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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을 헤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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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94deofilo] 쪽지 캡슐

2000-01-21 ㅣ No.573

안녕하세요, 정지원입니다.

 

가고 싶었던 지리산을 다녀왔습니다.

비록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꼭대기인 천왕봉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산에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상쾌한 기분입니다.

객기를 부려 정상에 갈까도 생각했지만 산장지기님이 막았고 욕심을 부려서 무엇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눈속을 걷는다는 것.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산위의 고목들, 이름모를 새들, 길섶의 대나무들. 모두 아름답게 아름답게.

 

힘에 부칠수록 하느님을 찾게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기묘묘하게 꾸며놓으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이란 한갓 힘없는 존재이더군요. 이산 저산 골짜기 봉우리 모두를 어디서 재료를 가져다 빚어놓으셨을까? 예전에 어렸을 때 그냥 그저 있는 산이구나 했지만 지금은 그 때의 그 산이 아닙니다. 산은 산이나 앞의 산과 뒤의 산은 다른 것 이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셨나요?

산에 오르면서 힘들때 주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갈증이 나면 고이 쌓인 눈을 입에 한 움큼씩 집어 넣었는데 그 맛이 어느 아이스크림 이상이었답니다.

 

눈 송이 하나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도다.

그 우주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네.

 

산으로 갑시다. 우리 동네 뒷 산인 북한산이라도 말입니다.

설악산, 지리산도 정말 좋지만 뒷 산인 북한산도 정말 좋은 산입니다.

인자요산, 지자요수라는 말을 다 아시지요.

산에 가서는 어려운 친구도 더욱 친하게 될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산으로 가십시오.

그 안에서 보이지 않던 우정의 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단 산에 가서 산을 보아야 합니다.  

이번 산행으로 인간이 자연앞에 얼마나 무력한가를 다시 볼 수 있었답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지 주인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산에 들어가니 욕심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면서 다닐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산은 노력한만큼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친구들과 같이 산에가서 마음이 든든할지라도 이점만은 확실한가 봅니다.  여럿이 가더라도 결국에는 혼자 힘으로 가야한다는 사실말입니다.

그러나 더 깊이 느낀다면 혼자 힘으로 가되 그 발을 띠게 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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