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마음을 다듬는 미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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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21 ㅣ No.5560

 

복잡한 시장 한가운데 작은 미용실이 있었습니다.

손님이 뜸한 시간, 미용실 주인은 나른한 기분으로 잠시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몹시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대며 들어온 남자는 주인이 자리를 권하기도 전에 아무 의자에나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아주 빡빡 밀어주세요."

"네?"

"빡빡 밀어달라구요."

남자는 화를 벌컥 내며 쏘아붙였습니다.

그제서야 여자는 그 화난 손님이 가까운 이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마도 뭔가 속상한 일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슨 일이길래 저럴가?’

뜻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 머리카락에라도 분풀이를 하자는 심정이라는 걸 주인은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성껏 커피를 타서 가위를 들기 전에 차를 한잔 권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차를 마시는 동안 말을 건넸습니다.

차를 마시던 남자는 좀 진정이 됐는지 함숨을 내쉬며 푸념을 시작했습니다.

"휴, 도무지 맘 붙일 데가 있어야죠."

사연은 그랬습니다.

한 달 전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는데 그렇게 잘 해주던 아내가 벌써부터 무시하고 짜증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머리를 빡빡 깎지 말고 짧게 다듬으면 어떨까요? 아님 볶으시든지....."

"네? 볶아요? 허허."

볶으라는 말에 예상대로 웃음을 터뜨린 남자는 빡빡 밀어 달라는 주문을 거두었습니다.

"그냥 신입사원처럼 짧게 깎아 주세요. 그나저나 사람 마음을 더 잘 다듬으시는군요."

"제가 그랬나오? 후후...."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칭찬에 미장원 주인은 행복해졌고, 화가 잔뜩 나서 들어왔던 남자는 잠시 후 10년은 젊어진 모습으로 미장원을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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