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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영신수련 4주간에 따른 사순 특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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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웅 [mathias] 쪽지 캡슐

2004-03-19 ㅣ No.2941

 

이냐시오 영신수련 4주간에 따른 사순 특강

정재웅(마티아) 신부

 

 

+ 찬미 예수님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살고 있습니다. 40일의 참회와 보속이 시간.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보낸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서 조금이나마 그분을 알고 느끼고자 이 사순특강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순특강은 4주에 걸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순서는 예수회를 창설한 이냐시오의 30일 피정에 진행할까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30일 피정을 통해 하느님과 더욱 친숙해 질 수 있었고 제 인생에 있어 아주 커다란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사제들은 부제품을 받기 전 겨울방학에 마지막으로 이 30일 피정을 통하여 최종 자신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제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이냐시오 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단어는 바로 식별과 선택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잘 식별하지 못하고 옳은 길을 제대로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짧은 4번의 강의를 통해 이 시간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커다란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또한 인간의 유한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분의 역사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아주 사소한 것에서 아주 커다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냐시오 30일 피정은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4주간 30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피정에서는 한 주간의 커다란 테마를 가지고 성서구절과 이냐시오 영신수련 책을 통하여 묵상 테마 하나에 한 시간을 투자하여 매일 5시간 정도를 묵상하게 되니까 결국 일주이면 5*7 35. 35시간의 묵상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일주일에 35시간을 묵상에 투자한다는 것이 조금 무리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매일 한 시간의 묵상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강의 끝에 하루에 한 가지씩의 묵상 주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무리는 하시지 마시고 시간이 가능하시다면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냐시오 30일 피정에서 첫째 주간에서는 피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知彼知己면 百戰百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첫 주에는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냐시오 30일 피정에서 둘째 주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들의 모델이십니다. 제자가 스승을 완전히 닮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시늉만이라도 한다하더라도 많은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이냐시오 30일 피정에서 셋째 주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게 합니다. 영광은 바로 수난 다음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수난, 고통을 통하지 않고 우리는 절대 영광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혹 수난과 고통없이 영광에 도달했다하다면 그 영광은 분명 거짓 영광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정치가들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냐시오 30일 피정에서 넷째 주간에서는 무엇을 보게 할까요? 예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처절한 죽음 다음에 부활이 없었다면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 믿음은 모두 거짓이 되고 말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꾸며낸 허구라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2000년의 시간. 시간은 정화의 힘이 있습니다. 거짓은 그 시간 안에서 분명 걸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20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은 절대 거짓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에 이렇듯이 나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첫 시간으로서 첫째 주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내 자신을 바라보기 전에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창조하시고 나를 어떻게 돌보고 계시는 지를 보게 합니다.

 

요한 1서의 말씀.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이사야 43장의 말씀 “어찌 해안지방을 주고라도 너를 찾지 않으며 부족을 내 주고라도 너의 목숨을 건져내지 않으랴”

 

시편 8편의 말씀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이사야 55장의 말씀 “야훼를 찾아라, 만나주실 때가 되었다. 그를 불러라 옆에 와 계신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요? 내가 무엇이기에 하느님의 아들을 희생제물로 그분을 담보로 내가 살아난 것일까요? 과연 내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일까요? 내 스스로도 느끼지 못하는 소중함을 하느님께서는 더욱 느끼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당신의 아들, 딸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나는 과연 그 사랑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진정 착한 아들, 딸인가요? 아니면 그분의 뜻을 알면서도 자꾸 그분을 속이고 그분을 떠나 달아나려는 아들, 딸일까요?

 

루가 15장. “탕자의 비유”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귀찮아했고 그래서 그 사랑에서 벗어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그 어느 곳이 아닌 아버지 하느님의 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아담과 하와의 죄” 그 모든 것을 다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하나의 부족한 것에 대해 투정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지옥을 보게 함. 나는 과연 천국과 지옥과 연옥이 있다면 어디를 갈 수 있을까? 지옥은 너무 무섭고 천국은 양심이 있어 못 가겠고 결국 연옥을 선택하지만 연옥은 지옥과 같은 곳 단 구원의 희망이 있을 뿐. 나는 너무 쉽게 연옥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지.

 

지옥과 연옥에 떨어질 나. 그러나 주님께서는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기회를 주시고 아직 희망을 주시는 분. 내가 무엇이 잘 나서. 단지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하여.

 

죄에 물들어 있는 나를 보게 함. 지옥에 빠져있는 나를 보게 함.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함. 지금 이대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긴장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구원으로 부르고 계시는 하느님. 그 하느님의 목소를 우리가 들을 수만 있다면 그 애절한 아버지 하느님의 부르심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묵상 주제.

 

주  일. 시편 139,1-18

월요일. 이사야 43,1-7

화요일. 시편 8

수요일. 이사야 55,1-9

목요일. 루가 15,11-24

금요일. 창세기 3,1-7

토요일. 로마서 7,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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