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7월9일 주일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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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heonheon] 쪽지 캡슐

2000-07-07 ㅣ No.1448

 

  첫번째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의 집안 내력을 살펴 보면 퍼뜩 머리에 떠오르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은 '패가망신(敗家亡身)' 입니다.

그 집안은 천주교 때문에 패가망신한 집안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집안은 천주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극심한 박해의 회오리에 흽쓸려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나버렸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집안에서 증조부 김진후가 처음으로 천주교에 입문하면서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김진후(비오)10년 동안 옥고를 치른 끝에 1814년 옥사 순교하셨습니다.  김진후뿐 아니라 그의 셋째 아들 종한(안드레아) 그리고 종한의 딸 데레사와 그의 남편 손연욱(요셉)도 천주교를 믿었기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김진후의 아우 선후의 손자 제교와 진후의 넷째 아들 희현의 아들인 제항(루도비코)도 순교하였고, 김대건의 숙주 제철의 아들 진식(베드로)과 선식(프란치스코)도 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김대건의 아버지 제준은 1839년 서울 서소문에서 참수 순교함으로써 103위 성인 중의 한 분이 되었습니다.

 

  한 가문에서 이렇게 많은 순교자가 생겼고 성인이 두 분이나 배출되었다는 것은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훌륭한 집안이겠지만 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한 집안이 천주교 때문에 참변을 당한 꼴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그런 참변을 당한 집안이 김대건 신부님 가문만은 아닙니다.  아마 천주교 신자 집안은 대개 다 그랬을 겁니다. 이 땅에 처음으로 천주교회가 창설된 원년이 1784년입니다. 바로 그 이듬해부터 박해의 열풍이 몰아닥쳐 백 년 가량 지속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고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순교자들이 줄잡아 만여 명을 헤아립니다. 그 분들 가운데 아무런 흠이 없고 행적이 뚜렷한 103분이 성인품에 오르셨지만, 이름도 행적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순교자들이 흘리신 뜨거운 피가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밑바탕이 되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소중한 생명마저 기꺼이 내놓으신 우리 선조 순교자들도 자랑스럽지만, 그 극심한 박해 속에서 천주교 교우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환난과 고초를 감수, 인내하면서 꿋꿋하게 신앙을 지키면서 삶을 꾸려가신 우리 신앙의 선조들 역시 자랑스럽습니다.  그분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항상 준비하면서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분들 중에는 가장이 순교함으로써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도 있고, 관헌들의 극심한 매질에 평생 불구로 사신 분도 있고, 노비로 팔려간 경우도 있고, 강간을 당하여 가슴에 한을 안고 여생을 마친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이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끝까지 살아 남아 우리들에게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 주셨습니다.  

  아무튼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초기 백년 동안은 박해의 연속이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돌아가시기 직전에 교우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각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박해가 아무리 심하더라도 전투에 나선 군사처럼 의연히 그 박해를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들의 신앙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박해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 때는 박해하는 세력이 뚜렷이 식별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신앙을 박해하는 세력은 자기 본색을 교묘하게 감추고 우리들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는 훨씬 세련된 방법으로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느 틈엔가 우리 마음속에 해집고 들어와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우리의 신앙을 빼앗아갈지 모릅니다.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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