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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樣年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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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DDALGI] 쪽지 캡슐

2000-11-01 ㅣ No.1998

떠나보낸 과거에 대한 노스탈지아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봤슴다.

 

흔히들 말합니다.

누구나 한평생을 살다 보면 결정적인 기회가 온다구....

그 기회라는게 자신의 이상형인 사람과 평생 가약을 맺는 것일 수도 있구, 돈방석에 앉게 되는 물질적인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구 또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날리게 되는 기회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또다른 말은 그 기화란게 왔을 때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 또한 결정적으로 드물다는 사실일 겁니다.

 

14개월간을 질질 끌며 힘들게 완성되었다는 왕가위 감독의 신작, ’화양연화’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들에게 찾아온 기회를 미처 잡지 못하고 되돌려 보낸 두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그러한 결정으로 인해 긴긴 시간 동안을 그리움의 이름으로 방황하지만 결코 재회라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죠.

 

중국의 전통 주단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 스크린 위에 주연 배우와 감독의 이름, 영화 제목이 스치듯 지나가고 나면, 영화는 좁은 복도와 다세대가 한 가구를 구성했던 북적 북적한 1962년의 홍콩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같은 날 이웃으로 이사오게 된 ’첸 부인’ (장만옥)과 ’차우’ (양조위).

하필이면 같은 날 이사오는 바람에 서로의 옷가지며 책이 뒤섞이게 되는 장면에서 이미 두 사람의 배우자가 불륜으로 엮이는 불행과 함께 두 주인공 남녀의 관계 또한 불가피하게 얽히게 될 것이란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의 감독이 얽히고 설킨 복잡한 관계 속에서도 영원히 닿지 못하는 의사 소통 부재의 관계 설정으로 작가의 칭호를 얻은 왕가위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해운회사의 비서일을 하고 있는 첸부인과 조그마한 신문사의 기자인 차우는 이후에도 계속 우연히 엇갈리고, 서로의 배우자가 자주 집을 비우는 와중에서도 불륜의 관계로 발전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서부터는 서로에 대한 연민의 정을 공유하게 됩니다.

 

각자 서로의 배우자가 ’그랬을 것 같은’ 상황을 리허설하면서 오히려 자신들의 감정이 차곡 차곡 쌓여가는 걸 느끼지만, 그 줄은 전화통화난 소설 쓰는걸 도와달라는 핑계로 만남이 잦아지는 은근한 사랑의 과정을 "우린 그 둘과는 다르니까요"라는 말로 일축합니다.

 

결국, 차우가 싱가폴로 전직을 가게 되면서 둘은 그간의 감정을 한번의 포옹과 눈물로 정리하지만, 66년까지만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서로에 대한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 가져온 가혹한 현실을 인내해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영화는 이러한 둘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그리움을 예전의 현란한 촬영과 편집 기법을 일부러 망각한 듯한 관조적인 카메라로 응시하는데, 국수를 사먹으러 가는 계단길에서의 조우 장면이 반복될 때마다 비춰지는 전조등이나 자신의 처지를 부정하듯 일에 몰두할때의 차우의 머리위 형광등 위로 아스라히 퍼지는 담배 연기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은 거의 황홀할 지경입니다.

 

몇번의 정지 화면이나 이어붙인듯한 편집 장면이 과거 양가위 감독의 스타일을 재현하고 있다면, 새롭고 뚜렷하게 주인공들을 형상화하는 데는 의상과 배경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목부터 발목까지를 칭칭 감싼 차이니즈 드레스 속의 장만옥이 그 화려한 디자인과는 달리 몸에 착 달라붙는 옷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려 이쓰다가 결국 남자를 떠나보내는 역설적인 상황속의 여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단정한 헤어 스타일과 정장 차림의 양조위 또한 주변의 시선과 자신 내부의 욕망 사이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인물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게 또 한장의 표가 있다면, 같이 가겠소?" 라는 수줍은 제안은 회사의 시계만이 커다랗게 비춰지는 구도의 화면 속에서 침묵으로 휘발되거나 "우리까지 불륜 관게가 될 수는 없다"는 부질없는 감정의 저항이 골목길에서의 짧고 허무한 이별 장면으로 매듭지어지는 설정은 당시 홍콩의 유행가나 스페인어 연가가 풍기는 낭만적이고 감미로운 분위기와 대비되어 두 사람의 안타까운 심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짧았던 만남과 이별 이후 (당사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구...) 이 둘은 단 한번도 재회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품었던 연정을 회환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1966년에 취재차 캄보디아를 방문한 차우가 유적지에 뭔가를 말하구 나서 (아마두 자신이 보내버린 그 시절과 당시의 선택에 대한 미련이겠죠..) 그 유적지를 황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가 끝맺음하고 나면 기이하지만 주술같은 느낌의, 둔탁하구 기나긴 여운이 남습니다.

 

그 둘이 만난 적도 없는 곳, 이국땅의 옛 궁전터 같은 유적이 마치 세상 모든 연인들의 비밀스런 사연을 간직한 신비스런 장소로 치환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촬영과 편집의 신선함으로 닿을 수 없는 엇갈린 사랑 이야기를 반복하는 홍콩의 한 영화 감독이 그동안 자신을 평가하고 재단했던 그 모든 기대를 뛰어 넘어 진정한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는 데 대한 확신을 느끼게 했습니다.

더 찬바람이 몰아치기 전에 이 영화 한편으루 가을을 붙잡아 보심이 어떨런지....^^

 

참!! 글구...

화양연화가’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 혹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란 뜻이라군여.

다 아신다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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