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암동성당 게시판

말로는 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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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순 [husac3] 쪽지 캡슐

1999-07-02 ㅣ No.74

 

그 여자는 휴일이면

늘 시골집으로 전화를 겁니다. '그리울땐 눌러 주세요' 하는 광고 때문이 아니라, 도시에서의 팍팍한 삶에 지친 끝에 얻는 휴일이면 늘 고해성사를 하듯 시골집으로 전화를 걸고 싶어지지요. 그러나 그 여자가 정작 통화하고 싶은 어머니와 통화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시골집으로 전화를 하면 우선 할아버지 할머니께 문안 인사를 챙겨야 합니다. 일흔이 넘으신 할어버지 할머니는 같은 얘기를 하고 또 하시면서 손녀딸의 목소리를 들으시지요. 더 이상 전화기를 붙잡고 있기가 힘겨울 때쯤 할어버지 할머니는 아버지를 부르십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객지에 취직해서 혼자 살고 있는 딸이 못내 걱정스러우셔서 이것 저것 당부의 말씀으로 또 시간을 채우시지요. 그리고 나면 당연히 어머니를 바꿔 주는 것이 순서일 수 있겠습니다. 그 여자의 그리움이 가장 먼저 가서 닿는 자리가 어머니의 가슴이니까요.

 

그러나 그 여자는 어머니와 통화를 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말을 못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그 여자는 어머니를 바꿔달라고 얘기합니다. 비록 어머니가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셔도 그 여자는 눈물을 참으면서 가슴으로 얘지하지요. 아마도 어머니는 수화기를 통해서 전해오는 떨림으로 딸의 마음을 헤아리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시골집과의 통화를 끝내고 나면 그 여자는 고해성사를 마친 신자처럼 홀가분해지기도 하지만, 끝내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 못하시는 어머니의 가슴이 느껴져서 목이 메곤 합니다. 마주보고 앉았으면 손짓으로라도, 혹은 껴안아 주는 알로라도 사랑을 표현하셨을 어머니-. 그래도 그 여자는 생각합니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말로 못하는 안부, 전화기로는 결코 할 수 없는 통화가 있는 거라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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