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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용 이강길 이윤석 선생 등 필독]박정희 제대로 알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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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8-08-13 ㅣ No.7235

박정희考①..졸업생 대표 오카미 쇼히코(岡見尙彦)는 누구인가?

 


박정희의 일제시대 만주군 장교경력을 가지고 까는 것까지는 좋다. 뭐 관점의 차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없는 말까지 지어서 사람을 매도하지 말자. 그것은 역사 청산이 아니라 또다른 왜곡이고 죄를 짓는 일이다. 웹상에서 떠돌고 있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박정희)의 친일행각이란 글을 보면 참 얼토당토 않은 괴설들이 마치 학계의 정설인냥 난무하고 있다. 진보학자들 저서를 토막내다 사람 하나 병신 만드는 일은 요즘 세상에서는 참 식은 죽먹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날나리 왜곡의 첨병에 오마이 뉴스, 한겨레가 주구노릇을 하고 있고 이들의 논리에 착실하게 길들여져 있거나 혹은 길들여질 가능성이 농후한 부류들이 스스로를 "의식있는 진보" 행세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의식은 무슨 개뿔..의식화된 플라스틱 좀비일 뿐이지.. 이들의 소스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주로 박정희 안티로 잘 알려진 김삼웅과 강준만의 저서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되었다. 김삼웅이 누군가?

대가리에서는 깡통소리 나는데 남 헐뜯기 좋아하는 젊은 부류들에게 제법 명망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정작 학계에서의 학문적인 성과라고는 조또 없는 인물이다. 그가 뜬(?) 이유는 이들이 부화뇌동하기 딱 좋을만큼의 떡밥성 이슈를 심심치 않게 던져준 결과일 뿐... 고대사 분야로 치자면 이덕일 본좌급에 비견될 만한 매문가(賣文家)라고나 하겠다.

저 잘못된 글의 대부분은 그가 쓴 쓰레기 저서에서 무단 펌질해 온 것들이다. 그중 대표적으로 한심스러운 부분을 지적하기에 앞서 우선 저 위의 짤방부터 보도록 하자. 위 짤방은 康德 九年 (昭和 17年) 3월 24일 그러니까 1942년 3월 24일자 만주일보의 기사를 스캔한 것이다. 만주일보라는 제호가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김삼웅은 위 만주일보 기사를 소개하면서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박정희가 졸업생 대표로 나와 금시계를 하사 받고 졸업생 대표로 천황찬양으로 가득한 답사를 읽었다고 날조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박정희 안티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김형욱의 회고록에 보면 "그 답사 내용 중에는 "만주국의 왕도 낙도를 지키고 대동아공영권을 확립하는 성전에서 나는 사꾸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읍니다"하는 구절이 있는데, 이에 대한 진위 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은채 소위 진보지식인이란 자들이 마구 인용해다 써 먹고 있다. 내용이 워낙 유치찬란해서 단번에 구라임을 눈치챌 수 있을텐데도 말이다. 그러다 거짓으로 판명나면 인용출처에 핑계를 댈 것인가? 그러고도 그들을 학자, 기자라고 할 수 있나?
 
누차 말하지만 저 위의 만주일보 기사 사진에서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인물은 박정희가 아니다. 당시 만주군관학교 학생대표로 나와 선서를 하고 제식시범을 보인 인물은 박정희가 아니라 岡見尙彦(오카미 쇼히코)다. 또 저 기사 어디에도 황군맹세, 멸사봉공의 비장한 결의를 암시하는 문장따위도 없다. 한마디로 박정희 나쁜놈을 만들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이다.

위 만주일보 기사 원문을 보도록 하자.

"북변수호의 전위에 당하는 국군의 지도자가 되려고 호국의 열정에 타면서 2개년의 과정을 마친  금년도 육군사관학교 제2기 예과생도 岡見尙彦 이하 OO명의 졸업식은 23일 구도교외 납납둔 동덕대同德臺의 육군군관학교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다. 동교정에서 우대신 집행의 관병식을 한 후 졸업생 일동은 동교 무도장에 정렬, 생도 대표 岡見尙彦, 小山重嘉, 양군의 강연, 유·검도의  연련, 측도작업의 실습 등을 하였다. 이리하야 열한시 50분부터 다시 교정에 정렬한 후 졸업증서 수여와 빛나는 우등상 岡見尙彦(日系), 小山重嘉(日系), 高木正雄(鮮系)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있고 폐식 하였다."

혹자는 이렇게 지적할지 모르겠다. 온갖 차별이 횡행하는 가운데 일본인을 제치고 수석을 하기가 쉬운일이냐. 얼마나 황군사상이 투철하고 일제의 똥개를 자처했으면 수석의 영광을 누렸겠느냐..이런 시비를 거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 박정희가 수석을 한 것이 배아픈 건지 조선인이 수석을 한 것이 배아픈 것인지 말이다. 좀 더 솔직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만주군관학교 1기부터 5기까지 졸업생 중 한국학생들이 4번이나 수석을 차지했다. 중국본토의 학생들이나 일본 유학생들을 제치고 한국학생들이 전체적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단순히 황민반도 사상이 투철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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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眞明行 | 2008/02/04 00:34 | 인.물.왜.곡.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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