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발동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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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venivediveci] 쪽지 캡슐

1999-12-15 ㅣ No.1339

눈이 내린 저녁.

내일, 아니지. 시간상 오늘이 시험인데 다시금 발동이 걸렸습니다.

눈 내리는 걸 보니 자연스럽게 러브레터O.S.T.에 손이 갔습니다.

(영화 재미있게 보신 분은 O.S.T.도 꼭 들어보세요!! 아쥬 쥑입니데..)

음악을 듣다보니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인지 아닌지 어쨌든)에 무작정 바깥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눈은 녹아 진탕이 되어 있었습니다.

포근하게 쌓여있으려니 기대했는데.. 함빡함빡이 아니라 질뻑질뻑이더군요..

 

누가 그런 말을 만들었는지... 눈오면 좋아하는 건 견(犬)들만은 아닌 게 분명한데.

두시간을 걸었나? 열심히 꼬리치려고 나갔다가 꼬리 내리고 그냥 들어와 버렸습니다.  깨∼갱..

 

기말고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어디론가 그냥 가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아무 계획 없는 여행이 제일 매력있는 여행같아요.. ♬♪  아닌가?.. -_-

 

 

월요일에 상담심리학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저 외우기만 하면 잘 볼 수 있는 시험이어서 (라고 변명하지만)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시험준비 하나도 안하고 바로 그 전날까지 뻐팅겼었습니다.

 

내가 이상한건지..

시험 범위 내용 다 공부해놓고 나서, 시험지 받아서 다 아는 거 쓰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시험에 답 다 아는 문제 나오면 생각할 틈 없이 저장해놨던 거 쏟아놓기만 하면 되니깐설라무네..

또 시험 몇시간을 앞두고서만 할 수 있는 ’번개’공부의 thrill에 재미들린 바라 그 날도 비워진 마음, 가난한 뇌로 학교를 향했습니다.   (→이건 분명 합리화 아니면 변명에 불과함이 확실시됩니다.)

시험 두 시간을 앞두고.. 책상 위에는 일곱 시간을 공부하고도 모자를 분량이 놓여있었습니

다. 그런 상황에서 저라는 놈은 걱정 하나를 하지 않더라고요. 이런 걱정불감증이 초래한 건

대학교 입학한 이래 단 한 학기도 권총을 놓치지 않았다는 거.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말이죠.. 머리 싸매고 번개공부해도 모자랄 그 와중에 번개공부보다 더 재미있고 스릴넘치는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공부할 때도 그렇고, 뭘해도 혼자 있을 때는 항상 음악을 듣는 터라 그날도 이어폰을 꽂은 채 상담에 대한 썰들을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귓가에 흐르는 음악이 약간, 아주 야∼악간 미칠 정도로 좋더랬습니다.

그래서, 뭐.. 저도... 그냥.. 약간 아주 야∼악간 미쳐버렸지요, 뭐...

책상 위에 책은 그대로 펼쳐놓고 강의실을 나와 두 시간 내내 음악에 빠져 헤엄쳤습니다.

(앙드레 가뇽의 ’Presque Bleu’)

 

......... 그 때의 황홀함이란..  (→이건 분명 미쳤슴이 확실시됩니다. 제 대학교 별명이 ’싸이코’인게 완전히 가당찮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두시간 뒤. 시험은 역시 배신을 때리지 않더군요. 당당히 2등했습니다.

 

점수 2등이 아니고, 시험 빨리 보고 나오기 2등...

 

성적은 행복순도 아니지만 시험빨리보기순도 아닌 것 같습니다..

정직하게 저를 평가해 주겠죠.

세상이 가끔은 저를 속여도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험 못본 사람을 속여서 좋은 점수를 주는 세상...  (→아직 미친 기가 다 빠지지 않은 게 확실시됩니다.)

 

 

지금도 열심히 책 붙들고 있어야 할 학도가 새벽불 밝히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오늘 있을 시험은 성행동심리학이라고요.. (→저는 불완전변태인지라 완전변태가 되기 위해서.)

2중전공으로 경영학이랑 심리학을 하고 있어서 심리학 수업을 많이 듣습니다.  근데 심리학 전공하는 사람 있으면 다들 묻더라고요. "무에야? 심리학을 한다고? 자, 그럼 어디 내마음을 읽어봐!"

훌쩍...  어린 반푼어치도 없는 말입니다.

 

어쨌든 성행동에 대한 ’고찰’을 시작하기 위해 이 글을 마쳐야겠군요.

이놈에 발동이 꺼져야 오늘이나 내일이나 무난하게 시험공부를 할텐데...

 

 

신해철은 ’때로는 미쳐보는 것도 좋아, 가끔 아주 가끔은’이라고 노래했는데,

자주 미치고 싶은 사람한테는 아무 얘기를 안해주었군요, 쩝.

 

할 일이 쌓였을 땐 훌쩍 여행을!

아            ∼ 호우!!

 

 

 

 

 

모두들 달콤한 잠 주무시고, 힘찬 하루 맞이하시길..

 

p.ss.

·요한 신부님, 세심하게 신경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책 통독하는 것을 신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으로 알고 2002년 말년병장 이수현 열심히 읽겠습니다. 충성!

·안나수녀님 수술 부디 잘 이뤄졌길 기도합니다.

·송토벤단장님 반갑숩네다!  

·지금은 새벽불 밝히는 재현이도 자고 있겠지? 일찍 일어나려면야.. 안 자고 있으면 같이 술 한잔하고 싶건만. (019.365.3988)

·소영아, 너도 발동걸렸구나.

·세희는 그 음악 듣지 마라.  들으면 다쳐!

·청년연합회 fighting!! 승필형, 수현누나 잘하실 거라 믿습니다.

·종희, 기운 차리고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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