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8주일(다해) 루카 17,11-19; ’22/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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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9-21 ㅣ No.5168

연중 제28주일(다해) 루카 17,11-19; ’22/10/09

 

 

 

 

 

 

 

 가끔 부모님들이 다 큰 자식들을 바라보며 섭섭한 속내를 드러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제는 저 잘라서 큰 줄 알아.” 그런 말을 듣다보면, ‘지금까지 자기들을 키워주고, 지금의 순간을 누리도록 해준 것이 부모의 덕인 줄 알면 좋겠는데!’라는 섭섭함이 배어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뜨면 자연히 숨을 쉬게 되고, 수도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고, 스위치만 켜면 전기가 들어오니까 그런 것들과 관련하여 감사를 드리기보다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삽니다. 오히려 그런 기초 설비들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번 엎어지거나 쓰러지거나 다치거나 그야말로 어디 한 군데 깨지거나 부서지는 사고라도 났다가 회복하게 되면, 그나마 숨쉬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 만에라도 새삼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하는 표현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향한 누군가의 선물이거나 희생이거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라는 동안에, 잠들고 깨고 내 할 일 하는 동안에, 알게 모르게 부모님이나 누군가의 희생과 공덕으로 내가 오늘을 살아 있고 오늘 이렇게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평소에 기도하는 연습과 습관을 들여놓지 않아서 그런지, 그동안 그렇게, ‘시간이 나면 기도해야지!’ 하면서 다짐하고 미뤄왔던 기도를, 정작 일거리가 줄어들었을 때도 하지 않습니다. 일터에 나가기 전, 일터에서 돌아와서, 그리고 잠들기 전에 기도하면서, 생활 안에서 주님과의 맛있고도 유익한 시간을 간직하지 못하면, 그저 계속 눈 앞에 다가오는 일을 처리하기에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일을 마쳐도 영화나 TV, 동료나 친구, 육체적인 휴식과 관광, 술이나 취미생활로 심리적인 안정을 채우려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는 날이나 공휴일에 일터에 나가지 않으면, 그동안 못했던 집안일을 하거나 다른 곳에 놀러 나가기는 할지언정, 성당에 기도하러 오지 않거나 집에서 일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어쩌면 평소에 기도에서 오는 기쁨과 평화를 깊이 맛 들이지 못했던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얻는 기쁨과 평화에 대한 체험이 없으니, 더 깊이 더 자주 기도하지 않고,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또 그러기에 기도하지 않고, 그러자니 점점 더 주님과의 신앙의식과 신앙감감이 멀어져 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일과 인간관계와 봉사활동그리고 기도생활그리고 휴식과 문화와 취미생활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청하는 나병 환자 열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 치유해주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 그것도 유다인들과는 원수같이 지내던 사마리아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루카 17,17)

 

그러시고는 그에게 이르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9)

 

예수님께 치유된 유다의 나병 환자 아홉 사람이 자신들이 치유된 사실에 대해, 예수님께 아무런 감사 표시나 그로 인한 보은의 행위도 없이 떠나 버린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감사를 표하지 않은 유다인 아홉에게 베풀어주신 치유의 은총을 거두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작 예수님의 백성들이라고 할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예수님의 제2차 대상인 외국인,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 감사드리러 돌아온 것을 보시고는, 황망해 하시면서도, 그 외국인 사마리아인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던 사마리아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 믿음은 자신의 나병이 자연히 치유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다고 여기는 신앙의 인식이며, 그에 대해 감사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어쩌면 우리 본당의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미사가 감사의 기도라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신자들이 한 주간 동안 살아가는데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리러 온 신자는 등촌3동 성당 103위 한국순교성인 성당 4,000여 신자 중 520명뿐이냐?

 

성경에는 예수님께 감사를 표한 사마리아 사람이 어떻게 보은을 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것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저 우리의 부모님이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오늘이 다 주 예수님의 은총이고,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우리를 위해 희생한 덕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고 인식하며 감사드리며 주 예수님을 찾아뵙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난 주간 동안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그리고 또 다가오는 한 주간을 주님 은총과 사랑 속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청하는 모습만을 바라십니다.

 

그냥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처럼, 입 싹 씻고 모른 체한다면, 주님을 얼마나 섭섭하게 해 드리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배은망덕한 사람일까! 하느님은 몰라도, 주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자기 두 주먹으로 살 수 있다고 자만하거나, 주님께 감사기도 한 번 올려드리지 않으면서도, 평안히 살 수 있으리라 여기는, 어리석은 욕심쟁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자기에게 생명과 두 주먹을 준 분이 누구인 줄 알았다면, 그런 어리석음을 자랑스럽게 내지를 수 있을까?! 남 이야기 같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하루 종일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오늘의 우리 삶이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거나 하루를 마칠 때까지 한순간이라도 기도를 바칠 줄 모른다거나, 심지어는 저 잘라서 얻을 것이라고 여겨 오만불손하고 방탕하다거나, 지금까지 준 것은 턱없이 부족하니 더 많이 내려달라고 어린아이처럼 떼만 쓰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얼마나 안타까워 하실까 싶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님께서는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를 바치면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고,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갖가지 은총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노력까지 기울인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며 흡족해하실까 싶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렇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를 통해, 주님의 영광을 더 드러내실 수 있을 것이며, 주님 몸소 주님의 구원 사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와 보은이 비단 미사 참례와 기도 행위에 그치지는 않겠습니다. 우리가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드리는 찬미와 흠숭 행위인 미사와 기도와 봉헌 이외에도 보은의 행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직접적인 보은의 행위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에게 우리가 받았다고 여기는 은총을 다시 나누는 행위가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는 우리의 보은 행위가 될 수 있겠습니다.

 

오늘 한 번 조용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주님께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우리가 주님께 감사드릴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주님께 어떻게 감사를 표하며 보은할 수 있을지?

아울러, 주님께 감사드리는 표현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형제자매 중 어느 누구에게,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다고 여기는 은총을 나눌 수 있을지?

 

우리 다 함께 구원될 믿음을 살기로 합시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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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일 꽃꽂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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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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