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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친일 옹호론자의 놀라변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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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동 [nuri] 쪽지 캡슐

2002-03-12 ㅣ No.8724

[왜냐면] 어느 친일 옹호론자의 놀라운 궤변 / 김영명

 

 

 

지난 7일치 <중앙일보>에 놀라운 시평이 하나 실렸다. 제목이 `민족과 친일’인데, 그 주장은 한 마디로 일제 시대에는 우리에게 `민족’과 민족의식이 없었으니 지금의 잣대로 친일파의 죄를 묻는 것은 `낡은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지만, 친일파의 후손들이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충분히 나옴직한 얘기이기도 하다.

 

 

 

 

 

 

강위석이라는 어느 영어 제목 잡지의 편집인이 쓴 이 글은 사실에 대한 이해 부족과 궤변으로 가득차 있다. 먼저 그는 한일합방 당시 우리에게 민족의식이 없었고 그래서 민족도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민족이란 근대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서구적 개념의 민족을 말하는 것 같은데, 우선 천 년 이상 한 겨레로 살아온 우리에게 서구식 민족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 자체가 문제거리다.

 

 

 

또 설사 그런다고 하더라도 이미 개항기에 우리에게는 외세에 반대하고 근대국가를 지향하는 민족의식이 형성되고 있었다. 이는 학계의 정설이다. 단지 그것이 세련되고 체계화된 정치 이념으로 자리잡지 못했을 뿐이지만, 이를 가지고 민족이 없었다느니 민족의식이 없었다느니 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이거나 친일 옹호를 위한 왜곡일 뿐이다.

 

 

 

 

 

둘째,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의 민족의식은 `허위의식’일 뿐이라는 설익은 논리를 편다. 외세에 대항하는 피압박 민족들의 민족주의가 허위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는 서구의 국민국가 형성과 제국주의 경험을 그대로 옮긴 강대국의 논리에 불과하다. 이런 논리는 자연히 친일 옹호론으로 연결된다.

 

 

 

 

 

 

셋째, 그는 이완용이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고 이미 이리저리 찢어져서 싸움만 하던 조선이 그냥 망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조선이 망한 것은 조선의 책임일 뿐 일본에게는 강탈의 잘못이 없다는 논리다. 적극적인 일제 옹호의 논리다.

 

 

 

 

 

 

넷째, 나아가 그는 일제는 우리에게 철도와 학교를 지어주고 양반 계급을 타파해 주었을 뿐 아니라 더 중요하게 민족 의식을 `싹트게 해 준’ `훌륭한 공로’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민족의식도 없이 지리멸렬하던 조선인들이 일본의 합방 덕분에 비로소 민족으로서 형성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내 물건을 훔쳐서 집 단속과 준법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도둑에게 고마워하자는 논리다. 이쯤 되면 비단 친일이나 일제를 `옹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일제 `찬양’론으로 심화된다.

 

 

 

 

 

 

다섯째, 그는 또 한국에서 민족의식이 본격적으로 우거진 것이 1980년대부터라고 한다. 아마 당시의 민족민주운동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이 또한 전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다. 일제 시대와 그 이후 민족 독립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숱한 민족운동가들을 그의 말대로 `약간 명의 충성스런’ `신하’로 어떻게 폄하할 수 있단 말인가?

 

 

 

 

 

 

여섯째, 그는 `일제 하의 친일을 곧 민족에 대한 배반으로 보는 데는 과거의 무의식을 현재의 의식으로써 판단하는 시간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친일이 민족 배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의 말대로 당시 조선에 민족이 없었다고 치자. 그러면 그것은 조선인에 대한 배반은 아닌가? 이런 궤변을 늘어놓지 말고 차라리 친일이 좋았다고 속마음을 밝힐 일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는 정치적 퇴행성 강박 관념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고 실패한 정치가의 운명적인 선동으로 낡은 레코드판처럼 반복 회전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과연 무엇이 퇴행적인가? 친일 논리인가, 아니면 친일 청산의 논리인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어떤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말인가? 친일파 단죄를 `선동’이니 `낡은 레코드판’이니 하면서 그야말로 선동하는 것을 보면서 뿌리깊은 친일파의 지배력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두려운 것은 이런 새로운 `친일파’들의 `퇴행적 선동’이 득세하여 선과 악의 구분을 흐리고 도덕과 윤리를 팽개치고 힘과 상황의 논리만 앞세우는 현실 순응자, 또 이를 정당화하는 궤변의 무리들로 가득차는 일이다. 친일파의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무리들이 힘과 궤변으로 그것을 훼방놓고 있기 때문이다. 반민특위의 와해와 같은 일이 다시는 못 일어나게 뜻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을 때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먼저 지난주에 <중앙일보>에 실린 강위석 <에머지새천년>(중앙일보사에서 내는 월간지) 편집인의 ’시평’을 독자는 만나야 합니다.

 

 

 

< 원문 >

 

 

[중앙 시평] 민족과 친일 / 강위석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교장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민족이란 것은 3천만 겨레를 말합니다. 영토라는 것은 3천리 강산을 말합니다. 역사란 것은 반만년 역사를 말합니다"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민족이란 말의 뜻이 이렇게 꽉 차게 구체화되는 것을 마흔살이 넘어 그에게서 처음 들었던 것이다.

 

 

 

 

 

*** 조선에 민족의식 있었나

 

그런데 김용기 교장은 언제 누구한테서 민족이란 말을 배웠을까. 이 질문이 그후 25년이 지난 지금 내게 떠오르고 있다. 적어도 이 점만은 분명하다.

 

 

 

 

민족이란 말은 명치유신 이후에 일본에서 지어진 단어다. 중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한자문화를 가르친 공적을 자랑하면 일본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중화’를 제외한 ’인민’과 ’공화국’이란 말은 현대의 일본이 만들어 공급했다고 되받는다고 한다.

 

 

 

 

일제가 조선을 합방(合邦)하던 때 조선에는 이 합방을 수치스럽게 여길 주체인 민족의식이 없었다. 민족은 민족의식과 다름이 없다. 따라서 조선에는 ’민족’이 없었다. 이완용 등이 ’매국(賣國)’한 조선에는 주권(主權)과 영토는 있었지만 스스로를 국민이라 의식하고 그 주권과 영토가 자기네 것임을 주장하는 민족이 없었다.

 

 

 

 

왕과 양반의 것으로서의 조선조의 주권은 한일합방 전에 거의 자멸해 있었다. 외세와 싸우다 져서 멸망한 것이 아니다. 이완용 등이 ’매국’했다는 것은 과장된 수사(修辭)다.

 

 

 

 

싸움은 청국.일본.러시아라는 외세들 사이에서만 무주물(無主物)이 된 조선의 주권을 선취(先取)하려고 벌어졌다. 친일파.친로파.친청파는 이름을 갈아 단 사색당파의 변종(變種)이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적절하지 않을까.

 

 

 

 

일본이 조선의 주인이 된 후의 친일파라는 조선의 엘리트는 노론(老論)의 세상을 계승했을 뿐이다. 멸망한 조선조에 대한 약간명의 충성스런 ’신하’를 민족주의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민족은 외부적으로는 다른 민족과의 경계내지 갈등, 내부적으로는 민족 주권이라는 두 측면을 거쳐 의식화된다.

 

 

 

 

조선왕조처럼 ’백성’에게는 수직적으로 바쳐야 할 충성만 있고 수평화된 자유와 인권은 없는 국가에서는 민족 주권이 없기 때문에 국가는 있어도 민족의식이 있을 수 없다. 나아가 자유와 민주주의가 없는 나라의 민족의식은 허위 의식(false consciousness)일 뿐이다.

 

 

 

 

일본 사람들은 일제가 한국에 철도와 학교를 지어준 것을 자랑 삼는다. 원일한(H B 언더우드) 교수는 일제가 한국에 끼친 공로는 철도나 학교의 건설이 아니라 양반계급의 파괴라고 말한다. 놀라운 통찰력이다.

 

 

 

 

그러나 아마도 일제의 더 훌륭한 공로는, 비록 이를 감사할 수는 없으나 타민족에 의한 지배라는 고통과 갈등을 통해 한국인에게 민족의식을 싹트게 해준 것이 아닐까.

 

 

민족을 구성하는 요건은 공통된 언어.신화(神話:역사).영토, 이 세가지라고 흔히 말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공통된 신화이고, 현대의 모든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가장 중요한 신화는 자유와 민주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19세기 유럽의 민족주의는 자기 민족의 고유한 고대신화를 지어내는 데 열광했다. 그러나 과거의 신화가 있을 수 없는 미국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미래의 신화로 ’미국 민족’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르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에서 보여 주었던,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한 미국의 ’민족주의’말이다.

 

 

 

 

*** 현재 잣대로 과거 단죄

 

한국에서도 민족의식이 본격적으로 우거지기 시작한 것은 남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가 본격화된 1980년대부터로 보인다. 외부적으로는 일제 때 싹텄던 민족의식이 내부적으로 이때야 무성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자유와 번영이라는 미래의 신화가 한국에서도 민족의식의 온전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제 때 민족적 항일운동을 한 선각자들은 민족의 사표로 길이 찬양받을 만하다. 그러나 일제 때의 친일을 곧 민족에 대한 배반으로 보는 데는 과거의 무의식을 현재의 의식으로써 판단하는 시간적 오류가 있다.

 

 

 

 

그러므로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는 정치적 퇴행성 강박관념은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실패한 또는 실패할 정치가들의 운명적인 선동으로서 낡은 레코드처럼 반복 회전할 뿐일 것이다.

 

 

 

 

姜偉錫(월간 에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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