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차는 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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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연 [xyz] 쪽지 캡슐

2000-11-05 ㅣ No.1890

+ 요즘 출퇴근 시간마다 기다리는 차가 생겼다. 그 날은 보통때와는 달리 일부러 기차를 놓치고 싶어서.. 정기적으로 똑같이 생긴 차가 도착해서 문을 열고 내 앞에 후줄근하게 지친 한 무더기의 사람을 쏟아놓고 또 그만큼의 사람을 싣고서 떠나고.. 쉼없는 반복을 지켜보며. 의자에 멍하니 앉아서 그런 사람들 구경하다가 장암행 하나 보내고 도봉산행 두대 보내고 음..이번엔 타볼까.. 그런데 멀리서 들어오는 기차의 분위기가 좀 색다르다 싶어 몇걸음 뒤로 떨어져서 보니 웬 김구선생과 아이들의 얼글이 차 표면을 쭈욱 장식하고 있었다. 나중에 사족을 읽어보니 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이 몇몇의 교수님을 모시고 진행한것 같은데 차 내부에도 칸마다 컨셉과 방식을 달리하여 많이 신경써서 특색있게 꾸민 흔적이 역력했다. 까끌까끌한 퇴근 시간의 피로함이 싸악 풀리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 규모라면..머리를 꽤 싸맸겠군.. 회의하고 제작하고 수없이 깨지고,다시 회의하고 그려보고 만들어보고.. 어떤 날은 아주 쉽게 진행되었을테고 또 어떤날은 허탕만 쳤을테고. 자기멋에 웃고 우쭐하며 서로 다름에 힘들어도 하며. ..훗.. 그런 시간들이 눈에 훤하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상을 사는 모습과도 비슷..)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학교 다닐땐 번쩍이는 아이디어 뱅크로 톱을 달리던 사람도 졸업후 적당한 디자인 회사 골라 들어가 일하다보면 직급을 달때마다 조금씩 머리 벗겨지고 아랫배 나오고.. 그러면서 헉교때 빛나던 순수한 창의력은 빛바래가는 경우도 있다. 하기사 어디 이쪽 일 뿐이랴. 다 그렇겠지. 난 정말 많은 예술가들을 존경한다. 위대한 문호나 화가,음악가..들의 재능이나 운명(소위 팔자라고 하는)은 하늘에서 고스란히 내린것인지 다들 갖고 있는 비극적이거나 불우한 일생,내적 혹은 외적인 열등감, 원인 모를 사인이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유명하고,그래서 더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재능과 함께 받아야했던 양날의 칼같은 그것. 그것에 순명하듯 뜨거운 피를 타고난 남다름을 숨길수 없는,그런 사람들도 우리곁에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에서 낙엽 냄새가 폴폴 나고 매일 보는 사람의 눈우물이 깊어가는 11월. 그림자까지도 예쁘게 물들이는 단풍 이파리들을 보면 그 색감이 풍부함에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다. 슬쩍 보기엔 단순노랑,단순빨강처럼 보여도 만약 내가 저 빛깔을 만든다면 파레트위에서 몇가지 색을 섞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요철이 제대로 맞아들어가는 톱니바퀴처럼 나와는 다르게 튀지만 그걸 인정하고 오히려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수 있는 그런 사람과 타는 장작불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고 싶은, 가을밤이 깊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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