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PD수첩, 일본서 재판받는다면

인쇄

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8-08-13 ㅣ No.7194

[한삼희의 환경칼럼] PD수첩, 일본서 재판받는다면
왜곡 '환경보도'에 철퇴
日 법원 판결후 프로그램 폐지
한삼희·논설위원
▲ 논설위원
신문은 줄 쳐가며 읽을 수도, 오려뒀다 나중에 읽을 수도 있다. TV는 원하는 부분만 뽑아 시청할 수가 없다. 내용을 정확히 확인하려고 다시 본다는 것도 어렵다. 자극적인 영상에다 분위기 잡는 음악까지 보태지면 TV가 떠먹여주는대로 삼킬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3년 10월 TV의 '떠먹여주기'에 몽둥이를 내리쳤다. 1999년 2월 1일 'TV아사히'가 밤 10 시 '뉴스스테이션'에서 농작물 다이옥신 오염을 다룬 16분짜리 환경특집이 고소당한 사건이다.

사이타마현(縣) 도코로자와시(市)는 소각장이 많아 '다이옥신의 긴자(銀座·중심지)'라고 불렸던 곳이다. '뉴스스테이션'은 배추에 소각재가 떨어지는 영상, 시금치밭 옆 소각로에서 연기를 토해내는 모습, 자식에게 농사를 못 물려주겠다는 농민 절규를 소개했다.

이어 앵커와 민간 환경연구소 소장이 '야채의 다이옥신 농도'라는 설명판을 들고 나왔다. 전국 야채 평균농도는 1g당 0~0.43피코g(피코=1조분의 1)인데 연구소가 측정한 도코로자와 야채는 0.64~3.80피코g이라는 것이다.

"이 야채라고 하는 것은 시금치라고 생각해도 좋습니까?"(앵커)/"주로 시금치입니다만, 이파리식물이죠."(소장)/"이파리 야채가 0.6~3.8이라, 엄청나군요."(앵커)/"일본 대기오염은 다른 나라 10배 정도고, 도코로자와는 일본 평균의 5~10배 됩니다."(소장)/"세계수준과 비교하면 도코로자와 야채의 다이옥신은 100배 높다, 이런 얘기네요."(앵커)/"100배까지는 어떨지 몰라도 굉장히 높습니다."(소장) 혼동인지 일부러인지 대기 농도와 야채 농도에 관한 설명이 뒤섞여버렸다.

다음 날로 도코로자와 시금치는 4분의 1 가격으로도 안 팔렸다. 그런데 며칠 뒤 '3.80피코g'은 시금치가 아니라 엽차의 수치라는 게 밝혀졌다. 시금치 4개 샘플은 0.64~0.75피코g이었다. 엽차는 찻잎을 건조시켜 중량의 80%인 수분을 없앤 것이다. 수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2월 18일 뉴스스테이션 앵커는 "엽차를 야채라 한 건 잘못"이라고 사죄했다. 23일엔 사장이 사과 회견을 했다. 사장은 3월 11일 국회에 불려가 의원들에게 "제대로 하라"는 호통을 들었다. 6월 21일엔 우정성에 소환돼 경고장을 받았다. 도코로자와 농민들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 소송이 3년을 끌었다. 1심, 2심은 "방송사가 잘못했지만 공익적 보도였다"며 방송사에 면죄부를 줬다. 그게 2003년 10월 16일 최고재판소에서 뒤집혔다. 최고재판소는 "TV는 신문과 달리 시청자가 차례차례 제공되는 정보를 순식간에 이해할 것을 강요당하는 것이어서, 녹화 등 특별한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 이상, 제공된 정보의 의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거나 재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영상과 효과음을 포함한 방송 내용 전체로부터 받는 인상을 종합 고려해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한마디로 트릭을 써서 왜곡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건은 고법으로 환송됐다가 2004년 원고, 피고 간 화해로 종결됐다.

뉴스스테이션은 최고재판소 판결 다섯 달 후인 2004년 3월 폐지됐다. 18년간 뉴스스테이션을 이끌어온 일본 최고 인기 앵커 구메이 히로시도 물러났다. 뉴스스테이션은 화려한 뉴스쇼 편성으로 인기와 비판을 함께 누린 프로였다. 요미우리 신문은 "뉴스스테이션에 가해진 비판 가운데 도코로자와 오보가 무엇보다 컸다"고 했다. 그러나 뉴스스테이션 다이옥신 보도는 왜곡 정도에 있어서나, 사회를 뒤흔든 정도에 있어서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는 비교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PD수첩이 일본에서 재판받는다면 무슨 결과가 나올까.


 

입력 : 2008.07.24 22:35 / 수정 : 2008.07.24 23:51


46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