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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호암봉사상 받은 벽안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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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nuri] 쪽지 캡슐

2002-04-11 ㅣ No.8748

 "이 상은 제가 아니라 어머니 노릇을 한  원장이 타야 해요"    

10일 호암재단(이사장 이현재)의 사회봉사상 수상자로 확정된
벽안(碧眼)의  지정환(池正煥.70)신부는 중증 장애인을 묵묵히
돌보며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박남순(여)원장과 천주교 재단에
공로를 돌렸다.


지씨는 전북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 고즈넉한 곳에 자리잡은 장애인 수용시설`무지개 가족’의 지도신부다.


자신이 `다발성 신경 경화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지 신부는 벨기에 출신으로 40여년간
농민과 장애인을 위해 국적과 종교를 초월한 사랑을 실천한 공로로 봉사상을 받았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1958년 천주교 신부로
서품(서품)된 뒤 전쟁으로 피폐한 한국에서 활동키로 결심, 영국으로 건너가 1년간
한국어를 배우고 이듬해 한국에 들어왔다.

 

본명인 디디에 세르스테반스(Didier T’Serstevens)를 버리고 지정환으로  개명,
전북지역 농촌을 돌며 계몽운동을 펼쳤다.

 

 

특히 부안 성당의 주임신부로 재직하던 60년대 초기 간척사업을 통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으며 임실 성당 지도신부(64-81년) 때는 국내  최초의 치즈공장을
세워 지역 농민들의 자활기반을 닦았다.

 

 

공장 전무로 일하던 그는 지난 81년 정부의 인가를 받아 임실 치즈공장을  농민들이
주인인 협동조합 형태로 변경한 뒤 운영권과 소유권을 조합에 넘기고 훌훌  떠났다.

 

 

그는 또 `골방에 숨어 지내는 장애인을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는 신념으로 84년 전주시
인후동에 28평 아파트를 전세내 `장애인을 위한 집’을 개원, 중증  장애인을 본격적으로
돌보기 시작했으며 4년 뒤 천주교 재단의 도움으로 현재의 `무지개 가족’을 설립했다.

 

 

약물이나 운동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자연스런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자활이
가능하다고 믿고 장애 정도를 판단,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도와주지 않았다.

 

 

이 곳을 거쳐간 150여명은 대부분 교통사고로 사지가 절단되거나 목뼈가 부러진 중증
장애인이었지만 수십명이 신체의 제 기능을 어느 정도 되찾아  귀가했으며  이 가운데 15명은 결혼해 일가를 이뤘다.

 

1년에 1억5천만원인 운영비는 천주교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16명의 무지개 가족은
형편에 따라 매월 1만원에서 20만원까지 부담하고 있다.

 

 

’장애인과 결혼했다’는 지 신부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이제 힘이 부쳐 젊은 신부가 와서 맡아줬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장애인
곁에서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다"는 벽안의 신부는 머리도 많이 셌다

 

 

 

(전주=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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