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대청봉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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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희 [libefor] 쪽지 캡슐

2001-08-15 ㅣ No.4901

 

  며칠 전부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남편이 휴가기간 동안에 아이들을 데리고 대청봉

에 오르자는 것이다.  대청봉이라면 오르기 무지 힘든 곳으로 알고, 시도해보고자 꿈도 꿔본

적이 없는데,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르자니 나로서는 황당하고 불가능한 일 그 자체였다.  특

히 7살인 희연이는 평소에 걷기를 싫어하는 아인데, 그런 아이를 데리고 갈 생각을 하니 정

말 암담할 뿐이었다.  제발 남편이 계획을 바꾸기만을 기다렸지만 끝내 계획은 그대로 실행

되었다.

 

  하루종일 걸릴 이 산행을 위해서 내가 준비한 것은 고구마, 건빵, 과일 등 비상 식량이었

다.  전 날 호텔에 도시락도 부탁했다. 여하튼 우려했던 ’그 날’이 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4시 반에 오색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오색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

다.  오색까지 차를 태워준 사람은 설악파크 호텔 관광사 가이드로, 꺼무스름한 얼굴에 양

볼 안쪽까지 길러 들어온 구렛나루 수염이 산악인으로 보였다. 그는

  "정말 잘 선택하셨습니다.  휴가기간 동안 강원도를 찾는 인구는 천만 정도 되는데, 그 중

대청봉을 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만큼 힘든 코스지만 정말 아름다운 경관으로 보람

을 느끼실 것입니다.  중간에 아이들이 칭얼대서 포기하는 가족도 많은데, 이 아이들은 유순

해서 끝까지 잘 할 것 같네요.   서두르지 말고 데이트하듯 가세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

도 비선대에서 전화하시면 모시러 갈테니 천천히 내려오세요."

  라며 격려의 말을 해 주었다.  정말 그의 말은 나의 마음을 좀 안정시켜 주었다.  ’오를

수 있다’는 생각과 ’늦어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입구에 도착하니, 하얀 모자를 쓴 단체로 온 듯한 청년들이 눈에 띄었다.  그 젊음의 열기가 우리 가족을 압도하는 듯 했다.  가이드는 ’그들을 앞서려하지 말라’고 당부하여, 우리는 가는 내내 그들에게 길을 앞서게 했지만, 그들 역시 초심자여서인지 앞지르는 사람보다는 뒤처지는 친구들이 많았다.

 

  오르기 시작할 때는 어둑어둑했으나 곧 해가 떠서 환해졌다.  더운 날일텐데 산 속은

좀 추웠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의 코스는 원래 내리막 길이라는 말대로, 보는 즐거움은 없었다.  그저 가파른 길을 열심히 오르는 코스인 듯했다.  얼마나 가파른지 가만히 있으면 꼭 뒤로 나자빠질 듯했다.  돌로 된 계단도 많아 정민이는 돌 계단에 질린 듯했다.  그런데 정민이 뿐아니라 뒤에서 오던 젊은 학생들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힘들어서 뒤쳐지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말없이 잘 오르는 희연이와 정민이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져서,

  "몇살이니?  정말 대단하다."

라고 감탄했다.  혹은 힘들어하는 여학생들에게,

  "좀 봐라. 7살인데 저 어린 아이보다 못하면 어떻게하니?"

라며 정민이와 희연이를 타산지석으로 삼기도 했다.  또, 산에서 마주치는 나이드신 분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다.  어떤 분은 ’나도 저만한 아이 있는데, 데려올걸’ 하는 생각을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추측컨대 그런 분들은 훗날 이이들을 데리고 대청봉에 오를 것 같다.  그만큼 7살 꼬마를 데리고 대청봉 등반하는 일은 정말 굉장한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잘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말 기특하고 신기하다.

 

  중간에 시장하여 도시락을 먹으려니 마땅히 쉴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이정표 뒤에다 자

리를 잡고는 사람들이 보던 말던, 지나가던 말던 열심히 먹었다.  왕파리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 와서 공격했지만, 열심히 쫓아가며 맛있게 먹었다.  귀여운 다람쥐들은 근처를 오고가

며 눈치만 보고 있었다.  밥맛이 얼마나 좋던지, 눈깜짝할 새에 먹어치웠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즈음, 드디어 말로만 듣던 ’대청봉’에 도착했다.  과연 대청봉에 올라 눈 앞에 펼쳐진 경치는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설악산 특유의 기암괴석들이 아래로 펼쳐져 보이고, 그 둘레에 몽글몽글 걸쳐있는 구름들, 그 사이로 보이는 옥빛 하늘 그리고 저 멀리 해수욕장과 항구가 점처럼 아스라이 보였다.  비행기 창 너머로 보이는 구름과 지상의 전경들은 창의 크기만큼만 보이지만 대청봉에서 그것은 사방팔방으로 펼쳐져 한꺼번에 쏟아져 보이는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모두 다 ’대청봉’이라 쓰인 팻말 앞에서 증명사진 찍기 바빴다. 당연하다. 어렵게 예까지

올랐는데 그 팻말은 영광의 징표임에 틀림없다.  우리 아이들도 두 컷을 찍었다.  그 영광스런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자료로 남기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서는 서둘러 내려와야 했는데 그것은 추위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신령스런 이 경관을 올라온 정성을 생각해서 잠깐만 허락하신 것 같다.  ’인간의 한계’를 다시한번 느끼면서, 눈 아래로 보이는 대피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무로 납작하게 만든 대피소는 대청봉 꼭대기에서의 추위를 따스하게 녹여줄 피난처로 보였다.  바로 아래 있는 듯했지만 거친 돌들은 그 곳에 가는 길마처 평탄치않게 했다.  여하튼 그곳에서 따스한 캔커피 하나로 몸을 녹인 후, 이제 다시 펼쳐지는 새로운 내리막 길로 떠났다.  이 때가 오전 11시, 이만하면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터이니 반은 성공한 셈이었다.  

  내려오는 길은 좀 완만하다고 했지만, 평탄치는 않았다.  계속되는 돌들은 등산화를 신지

않은 우리 꼬마들을 미끄럽게 하여 넘어질까 계속 조마조마했다.  그런 와중에도 희연이는

종달새처럼 계속 재잘대며 내려가니, 그 소리는 내게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아토피성 피부라 볼테기는 빠알갛고 팔 다리에는 올록 볼록 뭔가 솟은 정민이는 힘에 겨운지 희운각 대피소까지 계속 힘들어 했다.  끝내 대피소 화장실에서,

  "아빠한테 말하지마"

라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기특한 아이인가!  힘들어도 아빠에게 보이지 않으

려 함이 다시 한번 정민이의 사려깊은 속 내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별 맛은 없지

만 느슨한 휴식을 주는 사발면을 먹은 후, 다시 발 길을 재촉했다.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났다.

  "희운각 대피소까지는 별 경치가 없으니, 빨리 내려오시고 그 이후에는 경치를 감상하며

내려오세요."

  그의 말처럼 내리막길에 펼쳐진 경치는 ’써프라이즈’ 그 자체였다.  대청봉에서 멀리 내려다 보였던 기암괴석들 사이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면 기암괴석이요, 아래로 내려다 보면, 옥빛, 푸른빛, 누런빛 세 가지 색의 폭포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폭포의 이름이 ’천당폭포’라 하니, 정말 그곳은 가까이 갈 수 없는 천당 폭포가 맞는 셈이다.  대만의 ’화련’을 생각나게하는 그런 계곡이었다.  멀리 바다 건너갈 필요 없이 설악산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자연의 수려함을 보느라 힘든 것도 잊었다.  갑자기 계곡에 설치된 사다리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이 철제 사다리가 설치되기 전에 이곳은 숨겨진 비경이었으리라. 진정한 산악인들만 와서 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곳이었을텐데, 사다리 덕분에 나같이 초심자가 설악산에 숨겨진 절경을 감상할 수 있게된 것이다.  ’정말 오길 잘 한 것같다.  이런 경치를 보았으니, 앞으로 산에 못 오르더라도 후회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쪽 다리의 관절이 아파서 구부릴 때마다 다리가 아프니, 앞으로 등산을 못하게 되더라도 천불동 계곡을 경험하였으니, 만족한다는 이야기이다.

 

  천불동 계곡은 생각보다 길어서 한참동안 지루함을 잊을 수 있었다.  정민이도

  "엄마, 혼자 보기 아까워."

연신 외치며  큰 눈을 더욱 반짝이며 경치를 감상했다.  그러나 희연이는 지치기 시작했는

지 시무룩해 있었다. 작은 꼬마에게 절경은 별 흥밋거리가 못 되는 모양이었다.  

  큰 바위에 걸터 앉아 쉬는데도 희연이의 입은 한 치나 나와 있었다.  부제님으로 보이는

한 분이 희연이의 그런 모습을 보시고는 가방 속에서 눌려 부스러진 초코파이 하나와 쥬스

를 주셨다.  희연이는 함박웃음을 웃으며, 부스러기 하나 떨어질까 애지중지하며 쥬스 한 방울까지 다 먹어치웠다.  ’아이라서 초코파이 하나에 이렇게 행복해 하는구나!’

  그 부제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거기서 약간의 활기를 되찾았지만, 초코파이 효력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 이후, 희연이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으리라.  내가 관절에 무리가 간 관계로 데려갈 수 없게 되니까, 아마 더 그런 것 같았다.

 

 여하튼 드디어 비선대에 다 왔다.  6시 반쯤 됐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셈이다.  비선대에서 설악산 입구까지 거리도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평평하거나 포장된 길이니, 우리에게 이런 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어느 산인들 두려울까!  태백산맥 줄기에서는 가장 높은 봉이요, 남한에서는 세 번

째로 높은 봉에 올랐는데, 이제 무슨 산을 걱정할까.  나에게는 불가능을 가능케한 사건이었고, 아이들에겐 평생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다리가 아파서 우리 가족 모두 엉거주춤 - 특히 계단 내려올 때 -하게 걷지만, 이 걸음은

대청봉 졸업장이 아닐까?

 

  올 휴가 기간동안 아니 내 평생에 대청봉 등반은 잊지못할 하나의 ’사건’으로, ’추억’으로 남게되었다.  또 무모한 계획을 세웠던 남편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잘했어요, kt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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