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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기 11,31 - 입타의 서원 에 대하여 [성경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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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8 [175.115.220.*]

2011-08-22 ㅣ No.1096

 
 
질문글:
 
판관기 11,31에서 입타는 다음과 같이 서원하며, 실제로 판관기 11,39에 의하면 자신의 딸을 서원한 대로 바쳤다고 합니다:
 
판관기 11,31
제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무사히 돌아갈 때, 저를 맞으러 제 집 문을 처음 나오는 사람은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제가 번제물로 바치겠습니다.
 
질문: 매일미사 책자에 연중 20주간 목요일 제1독서로 판관기 11,29-39ㄱ 이 선정되어 있는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측에서 어떻게 이런 쓰레기같은 구절을 미사 중의 제1독서로 택할 수가 있습니까?
 
쓰레기같은 구절 ..., 쓰레기구절 ...
 
"하느님께 서원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하늘이 두쪽이 나도 지켜야 한다." 라는 점을 강조한것 외에 다른 뜻이 있나요?
 
이 구절을 독서로 택한 이유와 해설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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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 찬미 예수님!
 
그 부분 어디에도 하느님께서 그러한 것을 명하였다는 표현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입타가 하느님께 서원(vow)을 그렇게 한 것이 문제이며, 그리고 입타는 자신의 서원을 충실하게 지켰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판관기의 시기는 기원전 1100경이므로, 지금부터 약 3천년 전의 일들이며, 따라서 그 당시의 윤리관이 우리의 윤리관과는 상당히 다른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지금의 윤리적 잣대로서, 형제님께서 지금 위의 글에서 하고 계시듯이, 성경 말씀에 대하여 판단하고 또 더 나아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를 비판하는 것은, 상당히 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해 연중 제20주간 목요일인 오늘의 제1독서(판관 11,29-39ㄱ) 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은 영어 성경인, 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 입니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측에서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있는지요??? :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0_thu.htm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의 일치 정신에 따라 대폭 보강된 1969년에 마련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따르고 있기에, 비록 언어는 다르더라도 전 세계의 가톨릭 지역 교회들은 동일한 날짜에는 동일한 성경 구절들을 전례 독서들 중에 읽고 있습니다. 전례력에 대한 더 자세한 안내의 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으니 차분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위의 구절에 대한 해설은 위에 안내해 드린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참고하십시오. 그리고 또한 다음의 주소에 있는 NAB(New American Bible)의 주석을 참고하십시오: http://www.usccb.org/bible/scripture.cfm?bk=Judges&ch=11  
 
[쓰레기같은 구절 ..., 쓰레기구절 ... ] <----- 그리고, 자신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독자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으므로, 이런 말씀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다른 한 편으로, 그리스도교는 판관기를 역사적 기록으로 분류를 하고 있지만, 유다교 측은 전기 예언서 중의 하나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그동안 여러 번 안내해 드린, 다음의 주소에 있는 도표를 참고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Heb_Xn_Bibles.htm  
 
["하느님께 서원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하늘이 두쪽이 나도 지켜야 한다." 라는 점을 강조한것 외에 다른 뜻이 있나요?] <----- 이것도 형제님 고유의 해석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 안내해 드린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는 다음이 있습니다:
 
If having made a promise or vow, one realizes that one has promised something wrong, one clearly should not keep the promise: to do so would not be proof of fidelity to God; it would be sacrilegious. Therefore, Jephthah's action cannot be justified.
 
이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의 우리말 졸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에 어떤 자가, 어떤 약속 혹은 서원을 하고 난 이후에, 자신이 잘못된 어떤 것(something wrong)을 약속하였음을 깨달으면, 그는 분명하게 그 약속을 지키지 말하야만 합니다: 그 약속을 행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충성의 증명이 아닐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신을 모독할(sacrilegious)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엡타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상 졸번역 끝).
 
혹시 더 많은 주석들을 참고하고 싶으시면 다음의 주소(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edition, 판관기 제11장)에 접속한 후에 Ver. 31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haydock1859.tripod.com/id5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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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의 한줄답변)
ㄱㅇㅎ (2011/08/19) : 저는 형제님처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은 하느님께 청하면 들어주시고 그 보답으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약속했을 때 어떠한 것이라도 꼭 지켜야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글귀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전하고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그나저나 독서 말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사를 거부하시면 다음 미사 때는 어떻게 미사를 드리실건지 궁금합니다. 성사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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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와는 달리, 다른 한 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주어진 설명에 따르면, 판관기 11,29의 이유로, 그리고 이후의 다른 사건들을 이유로, 입타가 히브리서 11,32에서 성도(saints)들 중에 포함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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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ㅈㅇ (2011/08/19) : +샬롬 샬롬. 성도들 중에 포함된 사람들이 모두 어떤 실수나 부족함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 + 찬미 예수님! 부족하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느냐는 이 말씀과, 다음과 같은 극히 개인적인, 단정적인, 심지어 입타를 단죄하는 듯한, 주장은 그 등급이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 [그러니까 입타의 서원은 하느님의 뜻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 입타의 서원은 자신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고 ..., 입타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
 
그리고, 만약에 판관기 11,29와 히브리서 11,32와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에서의 성경 말씀들을 이미 알고 계셨더라면, 그러한 극히 개인적인 추측성 주장까지 하지는 못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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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의 추가 질문:
[ㄴㅇㅈ (2011/08/20) : 저의 성경을 읽는 필터링은 "예수님의 뜻"입니다. 이 필터링을 거쳐서, 이 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습니다. 이 기준에서 틀려먹은 내용은 가치가 없다고 여기고, 패스해 버립니다. 즉 왜곡된 근본주의저자(편집자)가 가필한 것이므로 극단적 표현으로 쓰레기같은 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것들은 제쳐두고라도 그 속에는 하느님의 보화도 분명히 많기 때문입니다.]
 
<----- + 찬미 예수님!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읽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들 때에, 또한 가톨릭 교회가 어떻게 동일한 구절을 해석하였는지를 찾아 읽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가톨릭 교회가의 해석이,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뛰어나더군요. 그래서 이번의 경우에도, 비록 영어 주석/해설이지만, 신뢰할 만한 가톨릭 교회의 주석/해설들을 안내해 드렸던 것입니다.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신학 대전에 있는 해설을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교황청에 재직 중인 성직자들을 위한 홈페이지에서 찾아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의 주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왼쪽에 파란색의 1762를 클릭하면 성 토마스의 신학 대전에 주어진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9bm0tlk.htm  
 
한 번 시간을 별도로 내어, 성 토마스신학 대전에 있는 해설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해당 구절과 관련된 특정 성경 구절에 대한 가톨릭 교회측의 가르침/주석/해설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6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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