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편지] 농부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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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4-11 ㅣ No.4490

 밥상을 차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광우병이니, 유전자 조작 식품이니 하는 어렵고 생소한 낱말들 때문에 먹는 일이 두려워지기까지 하는 이 즈음엔 더욱 그렇지만 훨씬 오래 전부터도 실상을 알고 보면 세상에 믿고 먹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혼돈스러웠었는데,

이제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신선한 먹거리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주부인 저의 마음이 파릇 파릇 돋아나는 봄잎처럼 설레입니다.

 

 지난 2월 명동에 새로 문을 열게된 우리농 직매장에서 주 1회씩 판매 봉사를 하고 오는 날의 밥상엔 생명의 냄새가 가득하게 되었지요.

 

 그동안 바쁜 일과에 치여서 가족들에게 밥상을 차려 주는 일이 때로는 지겹기도 하고, 유난히도 손이 많이 가는 우리네 음식문화에 투자해야하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오래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척 했었지만,  고작 쓰레기 잘 버리는 일에 조금 마음을 썼을 뿐, 사실 이렇다하게 실천을 하지 못하던 제가 생명학교니, 녹색학교에서 강의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여대면서도 그저 당위로써 머리만 무거워지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죄스러움들 때문에 마음까지 천근만근인채로 지내왔었습니다.

 

 아이들이 밥상머리에 앉아 밥투정을 할 때면 의례적으로 ’이 밥 한톨이 이루어지기까지 농부님들의 노고가 얼마나 힘에 겨운 것인가’ 일장연설을 하면서도 사실은 교과서적인 엄마의 잔소리였을 뿐이였구요,  태어나서 이제까지 한 번도  ’땅’ 에 발디디고 그 속의 생명내음을 느껴보지 못한 도시인의 잔소리는 아이들에게도 약이 되어주지 못했을 겁니다.  나이 40이 될 때까지 먹고 사는 일이, 나에게 먹거리를 만들어주시는 1차 생산자들의 땀이 이처럼 소중하고 위대한 것이라는 걸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었지요.

 

 지난 여름, 녹색학교 교육과정중,  원주 호저 현장을 방문하여 감자밭에서 김매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맡았던 땅의 흙내음...  단 30분 정도 감자밭의 잡초들을 뽑아내는 일이 그처럼 힘에 겨운 내 몸뚱아리가 부끄러워졌었답니다. 세상의 많은 엄마들이 제자식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서 한숨만 쉬고 있을 때, 화학비료나 제초제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뙤악볕 아래서 빗방울같은 땀을 흘리셨을 농부님들의 노고에 고개를 조아려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찌들은 도시에서 각박하고 조급하게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생명의 음식을 일구어주시는 생산자님들.... 힘내세요!!   저라는 사람,  이제까지, 번드르르한 도시에서 사는 일이 그럴 듯한 것인냥  착각하고 살아오면서, 사람으로써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의 문화에서조차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었답니다.   우리농산물로 만든 반찬을 먹으면서 "와~ 맛있다!" 를 연발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저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생명의 먹거리를 차려줄 의무가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한번 절감하게 됩니다. 제 마음 위엔 저희 소비자들을 생각해 주는 생산자여러분들의 피땀어린 마음이 있을테지요.

 

 온 세상의 생명을 창조해주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우리들이,  교회라는 울타리안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직거래를 통하여  ’마음’ 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일이야 말로 하느님 창조사업의 기본 정신이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저는 요즘 비로소 밥상에 앉아 진심으로 성호경을 긋는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요.  우리 주 하느님과 제게 이 값진 음식을 주신 생산자님들에게요.  또한 님들의 논밭에,  또 다른 생산지에,  저희 도시 소비자들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거 너무 아름다운 섭리 속의 관계처럼 느껴집니다.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잔뜩 의심에 찬 마음을 잃어버린 상행위에서 저희들, 참 많이도 삐뚤어져 있었거든요.  님들의 삐땀어린 노고 덕분에 우리들 어긋나버린 마음도 자연스럽게 치유와 생명의 길로 발디딤 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생명을 주시는 땅과 그 땅에 바쳐지는 생산자님들의 땀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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