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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인색(吝嗇)하지 말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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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0 오후 6:14:5 [69.162.49.*]

2006-08-11 ㅣ No.629

Q.

 

"하느님께 인색()하지 말라"(루카복음서 12,21 참조)고 하는데..

 

"헌금을 많이 내라"는 뜻은 분명 아닌 듯 한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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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아마도 다른 사람도 아닌, "하느님께 인색(吝嗇)하지 말라"고 하였기에, 어려움을 더 느끼는 듯 합니다.


오래 전에 배운 것이지만, 동양철학서인 주역(역경)에 의하면, "인색(吝嗇)하다" 함은 "자신의 허물을 뉘우침에 있어 매우 더딤"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또 그래서 "뉘우치면 길하나, 인색하면 흉하다"고도 하는 모양입니다.


따라서, "하느님께 인색(吝嗇)하지 말라"는 말은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인색하지 말라"는 말이므로, "하느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자신의 허물을 뉘우침에 있어 더디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에게 풍성하게 드러나므로, 하느님의 가르침에 인색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서는 우선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에 인색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즉,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에 반하는 자신의 허물을 뉘우침에 있어 더디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허물을 고치는 것과 관련된 옛 선유(先儒)들의 명언들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더군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다음은 허물을 고치는 것에 대한 말씀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풍(風)과 뇌(雷)는 보태는〔益〕것이니, 군자(君子)는 그것을 본받아 선(善)을 보면 자신에게 옮겨 <실천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 하였습니다. (익괘(益卦)93) 상사(象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바람이 맹렬하면 우뢰가 빠르고, 우뢰가 급하면 바람이 성내어, 이 두 가지는 서로 보태는 〔益〕것이다. 군자는 바람과 우뢰가 서로 보태는 현상〔益之象〕을 보고 자신에게 보탬이 되는 것을 찾는다. 선(善)한 것을 보고 능히 자신에게 옮겨 실천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의 선(善)한 것을 다 <가질 수> 있고, 허물이 있을지라도 능히 고친다면 허물은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탬이 되는 것으로 이 보다 더 큰 것은 없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선한 것을 <보고> 자신에게 옮기기를 마땅히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허물을 고치는 일을 마땅히 우뢰의 사나움과 같이 <단호하게 고쳐야> 한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고도 고치지 아니하면 이것을 허물이라고 한다." 하였습니다. (논어)

 

주자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 능히 고친다면 허물 없는 데로 돌아가지만, 고치지 아니하면 그 허물이 드디어 이루어져서 장차 고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허물을 부끄럽게 여겨서 아닌 것처럼 조작하지 말라. (상서(商書) 열명(說命))

 

채씨(蔡氏)는 말하기를, "허물〔過誤〕은 우연히 생기는 것이지만, 그것을 허물이 아닌 것처럼 조작하는 것은 고의(故意)에서 나온다." 하였습니다.

 

자공(子貢)94)은 말하기를, "군자의 허물은 일식(日食)이나 월식(月食)과도 같아서, 허물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고치면 사람들이 모두 우러러본다." 하였습니다. (「논어」하동)

 

면재 황씨(勉齋黃氏)는 말하기를, "허물이 있을 때는 명백하게 드러나서 덮거나 가리움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으며 <있던 허물을> 고친 때는 맑고 투명하여서 티나 흠〔瑕疵〕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자하(子夏)95)는 말하기를, "소인(小人)은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꾸민다.〔文〕." 하였습니다.

 

주자는 말하기를, "문(文)이란 꾸민다는 뜻이다. 소인은 허물 고치기를 꺼리고 스스로 속이는 것은 꺼리지 아니하므로 반드시 <허물이 아닌 것처럼> 꾸며서 그 허물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하였습니다.

 

○신안 진씨(新安陳氏)는 말하기를, "군자는 허물을 숨기지 아니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면 사람들이 볼 수 있고, 허물을 빨리 고치기 때문에 허물이 없어져서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기를 마치 해와 달같이 한다. 비록 일식이나 월식을 간혹 면하지 못할지라도 도로 밝아지면 무엇이 광명에 손상되겠는가. 소인(小人)은 허물을 숨겨서 덮어 가리어 고치지 아니하고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데> 굳이 인색하여 더욱 그 허물을 중하게 하므로 더욱 어둡고 더욱 심하여진다. 어찌 해와 달같이 명백하고 투철한 기상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자로(子路)96)는 남이 허물을 말하여 주면 기뻐하였다. (맹자)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그는 <자신에게 허물이 있다고 충고하는 말을>들으면 기뻐하여 고쳤으니, 그가 스스로 몸을 닦는 데는 이와 같이 용감하였다." 하였습니다.

 

○주자(周子)97)는 말하기를, "중유(仲由: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말 듣기를 기뻐하여서 훌륭하다는 이름이 무궁하였는데, 지금 사람들은 허물이 있을 때 남이 규정(規正)하여 주는 것을 즐겨하지 아니한다. 마치 병을 숨기고 의사(醫師)를 꺼려하여 마침내 자기의 몸을 죽음에 빠뜨리게 함과 같은데, <이를> 깨닫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자로(子路)는 역시 영원히 후세(後世)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진실로 <자신의> 허물을 듣기를 원한다면 다만 <일러주는 말을> 하나하나 관용(寬容)하여 받아들여야 하되 다시 그것이 사실이고 사실 아닌 것을 따지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면 일의 크고 작음 없이 사람들은 다 말하여 주기를 좋아하여 숨기는 마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하나 하나 계산하고 배교하여 기어이 변명하고 <옳고 그름을> 논쟁한다면 아마 허물을 일어주면 기뻐한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멀지 않아 돌아와, 후회하는 데 이르지 않으니, 크게 길(吉)하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98) 초구(初九)의 효사(爻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잃은 뒤라야 돌아옴이 있다. 잃지 않는다면 무슨 돌아옴이 있겠는가. 다만 잃었으나 머지않아 돌아온다면 후회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는 것이다. 학문을 하는데 다른 길이 없다. 다만 불선(不善)임을 알면 속히 고치고 선(善)한 것을 좇을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쌍봉 요씨(雙峯饒氏)는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에는 선(善)의 단서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어서 본시부터 서로 연속되고 있다. 사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사이에 비록 간혹 조금 잘못됨이 있더라도, 그 <잘못이> 마음에 걸리어 스스로 불안(不安)하게 여기는 뜻이 이미 마음 속에 싹트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천지의 물(物)을 생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露呈〕으로서 맹자(孟子)가 말한 바, '두려워하고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惻隱之心〕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다만 반성하고 살펴서 사욕을 이기고 허물을 다스리는 공력을 더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비록 선(善)을 행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선(善)에 돌아가는 실천이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욕심에 방종하여 함부로 망령되이 행하니 그 후회함이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수양을 잘하는〔善用力〕이가 진실로 이 마음이 싹틈으로 해서 재빨리 <선(善)에> 돌아가, 후회하기에까지 이르지 않게 하면 사람의 욕심〔人欲〕은 사라지고 천리(天理)가 돌아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공자는 말하기를, "안씨(顔氏)의 아들이 거의 <현인(賢人)에> 가깝구나. 불선(不善)함이 있으며 일찍이 알지 못한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 계사(繫辭))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안자(顔子)와 같은 지위에 있는 이가 어찌 불선(不善)함이 있었겠는가. 이른바 불선이라고 말한 것은 다만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조금 어긋나고 잘못됨이 있었는가 하면 곧 능히 그러함을 알고, 알기만 하면 곧 고치어서 다시는 <불선이> 싹트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하였습니다.

 

○장자(張子)는 말하기를, "선(善)이 아님을 알고 일찍이 다시 하지 아니한 것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주자(朱子)는 말하기를, "지금 사람들은 다만 안자가 <잘못임을> 알고는 다시 행하지 아니한 것을 어려운 일인 줄만 알고, 도무지 잘못이 있을 때, 일찍이 <그것을> 모르는 적이 없었다는 것, 그 자체가 정말 어려운 것임을 알지 못한다. 지금 사람이 또한 도리를 얻을 줄 아는 이는 있다. <그러나> 일이 눈앞에 도달하면 도리어 다만 사욕(私欲)에 따라 처리하고 전날에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잊어버린다. 이것은 일찍이 바르게 알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자(顔子)는 타고난 자질(資質)이 지극히 맑은 물과 같이 좋아서 가느다란 티라도 반드시 나타났던 것이다." 하였습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내 나이가 16·7세 되었을 때 사냥하기를 좋아하였다. 얼마 뒤에 스스로, '이제 이것을 좋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말하였더니, 주무숙(周茂叔)99)이 말하기를, '어찌 말을 쉽게 하는가. 다만 그 마음(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잠재해 있어서 <그저 밖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니, 하루 아침에 싹트게 되면 다시 처음과 같게 될 것이다.'하였다. 그 뒤 12년 되던 해 연말에 집에 돌아가다가 들〔野〕에서 사냥하는 사람을 보고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제서야> 비로소 과연 그 마음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음을 알았다." 하였습니다. (섭씨(葉氏)가 말하기를 "주자(周子)는 공부에 힘을 씀이 깊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알았으며, 정자(程子)는 마음을 다스림〔治心〕이 세밀하기 때문에 능히 눈에 보이는 것에 좇아 성찰(省察)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배우는 자는 경계해 살피고 극기(克己)해 다스리는 노력을 더욱 힘쓰지 않을 수 없다." 하였습니다.)

 

○남헌 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무릇 <배워서> 익히는 일〔習〕을 중단함이 있음은 마음의 허물〔心過〕이 해치기 때문이다. 마음의 허물은 더욱 방지하기 어려운데, 한 번 마음 속에 싹트게 되면 비록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는 없으나 내가 항시로 익히는 공부는 이미 사이가 끊어진 것이다. 살피는 것을 늦추면 <마음의 허물은> 불어나고 자란다. 사람들은 옛 버릇에만 안일(安逸)해져서 작은 일이라고 소홀하게 여긴다. 이런 <버릇을> 어찌 익숙한 습관이 되도록 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오늘 한 가지 잘못된 생각을 고통스럽게 여겨 고치지 않으면 내일에 이 생각이 또 생기게 되어 쌓여서 습관으로 익어버리면 상시로 익히는 공부〔時習之功〕가 소각(銷却)되며, 이 두 가지가 함께 성립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두려워한다. <마음의 허물이> 속에서 싹트면 반드시 깨닫고, 깨달으면 깊이 경계하여 끊기를 동엽(棟葉)을 분간하 듯하여 다시 계속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하면 허물있는 지경은 저절로 소원하여지고 상시로 익히는 공부에 전심(專心)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덕(德)에 이르고 도(道)로 응고(凝固)할 수 있는 것이다. 안자(顔子)가 <허물을> 두 번 거듭하지 않았던 것은, 한번에 아주 단절(斷絶)시키고 다시 생기지 않게 하였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나의 거실(居室)을 불이(不貳)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였습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바른 데로> 돌아오는 것을 머뭇거리는 것은 흉(凶)하며 군주(君主)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복괘(復卦) 상륙효(上六爻) 의 상사(象辭))

 

정자는 말하기를, "돌아오면 도(道)에 합당한 것인데, 이미 돌아오기를 주저하고 있으니 도(道)와 서로 어긋난다. 그러니 흉(凶)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의 임금된 자가 위에 있어서 여러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마땅히 천하의 선(善)한 것에 좇아야 할 것인데, <선으로> 돌아오는 것을 주저하고 있으니 임금된 도리에 어긋난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상고하여 보건대, <임금의> 덕업(德業)을 도와 이루는 데는 바른 선비를 친근하게 하는 것보다 더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또 반드시 간언(諫言)에 따르는 것〔從諫〕과 허물을 고치는 것〔改過〕을 합하여 한 장(章)으로 한 것은, 남의 임금된 이가 어진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 한갓 그 사람을 친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장차 그 사람의 선(善)한 것을 취하여 자기의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충하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간언이 있으면 반드시 좇고,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치는 것은 곧 덕(德)을 진취시키고 업(業)을 닦는 데 바탕으로 하려는 것입니다. 만일에 한갓 그 어진 선비의 이름만을 흠모(欽恭)하여 공연히 측근에 두고는 간하는 말이 있어도 좇지 않고, 허물이 있어도 고치지 않는다면, 어진 선비가 어찌 헛된 예우(禮遇)에 얽매어 자기의 소신을 잃으려고 하겠습니까. 반드시 기회를 보아 물러가서 고반(考槃: 은거실(隱居室)을 지어 마음대로 즐기는 것)을 즐기려할 것이며, 임금의 측근에 있는 자는 아첨하여 총애만을 얻으려는 무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위망(危亡)에 이르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현인(賢人)이라고 이름하는 자가 앉아서 영화와 총애를 받으면서, 충성스럽고 바른 간언으로 <임금의 허물을> 바로 잡아 구하여 주는 유익함이 없다면 역시 현자는 써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현명(賢明)한 임금은 바른 선비를 신중하게 선택하여서 날마다 함께 있으며, 함양(涵養)하고 그 <덕에> 훈도(薰陶)되어 자기의 욕심을 이기고 선(善)을 좇아서 덕(德)이 날로 높아지고, 왕업(王業)은 날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정자(程子)는 말하기를, "임금의 덕이 성취되는 것은 책임이 경연(經筵)에 있다." 하였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 주 >

83) 제후(諸侯). 승(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 주대(周代)에 있어서 전시에 천자(天子)는 만승(萬乘), 제후(諸侯)는 천승(千乘)을 내도록 되어 있었다.

84) 장로(長老)의 칭호. 옛날에 천자(天子)가 삼로(三老)와 오경(五更)을 두어 부형(父兄)의 예로 섬겼다. 〔食三老五更於大學〕《禮記, 樂記》

85) 사(士)는 관직이 없는 선비가 아니고 하급 관리인데, 그 사중에는 상·중·하의 세 계급이 있었다. 이것은 주(周)나라 시대의 관제(官制)이다.

86) 간단한 형식으로 하는 상소문이다.

87) 「주역」64괘 중 31번째 괘이름이다.

88)주역」, 64괘중 10번째 괘 이름.

89) 중국 상(商)나라의 어진 임금으로 이름은 무정(武丁)이다.

90) 상(商)나라 고종(高宗) 때의 어진 신하. 존래 토목공사장의 일꾼이었는데 고종이 훌륭한 인물이라하여 당시의 재상으로 발탁하여 국정(國政)을 맡기어 중흥의 대업을 이루었다.

91) 중국의 동해(東海)와 태산(泰山)의 중간에 위치한 땅의 이름. 순(舜) 임금이 설치한 12주(州) 중의 하나이다.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지방으로 대(垈)는 곧 태산을 가리킨다.

92) 한(漢)나라 복양(陽) 사람. 성격이 강직하여 곧은 말을 잘하였다. 하루는 한무제(漢武帝)가 갓을 벗고 있었는데 급암이 그것을 지적할까 두려워 장막 속으로 피하여 그가 하는 말을 윤허하였다.

93) 「주역」64괘 중 42번째 괘 이름.

94) 중국 춘추시대 위(衛)나라 사람. 공자의 제자로 성은 단목(端木), 이름은 사(賜), 자공은 그의 자(字). 공문(孔門) 십철(十哲) 중의 한 사람이다.

95) 공자의 제자 성은 복(卜), 이름은 상(商), 자하는 그의 자(字). 공자보다 44세 아래로 시(詩)에 뛰어났다.

96) 공자의 제자.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자(字)임. 공문(孔門) 10철(十哲)중의 한 사람으로 정치방면에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용맹이 있었는데 위(衛)나라에서 벼슬하다가 공리(孔)의 난에 전사하였다.

97) 주렴계(周濂溪)의 존칭.

98) 「주역」64괘 중 24번째 괘 이름.

99) 중국 송(宋)나라 도주(道州) 사람. 이름은 돈이(敦) 무숙(茂叔)은 그의 자(字)임. 송(宋)·이학(理學)의 개산조(開山祖)이다. 이정(二程)이 모두 그 제자이며 저서로 태극도설(太極圖設)과 통서(通書)등이 있다.

 

(이 글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율곡전서'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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