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하느님께서 열렬히 갈망하신댜??? - 야고보 4,5 1035_시기vs질투 #<짝연중7주간화1독> [변역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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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vs질투 -15 [218.55.90.*]

2014-02-25 ㅣ No.1525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질문 1: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짝수 해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제1독서(야고보 4,1-10) 전문입니다:

 

출처: http://info.catholic.or.kr/missa/default.asp?missaid=5812&gomonth=2014-02-25

(발췌 시작)

사랑하는 여러분, 1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2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여러분이 가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이 청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4 절개 없는 자들이여, 세상과 우애를 쌓는 것이 하느님과 적의를 쌓는 것임을 모릅니까? 누구든지 세상의 친구가 되려는 자는 하느님의 적이 되는 것입니다. 5 아니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6) 열렬히7) 갈망하신다.”8) 성경 말씀이9) 빈말이라고 생각합니까? 6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


7 그러므로 하느님께 복종하고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 그러면 악마가 여러분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8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죄인들이여, 손을 깨끗이 하십시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이여, 마음을 정결하게 하십시오. 9 탄식하고 슬퍼하며 우십시오. 여러분의 웃음을 슬픔으로 바꾸고 기쁨을 근심으로 바꾸십시오. 10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이상, 발체 끝)

 

그리고 다음은 야고보 4,5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6) "영" 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 프네우마는 사람의 영을 가리킬 수도 있고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킬 수도 있다. 몇몇 수사본들은 성령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사람에게 불어넣어 주신(창세 2,7 참조) "영" 으로 이해한다.    

7) "열렬히" 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은 "질투가 일 만큼" 으로 직역할 수 있다.

8) 이 인용구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그분(=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은 질투하는 경향이 있다(또는, '질투 섞인 갈망으로 가득하다')"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문맥상 하느님이 이 질투와 갈망의 주체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 말이 그분께 불충한 이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바탕이 된다(7-9절).

9) 신약 성경에서 "성경" 이라고 하면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데, 이 인용구가 어디에서 따온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하느님의 "질투" 라는 주제는 구약 성경에 자주 언급되기는 하지만(탈출 20,5; 34,14; 즈카 8,2 등 참조), 이와 같은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해결책이 제시되기는 하지만 어떠한 것도 확실하지 않다.

 

게시자 주: 바로 위의 "주석 성경"의 주석들에서 "질투"로 번역된 표현은, 칠십인역(LXX) 그리스어본 성경에서 그리스어 "zelus"를 어원으로 가지는, 영어 단어 "jealousy"에 대응하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이기 때문에, "시기(猜忌, 의심하고 꺼림)"로 번역되어야 한다.

(이상, 발췌 끝) 

 

위의 야고보서 4,5의 전후 문맥 안에서,  이 야고보서 4,5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渴望)하신다" 는 우리말 번역문의 의미가, 야고보서 4,5의 전후 문맥 안에서, 무엇인지요? 특히 바로 앞의 제4절 및 이어지는 제6절과 내용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간절히 바라신다" 는 우리말 표현의 의미가, 야고보서 4,5의 전후 문맥 안에서, 무엇인지요?  특히 바로 앞의 제4절 및 이어지는 제6절과 내용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요???

 

그리고 "새 번역 성경"의 해당 본문에서, 위의 주석 7)에서처럼 "질투(jealously)가 일 만큼"으로 번역하는 대신에 "열렬히(jealously)" 로 번역을 한 후에, "주석 성경"의 해당 본문에서 위와 같은 주석 7)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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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글: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위의 질문은, 다음의 글의 제3항, (2-11)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이 납득할 수 없다고 이미 말씀드렸던 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http://ch.caholic.or.kr/pundang/4/soh/1511.htm

 

1-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여러 영어본 성경들의 야고보서 4,5에서의 인용문에서 때로는 "jealously(시기가 일 만큼)" 가 번역 용어로 채택되기도 하고 혹은 때로는 항상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 "envy"가 번역 용어로 채택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http://www.biblehub.com/james/4-5.htm <----- 클릭하여 꼭 확인하십시오

 

다음에 제시한, 1979년까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공인 성경이었던, 대중 라틴말 성경(Vulgate)야고보 4,5와 정밀하게 비교/검토를 해 보더라도, 이렇게 번역되는 경우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영어본 성경 본문 전체에 걸쳐, 대단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처: http://www.newadvent.org/bible/jam004.htm

(발췌 시작)
An putatis quia inaniter Scriptura dicat: Ad invidiam concupiscit spiritus qui habitat in vobis?

(이상, 발췌 끝)

 

1-3. 예를 들어, 다음의 설명을 또한 주목하십시오:

출처: http://www.biblehub.com/james/4-5.htm

(발췌 시작)

Passing on to the translation of the second clause, πρ?ς φθον?ν κ.τ.λ., it must be noted that φθον?ς is never used elsewhere in the New Testament or in the LXX. (Wisd. 6:25; 1 Macc. 8:16) or in the apostolic Fathers except in a bad sense.

 

두 번째 절인 πρ?ς φθον?ν κ.τ.λ의 번역문으로 계속 나아감에 있어, φθον?ς(phthonos)는, 어떤 나쁜 의미 이외에는(except in a bad sense), 신약 성경에 있어 혹은 칠십인역(LXX) (지혜 6,25; 1마카베오 8,16)에 있어 혹은 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들(*)에 있어, 어디에서도 결코 사용되지 은 주목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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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사도 교부(apostolic Fathers)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는 다음의 글의 제3항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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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1-4.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유의하여야 할 점 한 개가 있습니다. 즉, 성 예로니모(St. Jerome)가 그리스어본 야고보서 4,5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에 그리스어 단어  "phthonos/phthonus"를 "invidiam"으로 번역하였음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http://biblehub.com/lexicon/james/4-5.htm <----- 꼭 클릭하여 확인하십시오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그러나 바로 이 그리스어 단어 "phthonos/phthonus"는, NAB 구약 및 신약 성경 본문 전체에 있어 거의 대부분의 경우들에 있어 "jealousy"로 번역되는, 그리고 그리스어본 칠십인역(LXX) 성경의 본문에서 "시기(猜忌, 의심하고 꺼림, jealousy)" 를 나타낼 때에 사용되었던, 그리스어 단어 "zelus/zelos"와는 완전히 다른 단어라는 점입니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의 제3항, (iv-*) 게시자 주 (2) 를 꼭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15.htm <----- 필독 권고

 

따라서 야고보서 4,5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에, 성 예로니모가 "phthonos/phthonus" 를 "invidiam"으로 번역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2. (질문 1에 대한 답변 시작)

2-1. 다음은 1611년에 초판 발행된 KJV(King James Version)야고보서 4,5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biblegateway.com/passage/?search=James+4%3A5&version=KJV
(발췌 시작)

(KJV James 4:5)

5 Do ye think that the scripture saith in vain, The spirit that dwelleth in us lusteth to envy?

5 그대는 성경 본문이, 우리 안에 거주하는 영(the spirit)질투의 정도에 이르기까지(to envy) 갈망(渴望)한다(lusteth)고,(*) 공허하게 말한다고 생각합니까?

 

-----
(*) 번역자 주: 이 문장의 주체(subject)가 피조물인 영(the spirit)이므로,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동사인 "lust" 를 다음의 Merriam-Webster Dictionary에 주어진 설명에 따라, "열망((熱望))한다"로 번역하는 대신에, "갈망(渴望)한다"로 번역하였다:

http://www.merriam-webster.com/wdictionary/lust[2]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위의 문장에서, 인용문의 주어가, 하느님이 아닌, 피조물인 영(the spirit)임에 주목하십시오.

 

2-2. 그리고  KJV (King James Version) 야고보서 4,5의 영어 번역문은, 1960년대에 KJV를 현대 영어 어법에 맞도록 개정한 RSV(Revised Standard Version)에서 주어가 다른 완전히 다른 문장으로 다음과 같이 교체되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7_tue.htm

(발췌 시작)

(RSV James 4:5)

[5] Or do you suppose it is in vain that the Scripture says, "He yearns jealously over the spirit which
He has made to dwell in us"?

 

혹은 여러분들은 성경 본문이 "그분(he)께서는 우리 안에 이미 거주하게 하신 영(the spirit)을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열망(熱望)하신다(yearns for)" 고 말할 때에 아무런 의미 없이 말한다고 추측합니까(suppose)?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그리고 다음은 1970년에 초판 발행된 NAB (New American bible) 야고보서 4,5 몬문과 이 절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11Y.HTM

(발췌 시작)

Or do you suppose that the scripture speaks without meaning when it says, "The spirit that he has made to dwell in us tends toward jealousy"?

 

혹은 여러분들은 성경 본문이 "그분께서 우리 안에 이미 거주하게 하신 영(the spirit)이 시기(jealousy)를 향하여 기울어진다(tends toward)" 고 말할 때에 아무런 의미 없이 말한다고 추측합니까(suppose)?


[5] The meaning of this saying is difficult because the author of Jas cites, probably from memory, a passage that is not in any extant manuscript of the Bible. Other translations of the text with a completely different meaning are possible: "The Spirit that he (God) made to dwell in us yearns (for us) jealously," or, "He (God) yearns jealously for the spirit that he has made to dwell in us." If this last translation is correct, the author perhaps had in mind an apocryphal religious text that echoes the idea that God is zealous for his creatures; cf ⇒ Exodus 20:5; ⇒ Deut 4:24; ⇒ Zechariah 8:2.

 

[5] 바로 이 말함의 의미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야고보서의 저자는, 아마도 기억으로부터, 성경의 어떠한 현존하는 사본에도 있지 않은 한 구절을 인용하기 때문입니다. 다음과 같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 본문의 다른 번역문들이 가능합니다:

 

(i) "그분(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게 하셨던, 거룩한 영(the Spirit)께서는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우리를) 열망(熱望)하십니다(yearns)," 혹은,

(ii) "그분(하느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주하게 하셨던 영(the spirit)을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열망(熱望)하십니다(yearns for)."

 

만약에 바로 이 마지막 번역문이 정확하다면, 이 저자는 아마도,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들에 대하여 열의있으시다(zealous for)는 개념(idea)을 반향하는(echoes), 어떤 묵시적인 종교적 원문(religious text)을 마음에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탈출기 20,5; 신명기 4,24; 즈카르야서 8,2를 참조하십시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4.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야고보서 4,5에 대한 주석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haydock1859.tripod.com/id262.html

 

2-5.  (우리말 번역 오류/미숙) 대단히 다행스럽게도, 다음의 주소에 있는 야고보서 4,5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이 위의 질문 1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꼭 필독할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7_tue.htm <----- 필독 권고(*)

 

2-5-1. 특히, 그리스어본 야고보서 4,5을 라틴어로 번역한,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새 대중 라틴말 성경인, 다음의 Nova Vuagate 야고보서 4,5 에서의 해당 라틴어 인용문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
nova-vulgata_nt_epist-iacobi_lt.html#4

(발췌 시작)

Ad invidiam concupiscit Spiritus, qui inhabitat in nobis.”
(이상, 발췌 끝)

 

을 영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는 해설이 바로 위의 필독 권고(*)에 또한 주어져 있습니다.

 

(발췌 시작)

"The Spirit who dwells in us jealously loves us."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거룩한 영(the Spirit)께서는 시기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인용문*)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5-2. 그리고 (i) 바로 위의 우리말 번역문 혹은 위의 제2-3항의 우리말 번역문과 (ii) "새 번역 성경"야고보서 4,5에서의 인용문,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열렬히 갈망하신다." (인용문**)

 

라는 우리말 번역문이, 특히 바로 앞의 제4절 및 이어지는 제6절과 내용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염두에 두면서 정밀하게 비교/검토를 하였을 때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상당히 다르기에, "새 번역 성경"야고보서 4,5에서의 인용문인 바로 위의 (인용문**)번역 오류/미숙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KJV 야고보서 4,5에서 사용되고 있는 동사로서, 여기를 클릭하면 확인할 수 있는 세속의 영한 사전에서 "갈망(渴望)한다" 로 번역되고 있는 동사 "lust" 는,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낼 수도 있기에, 하느님께 사용할 수 없는 부적절한 단어이므로, (인용문**)에서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갈망(渴望)한다" 는 "열망(熱望)한다" 로 교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따라서 (인묭문**)의 좀 더 나은 번역문은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살게 하신 영을 시기(猜忌)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열망하신다."

 

라는 생각입니다. 혹은 (인묭문**)보다는 (인묭문*)이 더 나은 번역이라는 생각입니다.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2월 24일]

3.

이번 항에서는, 야고보서 4,5을 발췌 인용하고 있는 신뢰할 수 있는 문헌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은, 정통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의 옹호자로서, 추기경 라칭거(신앙 교리성 장관, 교황 베네딕토 16)과 함께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 전문 학술지로서 1972년에 첫 발행된 "Communio" 의 창립자 및 편집자이셨던 추기경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년)(*)의 글 [제목: CASTA MERETRIX]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http://www.newtorah.org/Casta%20Meretrix.html

(발췌 시작)

St. James (4:4-5) takes up the old prophetic image when he challenges those Christian souls that find space for earthly desires: "Adulteresses! Do you not know that friendship with the world is enmity with God?… Or do you suppose it is in vain that the Scripture says, 'God yearns jealously for the spirit that he has made to dwell in us' [or, 'The spirit that he has put into us yearns jealously for God']?" Whatever the exact words of this lost text may have been, there is a clear reminiscence of the jealous relationship of God the loving Bridegroom and Zion the unfaithful bride.

 

성 야고보(St. James)(야고보 4,4-5)는 그가 세속적 욕망(earthly desires)들을 위한 공간을 발견한 그리스도인들의 영혼들에 이의를 제기할(challenges) 때에 다음과 같은 오래된 예언적 묘사(image)를 들어 올립니다: "간부(姦婦, adulteresses)들이여! 세상과의 우의(友誼, friendship)가 하느님과의 적의(敵意, enmity)임을 여러분들은 알지 못합니까? ... 혹은 성경 본문이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들 안에 거주하게 하셨던 영(the spirit)을 시기(猜忌)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열망(熱望)하신다(yearns for)' [혹은, '그분께서 우리들 안쪽에 이미 주입하신 영(the spirit)이 시기(猜忌)의 정도에 이르기까지(jealously) 하느님을 열망(熱望)한다(yearns for)'] 라고 말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여러분들은 추측합니까?" 바로 이 상실된 본문의 정확한 단어들이 무엇이었든지간에, 거기에는 애정 있는 거룩한 신랑인 하느님과 불충실한 신부인 시온(Zion)(**) 사이의 시기(猜忌)하는 관계(the jealous relationship)(***)에 대한 어떤 분명한 회상(reminiscence)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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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년) 추기경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의 글은 다음의 글들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647.htm [제 다 항]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650.htm

 

(**) 번역자 주: 여기서 시온(Zion)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한다.


(***) 번역자 주: 시온(Zion) 즉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시기하는 사랑(a jealous love)이라는 이 관계는, 시기(猜忌, jealousy)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대방을 타인(제3자)과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관계를 말한다. 시기(猜忌, jealousy)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3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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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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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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