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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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자 [stellara] 쪽지 캡슐

2004-08-21 ㅣ No.4556

 

너를 사랑해...

 

 

우리 집의 여섯살 짜리 꼬마 녀석이 꽃나무 가지와 씨름을 하고 있는 것을 본 나는 하루를 우울하게 시작했다.

내가 정원으로 달려 나갔을 때 이미 가지는 부러져 있었다. 그 꽃 나무는 내가 무척이나 아끼던 나무였다.

"정말 미안해." 나무가 알아듣기라도 하듯 나는 부러진 가지를 쓰다듬었다.

그 꽃나무에게 한  '미안하다.'는 말을 똑같이 남편에게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세탁기에 물이 새서 새 장판을 버려 놓았기 때문이다.  '조나단과 장기 두지 말고 내가 부탁한 대로 어젯밤에 세탁기를 고쳐 놓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테데. 도대체 우선 순위가 뒤죽박죽이야' 나는 속으로 남편을 비난했다.  조나단이 부엌으로 와서 물었을때 나는 아직도 장판을 닦고 있었다.

"엄마, 아침은 뭐예요?"

"씨리얼은 안돼"라고 말하자 조나단이 입을 삐죽거렸다.

"대신 빵에다 쨈 발라 줄게."  토스트에 잼을 발라서 아들의 앞에 놓으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남편의 아침 식사 그릇을 설거지 통속으로 던졌다.

 

오늘 같은 날은 전부 다 던져버리고 산으로 가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젖은 옷들을 집 근처 세탁방으로 들고 갔다.  남편 셔츠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시계를 보자 오후 2시 반이었다.  조나단의 학교가 파하는 시간인 2시 15분이 이미 지나 있었다.

학교를 향해 급하게 차를 몰았다. 숨을 헐떡이며 조나단의 교실에 당도해서 유리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선생님이 문을 열고 나를 한쪽에 세우자 마음속으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조나단에 관해 얘기 할 것이  좀 있어요." 나는 최악의 경우를 미리 머리 속에 떠올렸다.

"조나단이 오늘 학교에 꽃을 가져온 것을 아세요?" 선생님이 물었다.

꽃나무를 떠올리며 오늘 아침의 일로 인한 아픔을 애써 감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일을 말씀 드려야 겠어요. 저기 여학생 보이시지요?" 고개를 돌려 보니 눈이 맑은 한 여자 아이가 웃으면서 벽에 붙은 화려한 색 그림을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저 아이가 거의 정상이 아니었어요. 엄마와 아빠가 이혼 수속 중이거든요. '살고 싶지 않고 죽어 버렸음 좋겠다'고 말했어요.  저 어린아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반 전체가 다 들리도록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이를 달래는 것밖에는 없었지만 그럴수록 아이는 더 크게 울어 댔지요.  오늘 조나단이 저 아이에게 다가갔어요.  그러고는 예쁜 분홍색꽃을 아이에게 주면서 이렇게 속삭이지 않겠어요?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내 아들이 한 행동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나단의 손을 잡고 선생님께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오늘 선생님이 제게 최고의 선물을 주셨어요."

 

그날 저녁 나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꽃나무 주위에 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조나단이 오늘 친구에게 베푼 사랑을 생각했다. 아들이 사랑을 실천하는 동안 나는 분노만 실천했다니.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 차의 낯익은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꽃나무에서 활짝 핀 꽃송이 하나를 꺾어 들었다.

 

하느님이 우리 가족에게 심어 주신 사랑의 씨앗이 다시 한 번 활짝 꽃피는 것 같았다.

"사랑해요. 여보."

한마디의 말과 함께 꽃을 건네주는 나를 보는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퍼온글 입니다.(성모님의 동산-함께 계신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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