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따뜻한 이야기>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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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섭 [jayhan] 쪽지 캡슐

2003-05-29 ㅣ No.3973

 

별빛은 유난히도 빛나고 차가운 초겨울 바람이 목줄기를 파고들던 어느 이른 밤이었습니다. 별들만 반짝이고 있던 남보라빛 하늘에 유난히도 크고 검은 새 한 마리가 사뿐히 살얼음 낀 호수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콰르르르~ 쿵!"

 

어둡고 적막하기만 하던 호숫가에 요란한 굉음을 내며 내려앉은 그 새는 이윽고 시뻘건 불꽃에 휩싸인 채 검고 거대한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호숫가에 내려앉은 그 새는 260명의 승객을 태우고 공항에 착륙을시도하던 일본의민간 항공기였고 기체 고장으로 탑승했던 260명의 승객모두는 그렇게 차가운 밤하늘 아래 연기되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튿 날 안타까운 심정으로 여기저기 뒤엉켜 있는 유품들을 수습하던 한 구조대원에 의해 작은 철제 보석함이발견되었는데 뜻밖에도 그 속에선 슬프도록 찬연하게 빛나는 짤막한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습니다.

 

"얘들아, 아빠는 지금 가장 절박한 비행을 경험하고 있단다. 그 속에선 슬퍼하지 말거라, 나는 너희들에게 갈 수 없겠지만 언젠가 너희들이 내게로 오면 우린 만날 수 있지 않겠니? 여보,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글 한 줄 쓰지 못했는데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쓰게 되는구려. 용서하오. 하지만 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소. (중략) 지금은 참 평안하다오."

 

처절하고 혼란했을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들에게 마지막 사랑의 편지를 남긴 한 아버지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현장을 수습하던 구조대원들과 전 일본인의 가슴에 너무도 깊은 인상을 심어 준 이 한 장의 편지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사고 속에서도 불에 타지 않고 한 마리 새처럼 살아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낮은울타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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