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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연빈 [nimo] 쪽지 캡슐

2000-07-25 ㅣ No.1420

음~  떼제를 처음 접하게 된것은

 

교사 월례교육, 연수때 조재연 비오 라는 신부님이

 

시작과 전례때 불러 주셨어요 그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어서 이렇게

 

계시판에 띄웠죠~  

 

 

 

떼제는 이렇게 시작 되었되요~

 

너무 길어서...  ^^;

 

 

첫 시작

1940년 8월 스물 다섯 살의 학생 한 사람이 고국 스위스를 떠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지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차 하느님이 그에게 보내실 사람들과 더불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눌 공동생활을 위해 집을 찾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서로를 무참히 죽이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소수의 사람이나마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뢰와 나눔 그리고 화해의 소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표를 보여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이 메시지를 지체없이 실천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가 중세 유럽의 가장 큰 수도원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고도 끌뤼니(Cluny)에 도착했을 때 근처 마을에 집이 하나 나와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이 마을을 찾아가 집 구경을 한 뒤 무언가 요기를 하기 위해 길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마을은 집이 몇 채 되지 않는 조그만 촌락이었고 그나마 일부는 폐허가 된 채 버려져 있었다. 한 할머니를 만나 어디서 먹을 것을 좀 살 수 없겠느냐고 묻자 마을에 가게라고는 없다고 대답한 이 할머니는 자기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도록 그를 초대했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의 계획을 들은 할머니는 "젊은이, 여기에 머물도록 하게. 우리는 너무 가난하고 외롭다네" 하면서 그를 붙잡았다. 이 몇 마디 말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는 마을 한켠에 동떨어진 그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부르고뉴 남쪽에 위치한 이 마을 이름이 ’떼제’였다.

 

이렇게 떼제 공동체의 역사는 50여 년 전 이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자신의 나라 스위스를 떠나야 한다는 단순한 확신을 가졌던 이 젊은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로제 형제’로 알려져 있고 그가 도착했던 조용한 마을 떼제는 이제 매년 온 대륙으로부터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이 자신들에게 주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모여드는 기도와 만남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제 수사의 이야기가 바로 떼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가 가톨릭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갈라진 교회들의 화해를 모색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그는 일찍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이리하여 그는 ’공동체’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했으며 특별히 교회의 수도 생활 전통에 관해 연구했다.

 

다른 형제들의 참여와 공동체 탄생

 

 공동체 생활을 설계하면서 떼제에 정착한 뒤 다른 형제들이 그와 함께 하기까지는 근 2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그는 누나와 함께 떼제에 집을 마련, 자유를 찾아 중립국인 스위스로 가기 위해 독일 점령지를 빠져 나온 유대인 등을 숨겨 주었다. 마침내 위험은 절정에 달해 그는 제네바로 몸을 피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야만 했다. 거기서 다른 형제들이 그와 합류했고 그들은 1945년 함께 떼제로 돌아왔다. 수년간 함께 기도하고 생활한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로 하여금 그냥 몇 년이 아니라 전 생애를 바쳐 투신하도록 부르신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1949년 부활절 로제 형제는 다른 여섯 형제들과 함께 장엄한 서약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독신 생활 가운데 영적 물적 모든 재화를 공유하며, 모든 형제 가운데 ’일치의 종’이 될 한 형제(원장을 말함)의 봉사를 통하여 형제애로 모인 오직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일치하여 함께 그리스도를 살아가고 섬기겠다는 것이다. 떼제 공동체는 이렇게 탄생했다.

 

초창기부터 다른 형제들은 로제 형제를 통하여 공동 생활을 위한 영감을 발견했다. 형제들은 공동체를 위한 그리스도의 뜻을 표현하는 특별한 은사가 로제 수사에게 주어져 있음을 인정했다. 형제들 사이에 어떤 권위주의적 힘도 있을 수 없었지만 다른 형제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을 깊이 이해하는 로제 수사의 개인적인 은사는, 형제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다른 형제들과 나누는 가운데 공동체가 "공동의 창조" 안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0년 이상 떼제 공동체는 조용히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 성장했다. 처음에 로제 형제는 자신의 부친과 공동체의 성소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록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독신생활에 관한 공동체의 성소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어떤 반대의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형제들이 다른 이들의 도움이나 희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신 및 육체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로제 수사는 그 안에 깊은 지혜가 담겨 있음을 알았고 공동체는 처음부터 그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선물이나 기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일해서 번 것으로 살아 왔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는 토지도 소유하지 않으며 자본을 축적하지 않는다.

 

로제 수사는 항상 글을 쓸 소명을 느꼈고 수십 년에 걸쳐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그 제목들을 조금 엿보면 "하느님의 오늘을 살며" "일치, 삶의 희망" "잠정적인 것의 역동성" "그대의 축제는 끝이 없으리" "투쟁과 묵상" "감히 기대조차 못했던 삶" "사랑의 경이" "그대의 사막에 꽃이 피고" "기다림의 열정" "님의 사랑은 불이어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등. 그는 교회가 사람들이 새로운 희망을 추구하며 투쟁하고 고통받는 인간 역사 전면에서 생활로써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깨달았다. 떼제에 정착함에 있어서 그를 사로잡은 것은 아름답고 고요한 그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전쟁 후 프랑스의 농촌 그 너머를 바라보면서 공동체는 인류의 미래가 도시들에서 결정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당시 대부분의 산업 노동자들의 생활에서 교회와 복음은 그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50년 일부 수사들은 떼제를 떠나 근처의 광산 도시로 가서 살기 시작했고 몇몇은 그곳 공장에서 일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로제 수사는 공동체가 거대한 단체가 되지 않으면서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동체는 떼제에 그 기초를 둔 형제들의 단 하나의 작은 우애 공동체로 항상 남아 있겠지만 갈라진 우리 세계의 고통 한가운데 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시작된지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공동체는 여전히 20여 개 국 출신 1백 명도 채 안 되는 수의 형제들로 이루어진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브라질과 방글라데시의 빈촌, 아프리카의 농촌, 미국 뉴욕의 험한 구역, 그리고 분단된 ’조용한 아침의 나라,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일치의 비유로서의 공동체

 

 일찍부터 로제 수사는 교회의 보이는 일치의 원천으로 교종과 로마를 응시했다. 1949년 교종 비오 12세와의 첫 만남 이후에 로제 수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의 하나가 1958년에 있었으니 막 선출된 요한 23세 교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역시 로제 수사처럼 시골 소읍 출신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어린이처럼 순진 무구한 마음을 간직했고 쇄신될 수 있는 교회의 능력에 무한한 희망을 가졌다. 당시 나이 많은 리용의 추기경이 요한 23세가 선출된 지 며칠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고 두 사람은 금새 깊은 애정으로 일치하게 되었다. 요한 교종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을 때 로제 수사를 개인적으로 초대하여, 참관인으로 공의회에 참석하도록 배려했다.

 

 요한 23세는 사랑과 단순 소박함, 그리고 일치의 복음 정신으로 쇄신되는 교회를 열망했다. 그의 관대한 마음은 모든 장벽과 분열을 뛰어 넘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와 닿았다. 어느 날 그는 로제 수사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자신을 알현하려 오는 모습을 보고 "아! 떼제, 그 작은 봄철!" 하고 외쳤다.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는 1986년 10월 떼제를 방문, 로제 수사와 떼제 공동체를 만나는 자리에서 요한 23세의 이 표현을 다시 상기시킴으로써 이 말 속에 담긴 깊은 신뢰를 다시금 확인하였다.

 

공의회 기간동안 떼제 공동체는 온 세계의 주교들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칠레와 브라질 등 남미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주교들과의 만남은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와 더불어 인간들이 극도로 고통받는 한가운데서 복음은 말만으로 선포될 (전할)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빈궁을 벗어날 길을 찾아야 했다. 칠레의 일부 주교들은 그들 교구가 소유한 광활한 토지를 가난한 농민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대적인 경작법을 배우지 않는 한 생활 상태를 개선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협동 농장을 만들었고 유럽에서 트랙터와 기타 장비를 구입해 주도록 청했다.

 

젊은이들이 떼제를 발견하기 시작함

차츰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떼제에 관하여 듣게 되었고 직접 떼제를 찾아왔다. 지난 30년 동안 떼제를 찾아와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젊은이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처음부터 로제 수사는 젊은이들이 삶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에 대해 본질적인 중요한 물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은이들은 떼제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짐을 느꼈고 아무도 그들 스스로 발견한 해답이 아닌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공동체는 더 인간적인 세계와 더 진실된 교회를 향한 젊은이들의 희망 안에서 그 자신의 열망을 발견했다. 떼제는 사람들이 복음 안에서 그리고 기도 안에서 그리스도께 귀기울이고 동시에 소박한 나눔의 시간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귀기울이는 등 ’듣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장소였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떼제를 방문했을 때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떼제를 지나가는 것은 샘터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는 잠시 쉬면서 갈증을 풀고 길을 계속 갑니다. 공동체의 수사님들은 여러분을 여기에 붙잡아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이 기도와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된 생명수를 마시고 주님의 기쁨을 맛보며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기를, 그리하여 이곳을 다시 떠나 여러분들의 본당과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일터에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을 섬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세계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이르기까지 떼제 공동체는 항상 넘치는 희망의 신뢰를 젊은이들 안에 심어 주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이 신뢰를 그리고 이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오늘 아침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떼제와 젊은이 - 인터컨티넨탈 모임

오늘날 떼제에서는 연중 계속하여 젊은이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 여름 동안은 매주 70-80개국으로부터 3천-6천 명의 순례자들이 떼제의 언덕에 모인다. 보통은 일주일 단위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젊은이들은 보통 2-3개월씩 머물기도 한다. 아침 낮 저녁 등 매일 세 차례의 공동 기도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한 주간의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주 일요일 아침 미사로 끝난다. 로제 형제를 비롯해 떼제에 사는 60-70 명의 수사들이 하얀 수도복을 입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 가운데 꿇어앉아 함께 드리는 이 기도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삶에 의미 있는 그 무엇도 발견할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한국에서와 같이 유럽에서도 많다. 그런 젊은이들도 마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제대로 알기 위한 마지막 시도인 양 떼들을 찾는 경우도 흔하다. 결국 하느님은 신비이며 복음은 봉사나 해방을 다 포함하고는 있지만 단순히 그것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 한사람 한사람이 마음의 침묵 속에서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는 기도야말로 모든 것의 시작, 모든 신뢰와 모든 사랑의 시작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떼제를 찾아오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로제 형제는 공동체가 직면한 도전,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실감했다. 1971년 부활절, 너무 많은 사람이 떼제의 부활 전례에 참석하러 왔을 때 수사들은 그들 모두를 수용하기 위해 성당 벽을 헐고 거대한 천막을 쳐야만 했다. 언어또한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떼제에서의 공동 기도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수없이 다른 민족들이 함께 기도함으로써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공동기도와 노래

 

떼제의 노래는 이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로제 수사는 짧은 말마디를 반복하여 부를 때 그것이 어느 나라 말이든지 하느님을 찬미하는데 충분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짧은 노랫말을 불어나 영어, 폴란드어나 라틴어로 반복해서 부르는 동안 수사들은 십 여 개 나랏말로 독창을 첨가한다.

 

 매 기도 때마다 잘 선택된 짧은 성서 구절이 10여 개 나랏말로 봉독된다. 그리고는 기도 시간 한 가운데 10분여 동안 완전한 침묵이 이어지는데 이 침묵이야말로 떼제의 기도를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수사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나이가 더 많은 방문자들, 나아가 주교들과 추기경들이 함께 바닥에 꿇어앉거나 그냥 앉은 채(벤치나 의자가 거의 없다) 한참 동안 침묵 가운데 묵상할 때 모든 언어와 문화의 장벽, 몰이해의 장벽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 그리스도의 말씀만이 각자의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진다.

 

젊은이들은 일상 생활 안에서 복음을 살아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성사가 그들에게 필요하리란 것을 떼제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된다. 떼제를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를 발견하고 신학교나 수도회에 입회한다. 떼제는 그들을 붙잡아두려 하지 않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게 내보낸다.

 

매일 저녁기도 뒤에 로제 형제는 다른 수사들과 더불어 ’화해의 교회’에 오랫동안 남아 젊은이들이 아무에게나 하기 힘든 고통과 희망의 이야기들을 들어준다. 그들 각자에게 수사들은 그들 역시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 말씀을 들려주면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간직한 성령의 선물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애쓴다.

 

신뢰의 순례와 젊은이의 유럽 모임

 

 

로제 수사는 이제 83세다. 매년 떼제 공동체는 한두 차례 떼제 밖에서 큰 모임을 개최한다. 지난 해 겨울 비엔나에서 5일 동안 열린 모임에는 8만 여명이 참석했다. 이번 겨울에는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큰 규모의 모임이 열린다. 아시아에서 몇 차례 모임을 가졌는데 그 중 1991년 2월에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로제 수사와 다른 수사들을 만났다. 이러한 모임들은 로제 형제가 제창한 "범세계적 신뢰의 순례"의 계속이다. 하지만 떼제는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례에 참가하는 청장년으로 하여금 각자가 사는 곳에서 평화의 순례자가 되도록, 곧 도시와 마을, 본당과 지역 교회에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이웃들과 더불어 열심히 활동하도록 격려한다. 로제 수사는 이 순례를 영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매년 한 통의 공개 서한을 쓴다. 이 편지는 한국말을 포함 58여 개 국어로 번역된다.

 

 

 

인류 가족 안에서 작은 누룩이기를...

 

 

 

 

 

언젠가 로제 형제는 이렇게 썼다.

 

"작은 공동체여, 그대는 누구인가? 효율적으로 잘 일하기 위한 도구인가? 아무리 좋게 보여도 그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편안히 살기 위해 공동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니다. 만일 그럴 경우 우리 공동체는 스스로에 목적을 두게 되고, 이것은 결국 안일한 생활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물론, 하지만 오직 우리의 삶을 봉헌하는 가운데.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공동체여, 그대는 누구인가? 우리는 일치의 비유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인 그분 교회의 이 독특한 일치의 한 소박한 반영이다. 이 일치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는 인류가족 안에서 누룩이 된다. 그대는 무엇을 위하여 불리었는가? 우리는 공동 생활 안에서 오로지 매일의 용서와 신뢰하는 마음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려는 노력을 통하여 사랑의 기적을 언제나 새로이 발견하고자 한다."

 

 

 

 

 

 

 

 

 

그리고...

 

기도 하는 방법은

 

소박한 묵상 기도의 몇 가지 길잡이

 

 

 

어떻게 하면 공동기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한 주간 동안 떼제에 머문 사람이나 떼제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흔히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함께 기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여기고 지레 겁을 먹습니다.

 

 

 

반면에 다행히도 몇몇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나름대로 단순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개방적이고 깊이 있는 기도 형태를 발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빠리 지역에서는 94년 말에 열린 젊은이들의 유럽 모임 이후에 50 여 교회에서 정기적인 기도 모임이 지속되고 있고 흔히 이웃 교회 신자들도 거기에 초대됩니다.

 

비록 아주 멋진 기도가 아니라 해도 여러 사람이 함께 규칙적으로 기도함으로써, 기도가 일상 생활 속에 중요한 지표가 되고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들을 수 있고 다른 이들을 향한 열린 자세를 갖도록 도와준다는 것을 체험하면 ’지난 번 기도 때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왔는지’ ’기도 날짜와 시간은 잘 정했는지’하는 따위의 걱정과 의문은 사라져 버립니다. 기도를 어떻게 준비할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기 몇 가지 제안을 적습니다.

 

기도 장소의 준비

가능하다면 ’교회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좋고 여기에 따뜻하고 안온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노력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기도 장소를 십자가와 성화(이콘), 펼쳐진 성서, 여러 개의 촛불, 꽃 등으로 조화 있게 꾸미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바닥에 간단한 담요나 방석 등을 깔고, 앉기 거북한 이들을 위해서는 의자나 벤치를 뒤에 둡니다. 조명은 너무 눈부시지 않게 은은하게 유지합니다. 기도하면서 우리가 바라보는 분은 그리스도이신 만큼 참석자가 모두 같은 쪽을 향하는 것이 좋습니다.

 

 

순서

 

 

 

1. 떼제 노래 중에 묵상적인 분위기가 담긴 노래 한두 곡을 부르면서 기도회를 시작합니다.

 

 

 

 

 

2. 그런 후 시편을 노래합니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시편을 한 구절씩 읽거나 가능하다면 독창으로 노래합니다. 그러면 모두 함께 ’알렐루야’를 노래함으로써 응답합니다.

 

 

 

정해진 시편 전체를 전부 다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하기 쉽고 더 가슴에 와 닿는 구절들을 잘 골라서 읽거나 노래합니다.

 

 

 

예: 시편 34/33, 42/41, 62/61, 73/72, 84/83, 98/97,

 

 

 

100/99, 103/102, 121/120, 139/138

 

 

3. 그리스도의 빛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예: Jesus le Christ) 몇몇 어린이(혹은 젊은이)들이 촛불을 손에 들고 미리 준비된 등잔이나 촛대에 가서 불을 붙입니다. 이것은 개인 생활이나 인류의 삶 속에서 밤 깊어 어두워질 때에도 그리스도의 사랑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심을 상기시킵니다. (떼제에서는 오래 전부터 어린이들로 하여금 촛불을 켜도록 합니다. 이는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든 세대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4. 성서 구절은 해설이 필요 없을 만큼 짧고 이해 가능한 것으로 택합니다. 떼제의 편지에 실리는 ’말씀의 묵상’을 이용해도 좋겠습니다.

 

5. 성서 말씀을 읽은 다음에는 묵상 노래를 하나 부릅니다. 그리고 나서 긴 침묵 시간을 가집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적 침묵을 얻기 위해 억지로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기보다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서 기도하시도록 침묵 속에 어린이처럼 신뢰하면서 자신을 맡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할 때 어느 날 우리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 그분이 와 계심을 발견할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조용한 묵상 음악(예를 들면 떼제 음악 카세트나 클래식 음악 중에서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겠습니다)을 틀어 놓는 것이 밖에서 들려 오는 소음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떼제에서는 침묵하는 시간을 보통 10여분 갖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조금 줄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짧더라로 5 분 이상 갖는 것이 좋겠습니다.

 

 

6. 침묵 뒤에 이어지는 청원의 기도(중보 기도라고도 함)는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한 두 사람이 돌아가면서 청원의 기도를 드리고 그때마다 응답송으로 ’주여 들어주소서’를 노래합니다.

 

 

7. 미리 준비된 청원의 기도를 다 마치면 참가자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도 좋습니다. 물론 이런 자유 기도는 짧아야 하고 또 하느님을 향해 드리는 말씀이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하여 장황하게 늘어 놓는 말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자유 기도가 끝날 때마다 회중들은 ’키리에 엘레이손’(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들어주소서’ 등으로 응답합니다.

 

8. 주의 기도(주기도)를 노래하거나 함께 외우면서 청원의 기도를 끝맺음합니다.

 

9. 혹 좋은 기도문이나 성인들의 글 중에서 마침 기도로서 적합한 것이 있다면 이를 택하여 읽을 수도 있겠습니다.

 

 

10. 여러 묵상 노래를 이어 부릅니다.

 

더 조용한 분위기에서 기도를 마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기도처에서 일어나 나가는 동안 묵상 음악을 틀어 놓는 것도 좋습니다.

 

노래

 

 

 

노래로 기도하는 것은 하느님을 찾는 아주 훌륭한 길입니다. 떼제의 노래의 특징은 짧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는 것인데 이것은 묵상적 기도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짧은 가사는 금새 이해할 수 있고 이것을 오랫동안 반복해 부름으로써 이 내용이 우리 온 존재 안으로 스며들게 됩니다. 이 단순한 노래들은 우리가 혼자 있을 때도 마음의 침묵 속에 끊임없이 기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기도회 때에 노래를 그냥 시작하다 보면 음을 잘못 잡을 우려가 있습니다. 첫 음을 잡기 위해 소리굽쇠(디아파슨)를 이용할 수 있고 혹은 기타나 플루트 등 악기를 이용하여 첫 음을 잡아주면 선창자가 노래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리드하는 사람은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템포에도 주의를 기울여 노래 속도가 차츰 느려지거나 혹은 빨라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기도의 묵상적 분위기를 잘 자아내기 위해서는 모두 노래를 정확하게 잘 부르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노래 부를 때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화음과 성량에 유의한다면 좋겠고, 가끔 어떤 한두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전체 기도분위기를 흩트리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기도회 전에 미리 노래 연습을 해두는 것도 좋겠습니다. 보통 기도 모임 중 노래를 지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십자가나 성화, 제단 쪽을 바라보도록 합니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여러 나라 말로 노래하는 것이 좋고 작은 단체나 교회에서 부를 때는 한국말이나 라틴어로 또는 영어로 된 노래를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기도회 때 부를 악보를 인쇄한 종이나 음악책을 참가자 모두에게 나누어줍니다. 떼제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참가자들이 잘 아는 한 두 곡을 성가책이나 찬송가에서 골라 부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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