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친구의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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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17 ㅣ No.5544

 

한 남자가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선창가 허름한 선술집, 그는 아무도 없는 앞자리에 잔 하나를 더 놓고 혼자서 술을 주고받았습니다.

"자, 친구 들라구. 들어... 카아!"

보다 못한 주인 아주머니가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김씨, 제발 이제 고만 좀 잊어 버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응?"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쓸쓸하게 웃을 뿐이었습니다.

"허허허..."

남자가 채워 둔 술잔에는 그가 떨쳐 버릴 수 없는 아픈 사연이 어려 있었습니다.

10년 전 남자에겐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동네서 나고 자라 함께 고깃배를 부리는 어부가 된 두 사람은 기쁨도 슬픔도 늘 함께 했습니다.

바다와의 씨름도, 거센 파도도 둘이라면 두려울 게 없었습니다.

"걸렸다! 걸렸어."

"하하하! 만선이네. 만선이야, 하하하!"

고기를 잡을 때면 함께 노저어 바다로 나갔고, 그물도 함께 던지고, 또 함께 노저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종일 바다와 씨름을 한 뒤 고기자루를 들고 돌아오는 길이면, 선술집에 들러 매운탕에 술 한 잔 하는 게 두 친구의 낙이었습니다.

"자! 들게 친구. 딱 한 잔!"

"그래, 딱 한 잔!"

선창가에서 그 특별한 두 친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모두들 사이 좋은 두 친구를 부러워하고 흐뭇해했습니다.

"에유, 원 저렇게도 좋을까."

어깨동무를 하며 집으로 향하는 두 사람을 향해 모두 한마디씩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몰아친 폭풍이 두 친구의 고깃배를 삼켰습니다.

두 사람은 필사적으로 폭풍과 맞섰습니다.

"꽉 잡아. 꽉 잡으라구!"

"으아악!"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지만, 폭풍은 배와 함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친구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죽은 친구의 빈자리를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한 남자는 오늘도 빈 술잔을 채우고 친구를 부릅니다.

"자! 이 사람, 한 잔 들게."

술잔 속에 친구의 눈빛이 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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