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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신선하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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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94deofilo] 쪽지 캡슐

2000-01-23 ㅣ No.597

제목을 신선하게 하면 많이 볼거라고요?

 

"우째, 이런일이""떴다!"....    뭐 이런거로 하면 많이 열어본다고 한다나 뭐라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숱한 변화와 새로움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신선하지 못하고 어떻게서든 튀지 않으면 보지도 듣지도 않는 시대로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작 상식적인 사실과 진실함은 튀거나 신선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글이나 진실된 글을 쓸 때 제목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 내용의 핵심이 되는 것을 제목으로 삼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집입니다.

 

새롭고 참신한 것만 택하고 그렇지 못하면 버리고 만다면 지금까지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하나였고 변하지 않고 시대 속에서도 진부하지만 날카롭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는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첫째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는 법이 그 첫째 일 것입니다.  본질을 직관하는 것이겠지요.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투신하라. 머뭇머뭇 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알고 있는 것에 철저히 실행하고 움직이는 것이지요. 프랑스 말로 "Engagement"(앙가쥬망)이라고 합니다.

바다로 들어간 소금인형은 온 몸을 던지고서야 바다가 무엇인지 알았답니다.

 

셋째로 관용의 정신. 자신의 사고와 사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 그리고 열린 자세로 대화하는 것.

공자님 말씀에 "세 명이 길을 가는데에 있어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이의 고하에 따라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더라도 도를 깨쳤으면 세살밖이 어린 아이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열어놓아서 어떤 것에도 억매이지 않는다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밖으로 표현되어 관용의 정신으로 드러납니다.  프랑스 말로 "tolerance"(톨레랑스)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지역적이고 부분적인 진리가 아닌 보다 큰 진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는 플라톤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러나 진리라는 더 큰 친구가 있다"라고 하여 스승인 플라톤 보다도 진리에 더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말마디로 우리가 진리를 알 수 있을까?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는 이런 말마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바라보고 투신하고 열려있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을 직접 내 안에서, 밖에서 실천하고 체화(體化) 되어야만 합니다.

 

그럼 이렇게 말하고 있는 이는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가?

 

- 하 하 하 -  그것을 알고 있다면 저는 벌써 하늘나라에 가 있겠지요.

그러나 노력하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법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이야 말로 진리 자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십니다.

 

진리를 알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추구한다면 우리는 어느새

참 자유를 누릴 것입니다.

 

우리들의 눈은 날카롭지만 한없이 자비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선을 선으로 보고

악을 악으로 볼줄 알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일각이 무섭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헛된 유행과 우상을 따를 것이 아니라 고집스럽지만 진실과 진리를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숨어있는 허위와 거짓을 제대로 보는 눈을 키웁시다.

복음 안에 그 내용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이 말마디가 오히려 여러분들의 마음의 눈을 멀게 하지는

않는지 두렵습니다.

이 말마디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진리의 빛, 복음에 의지해서 살아갑시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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