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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네딕도의 영성- 겸손의 12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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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호 [kgh0727] 쪽지 캡슐

2007-10-27 ㅣ No.7736

 

 
* 성 베네딕도의 영성- 겸손의 12단계

 

 

 

 성 베네딕도는 겸손을 수도규칙 7장에서 다른 부분에 비해 비교적 길게 서술하고 있다.

성인은 이 7장에서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겸손이며,

그 합일의 단계를 12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성인에 의하면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루가 14, 11)라는 성서 말씀에 근거해서

자기를 높이는 모든 짓이 교만의 일종임을 가르쳐준다.

반면 생활 안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삶을 살아갈 때

천상적 들어높임을 받을 것이라고 성인을 말하고 있다.

성인은 이를 야곱이 보았다는 천사들의 사다리(참조; 창세 28, 10-13)에 비유하여

사다리를 오르고 내린다는 것은 “교만으로써 내려가고 겸손으로 올라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우리 마음이 겸손해질 때 주께서 계신 천상으로 향한다는 것이다(참조; 수도규칙 7, 1-11).

그럼 먼저 겸손의 12단계의 핵심 주제들을 도표를 통해 알아보도록 한다.

 

1단계 하느님을 두려워함
2 하느님께 순종함(내 뜻〈 하느님의 뜻, 말씀)
3 장상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
4 인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순종
5 영혼의 개방성; 정직한 고백
6 가난에 만족함
7 스스로 자신을 낮춤
8 온건함, 규칙이나 장상의 권고 이외에 다른 짓을 하지 않음
9 침묵
10감정의 조절
11슬기로운 말씨
12겸손한 몸가짐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성인이 가르쳐 왔던 여러 가르침들

(장상에 대한 절대적 순명, 침묵, 가난, 언어의 절제 등)이 겸손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인이 가르치고자 하는

겸손은 단지 병적인 자기비하(自己卑下)나 오직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이기적 낮춤이 아니다. 후에 보다 자세히 서술하겠지만 성인이

하느님과의 합일(合一) 단계에서 제시한 겸손은 창조주이시자

절대자이신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결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만일 어느 사람이 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때

그 사람은 진정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릴 수 있으며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하느님이 서 계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성인이 제시한 겸손의 열두 단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1) 겸손의 열 두 단계


 첫 번째 단계: 하느님을 두려워함
  “겸손의 첫째 단계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늘 눈앞에 두어 잠시도 잊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늘 기억하여 하느님을 경멸하는 자들이 자기들의 죄로

말미암아 어떻게 지옥 불에 태워지며, 또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마련된

영원한 생명이 어떠한 것인지를 자신의 마음속에 늘 생각하는 것이다.”(7, 10-11)

 

  베네딕도 성인이 제시하는 겸손의 열두 단계 가운데 첫 번째 단계가 바로

‘하느님을 두려워함’이다. 이는 자칫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잘못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늘 감독하고 있는 감시자로 생각될 수 있으나, 이를 통해 베네딕도 성인이

가르치고자 하는 점은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첫걸음이 바로 하느님에 대한

확고한 현존의식을 깨닫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단계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제한을 받는 유아기적인 단계이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함을 통해 하느님이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고 계심을 인식하는

것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여정에 있어서 첫걸음임에는 틀림없다. 현존의식에

대한 의식적 노력을 바탕으로 수련자는 점차 이성과 감정을 포함한 전인격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게된다.

 

두 번째 단계: 하느님께 순종함
  “겸손의 둘째 단계는, 자신의 뜻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를

즐겨하지 않으며, 오히려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실제 행동으로 본받는 것이다.”(7, 31-32)


  하느님의 현존을 전인격적으로 체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자신 안에서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꾸준히 찾아야 한다. 그럼 자기 자신 안에서

하느님의 뜻은 어떻게 발견되는가? 성인에 의하면 하느님의 뜻은 현재 자신의 뜻과

욕망에 반대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기적 욕심에서 벗어나는 - 이것은 ‘나로부터의

이탈과 끊음’이라고 할 수 있다 - 수련이 요구된다.

 

 세 번째 단계: 장상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
  “겸손의 셋째 단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온갖 순명으로써 장상에게 복종하여

‘그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셨다’고 사도께서 말씀하신 그 주님을 본받는 것이다.”(7, 34)


  이 부분은 무조건적 순명과 연계해서 생각할 수 있다. 즉 성자께서 죽기까지 성부께

순종하신 것처럼 수련자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

이 순명은 하느님과 하나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다.

 

 네 번째 단계: 인내-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에 대한 순종
  “겸손의 넷째 단계는, 순명에 있어 어렵고 비위에 거슬리는 일 또는 당한

모욕까지도 의식적으로 묵묵히 인내로써 받아들이며, 이를 견디어 내면서 싫증을

내거나 물러가지 않는 것이다.”(7, 35-36)


  그런데 장상에게 순명함에 있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자신에게 요구되거나

자신이 판단에 비추어 장상에게서 잘못된 점이 발견될 수도 있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수련자들은 내적으로 갈등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이 단계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과정에 있어서 첫 시련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이 시기에 수련자는 인간적 고뇌와 비참을

경험하게 되며 ‘이 길이 과연 주님께 나아가는 진정한 여정일까? 이것이 진정 주님의

 뜻이란 말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까지도 한다. 그런데 수련자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에 있어서 그 주도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누구에게나 ‘나 중심의 사고’에

대한 정화(淨化)과정이 필요하듯 장상의 무리한 요구나 때로는 불필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에 대한 적극적인 순명은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죽음으로써 순종한

성자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단계: 영혼의 개방성; 정직한 고백
  “겸손의 다섯째 단계는, 자기 마음속에 들어오는 모든 악한 생각이나 남모르게 범한

죄악들을 겸손된 고백을 통하여 아빠스에게 숨기지 않는 것이다.”(7, 44)


  이는 자신의 모든 모습을 아빠스에게 정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용기를 갖는 단계를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있어서 자신의 어느 한 부분 - 예를 들어 장점이나

선한 모습 - 만 나아갈 수 없다. 자신의 떳떳하고 좋은 부분뿐만 아니라 부족하고 어두운

모습을 포함한 전존재가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섯 번째 단계: 가난에 만족함
  “겸손의 여섯째 단계는, 수도승이 온갖 비천한 것이나 가장 나쁜 것으로 만족하고

자기에게 부여된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을 나쁘고 부당한 일꾼으로 여겨 예언자와 함께

‘나는 쓸모 없는 자이오며 알아듣지도 못하였나이다. 나는 당신 앞에서 짐승과

같은 처지오나 늘 당신과 함께 있겠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7, 49-50)


  이 단계는 수련자가 단순히 물질적 가난만이 아니라 내면적 가난함을 지녀야

함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내면적 가난함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에 자족(自足)하는 것이다.

 

 일곱 번째 단계: 스스로 자신을 낮춤
  “겸손의 일곱째 단계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자신이 가장 못하고 비천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의 말로써 드러낼 뿐 아니라, 마음 깊숙한 정으로 확신하여 자신을 낮추고

예언자와 함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사람들의 조롱감이고 백성들의

천덕꾸러기이다.’ ‘내가 나를 높였음에 낮아지고, 부끄럽게 되었나이다’하고,

또 ‘당신이 나를 낮추셨기에 내가 당신의 계명을 배우게 된 것은 내게 좋은

일이었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7, 51-54)


  이제 어느 정도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온 진보자는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 고백하는 단계에 왔다. 자신을 ‘벌레요, 사람들의 조롱감이며 백성들의

천덕꾸러기’로 말하는 것은 우리와 같은 초심자들이 보기에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자신이 진실로 하느님 앞에 낮아질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음을 깨달은 단계라 할 수 있다.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단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이다.

 

여덟 번째 단계: 온건함
  “겸손의 여덟째 단계는, 수도승이 수도원의 공동 규칙이나 장상들의 모범이 권고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이다.”(7, 55)


  이것은 순명과 연결된 듯 보이지만 앞에서 언급된 순명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네 번째 단계에서 보여지는 순명의 정신은 초심자에게서 보여지는 내적 갈등이나

고뇌가 있지만 이 단계에서는 자아(自我)가 어느 정도 정화(淨化)된 상태이기에

비교적 자유스럽게 규칙이나 장상의 말에 순명한다.

 

아홉 번째 단계: 침묵
  “겸손의 아홉째 단계는, 수도승이 말함에 혀를 억제하고, 침묵의 정신을 가지고

질문을 받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성서는 ‘많은 말에서 죄악을

피하지 못한다’ 또 ‘말이 많은 사람은 이 지상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7, 56-58)


  베네딕도 성인에게서 강조되는 또 하나의 영성이 바로 이 ‘침묵’이다.

7장을 제외하고도 6장, 38장, 42장, 52장 등에서 침묵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베네딕도 성인이 지나칠 정도로 침묵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단지 무조건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깊은 생각과 바르고 절제된 언어사용,

신중한 판단, 침묵을 통한 형제애의 실천, 무엇보다 하느님께 자신을 집중하기

위함 등에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열 번째 단계: 감정의 조절
  “겸손의 열째 단계는, 쉽게 또 빨리 웃지 않는 것이니, (성서에) ‘어리석은 자가

큰 소리를 내어 웃는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7, 59)

 

열 한 번째 단계: 슬기로운 말씨
  “겸손의 열한 째 단계는, 수도승이 말할 때 온화하고 웃음이 없으며 겸손하고

정중하며 간결한 말과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목소리는 큰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다.”(7, 60)

 

열 두 번째 단계: 겸손한 몸가짐
  “겸손의 열두째 단계는, 수도승이 마음으로뿐 아니라 몸으로도 자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겸손을 항상 드러내는 것이다. … 언제나 머리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고 자기 죄에 대하여

 매시간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 이미 무서운 심판대에 서 있는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7, 62-64)


  여덟 번째 단계에서부터 진보자는 자기 자신 안에서 자아(自我)는 이제 서서히 사라지게

되고 하느님의 충만함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그 과정으로 감정의 조절(열 번째 단계),

슬기로운 말씨(열 한 번째 단계), 겸손한 몸가짐(열 두 번째 단계)이 있다. 이 과정은

의식적 노력이 아닌 성령의 이끄심 - 물론 첫 단계(하느님을 두려워함)에서부터 성령의

이끄심은 존재한다 - 에 따라 사는 생활이다. 따라서 이 단계의 인간은 매우 자유로운

상태로 행동하는데 진보자는 서서히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게 된다.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과의 합일의 모습을 수도규칙 7장의 마무리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겸손의 이 모든 단계들을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이전에는 공포심 때문에

지키던 모든 것을 별로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지키기 시작할 것이니,

이제는 지옥에 대한 무서움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 ….”(7, 67-69)


  이상으로 성 베네딕도의 겸손에 대하여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위에서 보았듯이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과의 합일에 있어서 겸손을 강조해 왔다. 성인이 겸손을

토록 강조한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을 알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처지를 직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자 아무 것도 아닌

존재임을 단지 이성으로 뿐만 아니라 전존재로서 깨닫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아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하고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성인은 자기비하(自己卑下)로 보일 정도의 겸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인은 극도의 겸손 수련을 통해 내 안에 내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존재하도록 이끌어 주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길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만났을 때의 기쁨에 찬 어조로 “그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합니다.” (요한 3, 30)
 

 
 

 

원문/  http://cafe.naver.com/2005catholi/1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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