 생각입니다:

 

3-3-1-(i) 우선적으로, 우리나라 조선이라는 나라 안에서, 어떤, 조선 사람인, 문인이 자신이 작문하였거나 혹은 소장 중인 어떤 한시(漢詩)를 다른 조선 사람에게 필사하여 건네줄 때에, 저작권자를 밝히기 위하여, 해당 한시(漢詩)의 저자의 이름과 호 등은 당연히 그리고 분명하게 표기할 것이나, 그러나 해당 한시(漢詩)의 저자가 조선국 사람이라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을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런 것을 기술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치 않는지요? 

 

3-3-1-(ii)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좌수본 "성교요지"를 처음 접하였을 때에 가졌던 커다란 의문점이, 왜냐하면 그 당시까지 우리나라 조선 바깥의 외국의 문인에게 "성교요지"를 필사하여 건네주었다는 실증적인 증거(positive evidence)로서 알려진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이유로, 위의 제3-2-4항에서 이미 지적하였듯이, "성교요지"의 저자 [즉, 집요(輯要)한(輯, summarize, 요지를 모은) 자]가  조선국 사람임을 필사자가 구체적으로 명기(明記)하였는지? 가 대단히 궁금하였는데, 최근에 들어와 그야말로 우연찮케, 중국 상해에서 1863년 초판 발행의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처음 접하는 순간에, 바로 이 의문점이 해결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교요지"가, 만에 하나, 역으로(conversely), 중국에서 최초로 작문되어 우리나라 조선으로 전래되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실증적으로(positively) 대단히 엄밀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유관 문헌들에 대한 매우 엄밀한 본문 분석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한 개의 한시(漢詩)가 필사될 때에, 해당 한시(漢詩)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 자체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일부 필사자(들)에 의하여 간혹 수정, 추가, 혹은 보완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필사자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여 정밀하게 필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바는 해당 한시(漢詩)의 본문과 제목임을 반드시 유념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가 누구의 한시(漢詩)를 무단(無斷) 도용(盜用)하였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면서도, 최우선적으로, 유관 사료들의 본문들에 대한 상호 대비(對比) 분석을 매우 엄밀하고 철저하게 수행하지 않는 행위는, 참으로 어불성설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3-3-1-(iii) 그리하여, 이 의문점과 이 의문점과 관련된 제반 의문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유관 사료들들의 본문들에 대한 엄밀한 분석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그 결과,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성교요지" 중국에서 최초로 작문되었을 가능성이 없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두 편의 글/논문들을 작성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역으로(conversely), 우리나라에서 작문된 좌수본 "성교요지"가 중국으로 전파되었음은, 본글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고 있습니다, 

 

3-3-2. 특히 본글의 제3항을 또한 작성하게 된 이유는, 위의 제3-2항에서 간략하게 보고드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추가적으로 발견한,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들 때문입니다.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위의 제3-2항에서 보고드린 본문 및 한문 주해들에 대한 분석의 결과로서, 도출한 바입니다:

 

(이 글의 결론 9) 만약에 (If) "당시초선"이라는 제목을 가진 소책자의 본문들의 후면에 필사된 좌수본 "성교요지"기, 중국 상해에서 마틴(Martin)에 의하여1897년에 출판된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를 1900년 경에 입수하여 들여다본 우리나라 조선의 한 사람이 무단(無斷) 도용(盜用)하기 위하여 필사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필사자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를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감추기 위하여, 바로 이 좌수본 "성교요지"의 본문이 끝난 직후에, 바로 이어서, 위의 제3-2-5항제3-2-6항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隨書錄(수서록) [즉, 뒤따르는(隨, follow) 글(書)의 기록(錄)]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의 Part I에서 발췌된, 세 개의 부분들을 필사할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임을[주: 가정법],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9 끝)

 

게시자 주 3-3-2: 심지어, 왜냐하면, 1876년(고종 13)에 체결된 강화도조약 그리고 1882년에 채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 등에 의하여 우리나라 조선이 개항[즉, 문호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그 결과, 예를 들어,

 

(i) "한불자전"의 경우에 1880년에 일본에서 출판되어 우리나라 조선에 널리 배포되었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제목: 피조물인 성모님께만 표하는 공경 hyperdulia 에 대응하는 번역 용어인 상경지례上敬之禮는 해의문답解疑問答에서 처음 창안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신조어이다]에서 입증/고증하듯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2.htm <----- 필독 권고

 

1878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田類斯 주교님(田嘉璧, Louis-Gabriel Delaplace, 1820-1884년)의 저서인, 한문본 "聖母聖心會要"(성모성심회요)가 또한, 우리나라 조선에 전달되어, 블랑 신부님(Blanc, 1844-1890년)에 의하여 1878년과 그 직후에 우리말로 번역이 된 번역서인 "해의문답"의 번역대본들에 포함됨이 실증적(positively)으로 고증/입증됨,

 

(iii) 다른 한편으로, 아무리 늦더라도 1885년에 이르면, 영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혹은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음은 널리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며, 따라서 중국과 우리나라에 걸쳐 형성된 장로회 조직을 통하여,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인 마르틴(Martin)에 의하여 중국 상해에서 1897년에 출판된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가 우리나라 조선에 1900년 경에 입수되어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영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혹은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사이에 널리 알려졌을 것임, 그리하여, 예를 들어, 다음의 제(iv)항의 일이 발생함,

 

(iv)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속표지 바로 앞의 간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인 마르틴(Martin)에 의하여 중국 상해에서 1910년에 출판된 제3판(마지막 판) "The Analytical Reader"1912년에 우리나라에 전달됨,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910_The_Analytical_Reader.pdf [2019년 6월17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910_The_Analytical_Reader_color.pdf [2019년 7월 3일]

[주: 1910년 제3판 "The Analytical Reader"; 이 책은 단기 4291년, 즉, 1958년부터 부산 소재 수산대학교(주: 지금의 부경대학교)에서 지금까지 소장중이며, 이 pdf들은 필자에 의하여 마련된 것임.]

 

등을 고려할 때에, 1900년 경에 이르면,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영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혹은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들의 조직적인 선교활동 등에 의하여, 우리나라 조선 안에서도, 출판된 책들의 저작권과 관련하여 그러한 무단(無斷) 도용(盜用) 행위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실재적으로(actually)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또한 그러한 형성이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지속되어 왔을 것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3-3-2 끝)

 

3-3-3. 특히 본글의 제3항을 또한 작성하게 된 이유는, 위의 제3-2항에서 간략하게 보고드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추가적으로 발견한, 실증적 증거(positive evidence)들 때문입니다.

 

바로 위의 제3-3-2항에서 지적한 바와는 전적으로 달리, 위의 제3-2항에서 보고드린 본문 및 한문 주해들에 대한 분석의 결과로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0) 본문을 구성하는 한지(韓紙/漢紙)들의 후면들에 필사된 좌수본 "성교요지"가 포함되어 있는 "당시초선" 제목의 소책자를 국내에서 이미 소장하고 있었던 분은 또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성교요지"가, 저작권을 지키기 위하여 증거물로서 필사해둔, 과거에 중국인에게 제공된 필사본의 정확한 수사본(手寫本)임을 이전 소장자로부터 전해 들어서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분인데, 이 분이

 

(i) 중국 상해에서 마틴(Martin)에 의하여1897년에 출판된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를 [1885년 이후로 이미 우리나라 조선에 들어와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영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혹은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들을 통하여] 1900년 경에 입수하여 들여다보았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ii) 자신이 소장 중인 좌수본 "성교요지"의 본문이 바로 이 책의 본문들 중의 본문으로서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하였으며, 그러나 이 책의 어디에도 자신이 소장 중인 "성교요지"라는 바로 이 한시((漢詩)의 제목도 기술되어 있지 않을뿐만이 아니라, 또한 자신이 소장 중인 "성교요지"라는 제목을 가진 한시(漢詩)의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기술도 전혀 없음을 발견하고서,

 

(iii) 자신이 소장 중인 "성교요지"필사대본을 마틴(Martin)이 무단(無斷) 도용(盜用)하였음을 구체적으로 지적하고자, 자신이 소장 중인 "성교요지"의 본문이 끝난 직후에, 바로 이어서, 위의 제3-2-5항제3-2-6항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隨書錄(수서록) [즉, 뒤따르는(隨, follow) 글(書)의 기록(錄)]이라는 소제목 아래에,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의 Part I에서 발췌된, 세 개의 부분들을 필사한 후에, 이 발췌가 끝난 직후에 있는 한 개의 한문 각주로서, 비로 이 발췌문 자체[즉, 오른쪽 기록()]가 [그러한 무단(無斷) 도용(盜用) 행위를] 꾸짖는(谴) 글(書)/견책(譴嘖)하는 글임을 명기(明記)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10 끝)

 

3-3-4. 바로 위의 제3-3-3항에서 도출된 (이 글의 결론 10)따름 정리(corollaries)들로서, 다음의 결과들를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1) 미국 장로회 교파 소속의 개신교회 선교사인 마르틴(Martin)에 의하여 중국 상해에서 1897년에 출판된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두 개의 버젼들,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의 원 출처(original source)가 우리나라 조선 안에서 작문된 "성교요지"임이, 중국과 우리나라에 걸쳐 형성된 장로회 조직을 통하여, 마틴(Martin)에게 1900년 경에 구체적으로 전달되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11 끝)

 

그리하여 그 결과, 1910년에, 나이 80세도 훌쩍 넘어선 고령(高齡)인 노년(老年)의 마틴(Martin)에게, 다음의 일이 발행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2) 중국 상해에서 1910년에 츨판된 마지막 인쇄본 "The Analytical Reader"에서, 저작권 문제 때문에, 과거의 초판(First Edition, 1863년 판)제2판(Second Edition, 1897년 판)에서 Part III의, 제2판의 경우에 76%, 즉, 총 67쪽 분량 중의 51쪽을 차지하였던, 常字雙千合釋 중의 주된 부분인 버젼 B와 한문 주해가 출판자 마틴(Martin, 1827-1916년) 자신에 의하여 완전히 삭제되었으며, 다만 常字雙千[즉, Part II]에 포함되어 있는 영어 번역본의 저작권자는 마틴(Martin) 자신임을 후세의 학자들에 의하여 분명하게 인정받고자, 常字雙千[즉, Part II]만이 오로지 주된 부분으로서 포함되어 있는 "The Analytical Reader"제3판(Third Edition)을,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건 최종본으로서, 남겼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이 글의 결론 12 끝) 

 

4. 사료 분석 III


이번 항에서는, 우선적으로, 위의 제2항. 사료 분석 I에서 이미 수행한 바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들을 말씀드리고, 그런 다음에, 추가적인 사료 분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결과들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4-1. 위의 제2-1항, 제2-3항, 제2-4항, 제2-5항, 그리고 제2-6항에 제시된 표(Tables)들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4-1: (0) 각 항(2-n)에 제시된 표(Table)에서 (n = 1, 3, 4, 5, 6), 대응하는 두 개의 낱글자들이 이체자(異體字)인지 아닌지는, 위의 제2항에 있는 해당 게시자 주 2-n에서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1) (이 글의 결론 13) 위의 제2항에 표(Tables)들로부터, (i) 만천유고본 "성교요지"1863년 버젼 B 둘 사이에서 어느 것으로부터 어느 것이 필사 혹은 인쇄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ii) 만천유고본 "성교요지"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B동일한 필사대본/인쇄대본을 가짐을,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14) 따라서,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B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위의 제1-4항제1-5항에 의하여,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기 때문입니다.

 

4-2. 위의 제2-2항에 제시된 표(Table)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4-2: (0) 위의 제2-2항에 있는 게시자 주 2-2에서, ""이 ""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이미 확인하였으며, ""과 ""이 서로 동의어임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guoxuedashi.com/hydcd/252155u.html [옛 주소]

http://www.guoxuedashi.net/hydcd/252155u.html [새 주소] 

(1) (이 글의 결론 15) 좌수본 "성교요지"의 중의 해당 4언절구 중의 낱글자 ""(팔배 섬, 즉, 팔배나무의 열매)이 필사대본 중의 대응하는 4언절구 중의 ""(찾을 탐)의 필사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전후 문맥 안에서, ""[졸번역: 가히 이 법(法)을 본받아(楷模) 심오하게() 탐구하여()]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는 ""보다, 훨씬 더 부합함(conform)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09.htm <----- 필독 권고 

 

(2) (이 글의 결론 16) 따라서,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B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4-3.  versus  in 39, 2

 

좌수본 성교요지  [제7면]

佐輔          [7열1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22면] 佐輔    [4열2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佐輔            [69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佐輔           [22a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佐輔          [120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佐輔            [70족]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佐輔          [121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佐輔            [70쪽] 

 

 

게시자 주 4-3: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젓가락 저)의 이체자(異體字)이나, 그러나  ""(재물 자)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b03216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3951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b03216 [새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3951 [새 주소]

 

그런데, 전후 문맥 안에서, "佐輔"[졸번역: 빌려 재료를 삼음(주: 한한대사전)(借資)과 윗사람의 일을 도와줌(주: 한한대사전)(佐輔)]보다, "佐輔"[졸번역: 다른 이들을 위한 행동 계획 한 개를 입안하여(借箸, draw up a plan of action for others) 윗사람의 일을 도와줌(주: 한한대사전)(佐輔)]이, 훨씬 더 부합함(conform)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 자세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21.htm <----- 필독 권고 

 

(1) (이 글의 결론 17) 따라서, 필사대본으로부터 만천유고본 "성교요지"를 필사한 자가, 예를 들어, 판독 오류 등의 이유 때문에,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 중의 해당 4언절구 중의 한 개의 고급 시어(詩語)인 "", 즉, ""를 올바르게 알아차리지 못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18) 따라서,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 및 버젼 B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4언절구 "佐輔"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하필이면, 바로 이 4언절구 중의 낱글자 ""(젓가락 저)를,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아닌 또다른 필사대본의 도움 없이, 마틴(Martin)하사맹이, 예를 들어, 이미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제2-3항에서 구체적으로 지적하였듯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擬鹽"(의염)이라는 한 개의 시어(詩語)의 의미를 알지 못함 등, 고급 시어(詩語)들에 대한 그들의 지식이 많이 부족함을 또한 고려할 때에, ""(재물 자)로 교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을(almost impossible)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擬鹽"(의염)이라는 한 개의 시어(詩語)의 의미를 알지 못한 마틴(Martin)하사맹이, 이 시어(詩語)가 그 본문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바로 그 한시(漢詩)를 작문한다는 것 자체가 도대체 가능한 일인지요??? 

 

4-4. versus in 23,5

 

좌수본 성교요지  [제5면]

刻薄         [5열4행]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13면]  刻薄   [4열1행]

 1863년 버젼 A(w 영문번역)

刻薄           [51쪽] 

 

 1863년 쌍천자문(별쇄본)

刻薄          [14b쪽] 

 

 1863년 버젼 B(w 한문주해)

 

刻薄          [106쪽]  

 1897년 버젼 A(w 영문번역)

刻薄           [52쪽]  

 

 1897년 버젼 B(w 한문주해)

 

刻薄           [107쪽] 

 1910년 버젼 A(w 영문번역)

刻薄           [52쪽]  

 

 

게시자 주 4-4: (0) 바로 위의 표(Table)에서, 우선적으로, ""이 ""(비롯할 조)의 이체자(異體字)가 아님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yitizi.guoxuedashi.com/ytz.php?id=a03287 [옛 주소]

http://yitizi.guoxuedashi.net/ytz.php?id=a03287 [새 주소]

 

더 나아가, ""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듯이, 한자자전들에 한 개의 낱글자 표제어로 전혀 수록되어 있지 않은, 따라서 특정한 의미를 가지는 한 개의 글자로 사용되지 않는, 글자 형태의 한 개의 그림으로 파악됩니다:

http://www.guoxuedashi.com/zidian/z38991p.html [옛 주소]

http://www.guoxuedashi.net/zidian/z38991p.html [새 주소]

 

또한, "Chinese Text Project" 홈페이지 제공의 대단히 방대한 분량의 한문 문헌들에 대한 다음의 용례 분석에 의하면, "" 은 한 개의 낱글자 단어로서 한나라 이전과 한나라 이후에 전혀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https://ctext.org/pre-qin-and-han?searchu=%F0%A2%AF%84 0

https://ctext.org/post-han?searchu=%F0%A2%AF%84 0 


(1) (이 글의 결론 19) 따라서,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으로서 중국에 전달된 필사본의 본문 중의 해당 4언절구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 심각한 수준의 필사 오류인 글자 형태의 그림 ""이 있었을 수도 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2) (이 글의 결론 20) 따라서, 만약에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으로서 중국에 전달된 필사본의 본문 중의 해당 4언절구에, 전혀 사용되지 않는, 심각한 수준의 필사 오류인 글자 형태의 그림 ""이 있었다면,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의 버젼 A 및 버젼 B의 인쇄대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4언절구 "刻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바로 이 4언절구 중의 글자 형태의 그림 ""를,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이 아닌 또다른 필사대본의 도움 없이, 마틴(Martin)하사맹이, ""(비롯할 조)로 교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을(almost impossible)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바로 위의 결론은, 위의 제1-4항제1-5항에 안내된 바에서 이미 말씀드리고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 완료된 바인, 1863년 초판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A버젼 B를 가지는 한 개의 한시(漢詩)가 중국 본토에서 작문될 수 없음과 부합(conform)함에, 즉, 아무런 모순이 없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5. 사료 분석 IV


5-1. 들어가면서


5-1-1.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본문에는, 좌수본 "성교요지"의 본문과는 달리, 한문 주해/각주들이 붙어있는데, 이들 한문 주해들은, 필사대본으로부터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본문을 필사한, 조선 사람인, 필사자(들)에 의하여 고유하게 작문된 것이 아니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제8-1항, (iii)제8-2-4항, 질문 3에 대한 답변에서 이미 말씀드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중국 영파(寧波)에 파견된 미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의 선교사 마틴(Martin)과 그의 필기사인 중국인 하사맹(何師孟)에 의하여, 1860년부터 1863년 사이에 최종적으로 마련된, 한문 주해들로서,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여러 군데에서 일부 표현들을 누락하면서, 대부분 복사 필사한 것임을,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5-1-2.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의 제1-1항에서,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1845년에 중국 상해(上海, Shanghai)에 전달되었을 상당(相當)한 가능성(enough possibility)이 있음을, 널리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서,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제1-1항]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1-1. (역사적 사실 1) 만천 이승훈의 손자인 이재의[李在誼, 1808(?)-1868(戊辰)년 순교]는, 1845년김대건 안드리아 부제와 함께 배를 타고 중국 상해(上海)에 가서, 동료인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 현석문 등, 10명과 함께 3개월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상해(上海)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대건 안드리아 부제깨서는 바로 이 기간 중에 사제 서품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석 달(3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김대건 안드리아 부제와 그 일행들인 조선인들과 현지의 중국인들 사이에 다수의 접촉들이 있었을 것임은 분명하며, 그리고 특히, 예를 들어, 상해(上海) 항구에 머물고 있는 조선의 배(라파엘호)에 개신교회 측의 목사들이 방문하여 김대건 안드리아 부제와 그 일행들인 조선인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키려고 성서와 책 꾸러미를 들고 와서 배에 던져주고 갔으며, 그러나 이들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은 책 꾸러미를 들고 목사를 쫓아가서 "우리는 이 책이 필요없습니다. 우리는 이 책이 필요없습니다"라고 하면서 책들을 재빨리 목사들에게 되돌려주었다는 기록이, 첵명, "성 다블뤼 주교의 생애", 제243쪽에 기술되어 있다고 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12월 27일]

-----

(*)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2006년 대전가톨릭대학교출판부 천주교대전교구갈매못성지 출판, "성 다블뤼 주교의 생애", 제243쪽 전문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8-1866_다블뤼/1845-8-15일자_다블뤼_신부_서신_유관부분_at_상해_2006_성_다블뤼_주교의_생애_제243쪽.jpg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국교회사연구소 1994년 출판, "다블뤼 문서 I"(타자본), 제225-235쪽에 있는, 1845년 8월 15일자로 다블뤼 신부가 부모에게 보낸 서신의 프랑스어 전문을 읽을 수 있으며, 유관 부분은 이 서신 중의 제230쪽 마지막 줄에서 위로 8번째 줄, "Les ministres protestants ..."부터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8-1866_다블뤼/1845-8-15일자_다블뤼_신부_서신_원문_at_상해.pdf

----- 

[이상, 2019년 12월 27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바로 이 상당(相當)한 가능성(enough possibility)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문헌 증거들로서, 


(i) 세 번(1863, 1897, 1910년)에 걸쳐 중국 상해에서 마틴(Martin)에 의하여 출판된 책 "The Analytical Reader"의 주된 본문들을 구성하는 1863년 버젼 A, 1863년 버젼 B, 1897년 버젼 A, 1897년 버젼 B, 그리고 1910년 버젼 A 모두가 중국에서 작문될 수 없음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서, 필자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는 생각이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90.htm <----- 필독 권고


그리고 (ii) 본글의 제2항 사료 분석 I제3항 사료 분석 II에서, 1863년 버젼 A, 1897년 버젼 A, 그리고 1910년 버젼 A의 인쇄대본이 좌수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임이, 필자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iii) 본글의 제4항 사료 분석 III에서, 1863년 버젼 B, 1897년 버젼 B의 인쇄대본이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필사대본임이, 또한 필자에 의하여, 이미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이로써,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중국에서 작문된 한시(漢詩)를 베껴 쓴 위작"이라는 최근의 주장이 오류의 주장임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었다는 생각입니다.


5-1-3. 바로 위의 제5-1-2항에서 말씀드린 바에 추가적으로(additionally), 이어지는 제5-2항에서는,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본문과 여기에 붙어 있는 한문 주해들을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와 바로 이 버젼 B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과 정밀하게 비교/분석하여 들여다봄으로써,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의 본문이, 한문 주해들과는 달리, 마틴(Martin, 1827-1916년)에 의하여 중국 상해(上海, Shanghai)에서 세 번에 걸쳐 출판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B 본문이 복사 필사된 것이 아님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5-2.

5-2-1. 다음은,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제85쪽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27-1916_윌리엄_마틴/1897_analyticalreader00mart.pdf [주: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의 첫 번째 행(row)에 있는 4언절구, 그리고 다섯 번째 열 그리고 여섯 번째 열에 있는 유관 한문 주해를 보라:


87

 

者, 挪亞卷屬, 共有人, 從者, 所携潔畜, 牝牡各也.

거주자()들이 여덟이라는 것()은, 노아(挪亞)의 권속(卷屬)이 여덟 사람(人)들에 함께(共) 있음(有)을 말하고, 따르는 자(從)들이 일곱이라는 것(者)은, 이끌은(携) 깨끗한 짐승(潔畜)들이 암수(牝牡) 각 일곱(各)인 바를 말한다.   

(이상, 발췌 및 졸번역 끝)


5-2-2. 다음은,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제2면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754-1785_이벽/성교요지_in_만천유고.pdf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의 첫 번째 행(row)에 있는 4언절구, 그리고 일곱 번째 열에 있는 유관 한문 주해를 보라:

 

78

 

者, 挪亞卷屬, 共有人, 從者, 所携潔畜, 牝牡各也. 

거주자()들이 들어감이라는 것()은, 노아(挪亞)의 권속(卷屬)이 들어가는 사람(人)들에 함께(共) 있음(有)을 말하고, 따르는 자(從)들이 여덟이라는 것(者)은, 이끌은(携) 깨끗한 짐승(潔畜)들 모두(所)가 암수(牝牡) 각 여덟(各)임을 말한다.

(이상, 발췌  유관 부분 졸번역 끝)


5-2-3. 바로 위의 제5-2-1항제5-2-2항에 발췌된 바들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선적으로,

 

(이 글의 결론 21) 만약에 조선 사람인 어떤 자가 마틴(Martin, 1827-1916년)에 의하여 중국 상해(上海)에서 1897년에 제2판으로 출판된 "The Analytical Reader"에 수록된 버젼 B 본문 전문을, 그리고 또한 한문 주해들 중의 일부를, 이들 둘 다를 있는 그대로 복사 필사하였다면, 바로 위의 제5-2-2항에 발췌된 바와 같은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와는 달리,

 

(이 글의 결론 22)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로부터 만천유고본 "성교요지"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필사한 조선 사람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는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만약에(If)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필사한 자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는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더라면, 왜냐하면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성경 본문과 일치를 이루는 기술은 위의 제5-2-1항에 발췌된 한문 주해인 것이지, 바로 위의 제5-2-2항에 발췌된 한문 주해가 결코 아니기 때문에, 유관 한문 주해의 필사 과정에서, 어떠한 다른 이유 혹은 사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위의 제5-2-2항에 발췌된 한문 주해에서처럼, 창세기의 유관 성경 내용과 모순되게 일부 낱글자들을 결코 교체할 수 없었을 것이기(가정법),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글의 결론 23) 심지어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필사한 자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는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내용을 전혀 모르는 자였다고 하더라도,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 중의 4언절구 ""을 ""으로  잘못 필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almost impossible) 일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은 이 책 의 모든 한자 낱글자들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출판된 고급 인쇄본이기 때문입니다.

 

5-2-5. 따라서, 제5-2-3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도출된 결과들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4)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필사한 조선 사람은, 이 한문 주해들을 필사하기 전에 이미, 한문 주해들이 없는, 그러나, "" 대신에, ""이라는 4언절구가 이미 표기되어 있는 필사본 "성교요지"[즉, 한문 주해들이 없는 만천유고본 "성교요지" 혹은 이것의 필사대본]를 소장하고 있었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25) 그리하여 그 결과,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을 필사한 자가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는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내용을 전혀 모르는 자였기 때문에 무지(無知)의 결과, 그러나 어떠한 한시(漢詩)의 본문 필사자라도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준수하여야 하는 필사자로서의 기본 의무 때문에, 자신이 기(既) 소장 중인 한문 주해가 없는 만천유고본 "성교요지" 본문 중의 4언절구 ""을 고수(固守)하기 위하여, 바로 이 4언절구에 대응하는,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 중의 4언절구 ""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를, 자신이 필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라는 자신에게 전달된 4언절구의 의미에 최대한 부합하도록 하고자, 위의 제5-2-2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일부 한자 낱글자들을 다른 낱글자들로 교체하면서, 필사하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5-2-3: (1) 그러니까, 노아의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되어 있는 구약 성경 중의 창세기 내용을 전혀 몰랐던 필사자가 위의 제5-2-1항에 발췌된 유관 한문 주해를 필사하면서 ""을 ""로 교체한 것은 자신이 기(既) 소장 중인 한문 주해가 없는 만천유고본 "성교요지" 본문 중의 4언절구 ""을 고수(固守)하기 위하여서 였고, ""을 ""으로 교체한 것은 ""에서 ""이 ""의 오자인 것으로 잘못 판단하였을 것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인쇄된 한문 주해들로부터 직접 필사하였다기 보다는, 이미 필사된,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에 붙어있는 한문 주해들의 필사본으로부터 또다시 필사하다보니, ""에서, 필기체로 쓰인 ""이 필기체 ""의 오자인 것으로 잘못 판단하는 문제가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2) 혹시라도 다른 한편으로, 어떤 조선 사람이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버젼 B 본문과 이 본문 붙어있는 인쇄된 한문 주해들을 필사하면서, 자신의 이러한 행위, 즉, 무단(無斷) 도용(盜用) 행위를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총 2016/4 = 504개의 4언절구들 중에서, 하필이면, 오로지 한 개의 4언절구 ""과 이 4언절구의 한문 주해 한 개만을 오로지 위의 제5-2-2항에 발췌된 바처럼 임의적/작위적으로 교체하였을 것이라는 과도한 의심(疑心)(inordinate doubt)과 이에 근거한 과도한 주장(inordinate claims)들을 하는 것 자체가,(*) 왜냐하면 1900년 경과 그 이후의 시기에 이르면 이미 문호가 개방된 우리나라 조선 안에, 1897년 제2판 "The Analytical Reader"1910년판 제3판 "The Analytical Reader"가 둘 다가 전달되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참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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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여기서 "과도한"으로 번역된, 영어로 "inordinate"로 번역되는, 전통적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에 제시되어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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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료 분석 V


게시자 주 6: (I) 이번 항에서는, 우선적으로, "성교요지" 2,1에서 사용되고 있는 "아백(亞伯)"이, 두 개의 낱글자들의 결합 "亞" + "伯" 으로 이해할 때에, 또한 "버금" + "맏이", 즉, 차자(次子)라는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음을,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 "천주강생성경직해"의 유관 각주를 읽고서 알아차린 후에, 토착화(inculturation) 차원에서, 바로 이 의미로도 또한 보통 수준의 한문 이해력을 지닌 독자들에게 전달되도록 하고자 "성교요지" 2,1에서 "아백(亞伯)"이라는 음역 용어를 사용하셨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2) 그런 다음에, 아무리 늦더라도, 1852년 이전에 이벽 성조(1754-1785년)의 "성교요지"가 중국 상해(上海, Shanghai)에 전달되었음을, 또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게시자 주 6 끝)


6-1. 다음에 발췌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6년 1월 9일자로, 이미 도출한 결론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9.htm

[제목: 성교요지의 아벨에 대한 언급 및 방주(方舟) 용어의 줄처들-한문본 성경직해, 천주강생인의, 만물시원 [사도세자]]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1636_천주강생성경직해.htm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권13_34_성사덕망수선치명자첨례_346-350 [12월26일, 마태오 복음서 23,34-39]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1월 9일) [성사덕망 = 성 스테파노, 수선치명자 = protomartyr(최초순교자)] [주: 마태오 복음서 23,35에 "의아백이(亞伯爾)(의인 아벨)"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에 대한 각주에서, 아벨이 원조인 아담의 둘째 아들이라는 언급과 함께, 그의 형이 아벨의 선(善)을 질투하여 아벨을 살해하였다는 설명이 주어지고 있다. 일찌기 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는, 1636년에 초간된 한문본 "성경직해"의 저자인 예수회 소속의 엠마누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에 의하여 중국어로 서술된, 바로 이 각주에 주어진 설명을 읽고서, 자신의 저술인 "성교요지"에서 "아벨(Abel)"이 자신의 형에 의하여 살해되었음을 4자성구 시문[즉, 4언(四言) 한시체(漢詩體)]이라는 문학적 틀 안에서, 따라서 "아백이(亞伯爾)"라는 언급 대신에 "이(爾)"자를 생략하고 "아백(亞伯)"으로써 "아벨"을 언급하면서, 설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4자성구의 형식[즉, 4언(四言) 한시체(漢詩體)]을 맞추기 위한 이러한 생략이 한문 문헌들에 있어 빈번함에 대한 더 자세한 지적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htm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가지게 되는 "국립중앙도서관 국가전자도서관" 화면 제공의 우리말본 "성경직해"(1938년 출판) 자료에서, 원문 보기 > vol : 권 2, 성스테파노수선치명첨례성경(성사마두제23편), 본문 제297-303쪽에서 우리말로 번역이 된 마태오 복음서 23,34-39와 마태오 복음서 23,34에서의 바로 이 표현에 대한 각주(주: 제299쪽에 있음)를 또한 읽을 수 있다. 참고로,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성경 본문 전체에서 카인(Cain)이 언급되고 있는 절들이 오로지 창세기 제4장; 히브리서 11,4; 1요한 3,12; 유다서 11뿐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GU.HTM 그리고 카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이들 절들이, 16세기 중반에 도입되어 1969년까지 사용되었던 가톨릭 교회의 트리엔트 전례력에 있어, 미사 중에 독서로 봉독되지 않았을 수도 있음은 다음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catholic-resources.org/Lectionary/Roman_Missal.htm 그리고, 1969년에 개정되어 지금 사용중인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마태오 복음서 23,34-39가 미사 중에 복음 말씀으로 봉독되지 않고 있음도 또한 참고하라.] (이상, 2016년 1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6-2. 그런데, 2016년 1월과는 달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亞伯"이라는 표현에 그동안 "성교요지" 연구자들이 아마도, 왜냐하면 표현의 우리말 발음 "아백"이, 중국식 발음과는 달리, 아벨(Abel)을 즉시 연상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에, 미처 인지하지 못한 그 무엇(something)이 있는지 정밀하게 들여다보기로 하였는데,


6-2-1. 예상 밖으로, 낱글자 "亞" 버금, 즉, 두 번째(second)라는 의미의 접두사(接頭辭)로 사용되고 있는 용례들이,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s://sou-yun.cn/QR.aspx?ct=%e7%a6%a1&c=%e4%ba%9e&qtype=2 

亞父

亞聖

亞元

亞卿

亞將

亞流

亞相


그리고 다음은, 예를 들어, 1992년에 초간된 "한국한자어사전"에 수록된 표제어들 입니다:

亞銓

亞官

亞將

亞元

亞卿

亞相


6-2-2. 다른 한편으로, 낱글자 "伯"은 명백하게 맏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따라서, 바로 위의 제6-2-1항에 제시된 용례들을 잘 알고 계셨을 것이 분명한, "성교요지"의 저자(Author)[이벽 성조(1754-1785년)]께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천주강생성경직해"의 유관 각주에 제시된 설명을 읽고서,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3.htm [3. 사료분석 II] <----- 필독 권고

[제목: 구약 성경 창세기 제1장-제11장 중의 일곱 개의 이야기들이 수록된 인류원시 와 성경직해는 성교요지의 자구출처 및 내용출처이다]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4-1659_엠마누엘_주니오르_디아스/성경직해_권13_34_성사덕망수선치명자첨례_346-350.htm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열(column)부터 시작되는, 본문이 아닌, 다음에 발췌된주해를 읽도록 하라:


義血, 聖人被殺. 亞伯爾, 亞當元祖次子也. 彼善兄惡, 兄妬其善而殺之.

 

의로운 피(義血)란, 곧 성인이 의로움을 행하다가 피살될 때의 피를 말하니라. 아벨(亞伯爾, Abel)은 아담(亞當, Adam) 원조(元祖)의 둘째 아들(次子)인데, 바로 그의 선(善)[행]은 형을 부끄럽게하였고(惡), 형은 그 선(善)을 질투하여(妬, envy), 그리하여 [동생을] 살해하였나니라(殺).

(이상, 발췌 및 유관 부분 우리말 번역 끝)


"亞伯爾" 에 있어, "亞伯"이, 두 개의 낱글자들의 결합 "亞" + "伯" 으로 이해할 때에, 또한 "버금" + "맏이", 즉, 차자(次子)라는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아차리셨다는 생각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9월 8일]

게시자 주 6-2-2: 다음에 발췌된 바는,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40년에 초간된 "성경광익", 하권, 제86쪽에서 발췌한 바인데, 특히 이 책의 성사덕망수선치명 첨례일의 독서는, "천주강생성경직해"에서 발췌되는 복음 말씀, 즉, 마태오 복음서 중의 유관 단락이 아닌, 이 첨례일에 봉독되는 제1독서임에, 따라서, 아벨(Abel)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사도행전 중의 유관 단락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1740_성경광익_원본.htm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상, 2019년 9월 8일자 내용 추가 끝]


6-3. 따라서, 바로 위의 제6-2항에서 말씀드린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6) (i) 아벨(Abel)를 나타내는 음역 용어 및 (ii) 아담과 하와의 둘째 아들을 의미하는 차용 번역 용어, 이들 둘 다로서 이중의 의미(double meaning)를 가지고 있는 "亞伯(아백)"이라는 한 개의 신조어 번역 용어를, "성교요지"의 본문에서 사용함으로써, 한문 문화권 내에서 최초로/처음으로 도입하여 사용하기 시작한 분이 바로 "성교요지"의 저자(Author)[이벽 성조(1754-1785년)]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따라서, 바로 위의 결론의 한 개의 따름 정리로서(a corollary),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창세기_4_2_및_마태오_23_35.htm <----- 필히 클릭하여 마지막 부분을 확인하라


중국 개신교회 성서 번역자들이 아벨(Abel)의 음역 용어로서, 阿韋(아위, 1811년), 阿比路(아비로, 1822년), 阿比路(아비로, 1823년), 亞别(아별, 1853년), 亞佩(아패, 1853년), 亞伯(아백, 1852년상해(上海, Shanghai) 출판, 최초 대표역본/대표본/委辦譯本(위판역본), 마태오 복음서 23,35) 등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1851년 경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바로 위의 제6-6-2항에서 말씀드린 "천주강생성경직해"의 유관 부분을 읽지 못하였음을 의미하며,(*1) 그러나 상해(上海, Shanghai)에서 1852년 경에 이르면, 한문본 개신교용 성경 중의 아벨(Abel)의 음역 용어로서, "천주강생성경직해"의 주해에서 사용된 음역 용어인 "亞伯爾"아닌, "아백(亞伯)"을, 개신교회용 대표역본/대표본/委辦譯本(위판역본) 신약 성경 번역 작업 중에 처음으로 받아들여 사용하기 시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2) 바로 이러한 역사적 사실 자체가아벨(Abel)의 음역 용어 "아백(亞伯)"이 또한 버금 맏이, 즉, 차자(次子)의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는 이벽 성조(1754-1785년)"성교요지"가, (i) 아무리 늦더라도, 1852 이전에 중국 상해(上海, Shanghai)에 이미 전달되었고, 그리고 (ii) 중국 개신교회 성서 번역자들 사이에서 또한 읽혔고, 그리하여 그 결과 (iii) 버금 맏이, 즉, 차자(次子)의 의미를 또한 가지고 있는, "성교요지"에서 최초로/처음으로 사용된, 아벨(Abel)의 음역 용어 "아백(亞伯)"이 그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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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이 지적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중국 상해(上海, Shanghai) 소재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1)중문 도서관의 1852년 목록(Catalogue of Chinese library, 1852)에 중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주니오르 디아스 신부님(1574-1659년)의 "천주강생성경직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할 것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52_Cat_of_Ch_lib_in_상해_London_Missionary_Soc_LMS_531/Cat_of_Ch_lib.pdf

원출처: http://nla.gov.au/nla.obj-46642728/view?partId=nla.obj-46642731 

 

(#1) 게시자 주: 중국 본토에 1807년에 최초로/처음으로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목회자인 로버트 모리슨이 소속되어 있었던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의 구성원들 중에서, 특히 중국으로 파견된 목회자들 중의 다수는, 로버트 모리슨을 선두로 하여, 영국 개신교회 장로회 소속이었다고 알고 있다.

 

(*2)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마지막 부분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13년이후_한문본_개신교회용_성경들/창세기_4_2_및_마태오_23_35.htm <----- 필히 클릭하여 맨 마지막 부분을 확인하라

(발췌 시작)   

[내용 추가 일자: 2019년 11월 21일]
Title: Xin yue quan shu / [translated by the Committee of Delegates, appointed by the Protestant Missionaries in China] 
Call Number: LMS 583 
Created/Published: Shanghai(상해) : Mo hai shu guan, Xianfeng ren zi [1852] 1852 최초 대표역본/대표본/委辦譯本(위판역본) 
강소송강상해묵해(墨海)서관(書館)인 
출처: https://nla.gov.au/nla.obj-46906507/view?partId=nla.obj-46908212#page/n17/mode/1up [마태오 복음서 23,35; 亞伯(아백, Abel), 즉, 버금 맏이, 즉, 차자(次子)]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바로 위의 신약성경이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에 의하여 출판되었음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atalogue.nla.gov.au/Record/2027946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이상, 2019년 11월 21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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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Xin yue quan shu 
Call Number: LMS 532 
Created/Published: Shanghai(상해) : Mo hai shu guan, 1853 대표역본/대표본/委辦譯本(위판역본) 
강소송강상해묵해(墨海)서관(書館)인 
출처: http://nla.gov.au/nla.obj-49367608/view?partId=nla.obj-49371713#page/n43/mode/1up [마태오 복음서 23,35; 亞伯(아백, Abel), 즉, 버금 맏이, 즉, 차자(次子)] 

(발췌 시작)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다섯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그리고 바로 위의 신약성경이 런던 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에 의하여 출판되었음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catalogue.nla.gov.au/Record/481000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그리고 "상해묵해(墨海)서관(書館)"이란 상해 소재 런던 선교회 출판사(London Missionary Press)를 말하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 소장 한문 문헌들의 목록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의 소장처인, 상해 소재 런던 선교회중문 도서관(Chinese library)은 이 출판사의 부속 도서관이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다음의 출처에 있는 바로 이 중문 도서관(Chinese library) 1852년 목록(#2) 본문의 제28면에 "묵해(墨海)노인(老人)장서목록"이라는 언급이 명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52_Cat_of_Ch_lib_in_상해_London_Missionary_Soc_LMS_531/Cat_of_Ch_lib.pdf 
원출처: http://nla.gov.au/nla.obj-46642728/view?partId=nla.obj-46642731 

(제28면에서 발췌 시작)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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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게시자 주: 필자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찾아낸 바로 이 목록은 대단히 소중하다는 생각인데, 왜냐하면 1848년 경부터 중국의 다섯 지역, 즉, 상해, 영파, 하문(廈門, Amoy), 홍콩, 광동의 개신교회 측 선교사들이 상해에 모여서 한문으로 성경 번역 작업에 임하여 소위 말하는 대표역본/문리본 한문본 신약 성경 초판 및 구약 성경 초판을 마련하면서 기존의 개신교회용 한문본 성경 용어들을 수정/보완할 때에 들여다본, 특히, 예를 들어,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천주강생언행기략" 등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도 포함된, 한문 문헌들의 목록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이 글의 결론 27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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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70시간 (자료 조사 및 분석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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