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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1,17에 대하여 912_faith [성경공부_믿음] [교리학습_믿음] [성경해석] 78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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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6 ㅣ No.995

 
 
+ 찬미 예수님
 
 
1.
다음은 새 번역 성경 로마서 1,17 전문입니다.
 
(로마서 1,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NAB(New American Bible) 로마서 1,17 전문입니다.
 
(NAB 로마서 1,17)
For in it is revealed the righteousness of Go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one who is righteous by faith will live."
 
 
이 글에서는,
 
1-1.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표현이 어떠한 문맥 안에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하여,
 
1-2. 믿음에서 믿음으로(from faith to faith)의 의미, 그리고
 
1-3. 다음과 같이 성 바오로가 말할 때에 그가 뜻하는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는 성경에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2.
2-1. 위의 제1-3항에 대하여서는, 성 바로오(St. Paul)가 말하는 성경의 구절이 하바쿡서 2,4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믿음(faith)이라는 용어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의 구약 성경 근거로 파악이 되고 있는 이 하바쿡서 2,4에 대한 저의 졸글은 다음에 있으며, 필독을 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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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바로 아래의 참고 사항 3제6항 글은,
 
 
2010-10-05 일자로 올려드렸던 저의 졸글(제목: 집사 일을 청산/정리하게???)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해당 용어의 자구적 의미의 올바른 이해 위에서 세 가지 종류의 영적 의미(spiritual sense)들을 고찰할 수 있다(성 토마스 아퀴나스) 라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16항에서도 또한 가르치고 있으므로, 필독을 권유합니다.
 
 
참고 사항 3: 이어지는 내용의 이해를 수월하게 하기 위하여,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15-119항들을 학습하도록 합시다. 좀 더 나은 이해를 위하여, 영어 CCC와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1: http://ch.catholic.or.kr/pundang/4/c115.htm (우리말 CCC 제115항)
출처2:
http://ch.catholic.or.kr/pundang/4/va_c115.htm (영어 CCC 제115항)
 
 
 
The senses of Scripture
성경의 의미
  
115 According to an ancient tradition, one can distinguish between two senses of Scripture: the literal and the spiritual, the latter being subdivided into the allegorical, moral and anagogical senses. the profound concordance of the four senses guarantees all its richness to the living reading of Scripture in the Church.
 
115 성경의 의미는 오랜 전통에 따라 자구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 중에서 후자는 우의적(寓意的) 의미, 도덕적 의미, 신비적 의미로 다시 세분된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경 읽기는 이 네 가지 의미들의 심오한 조화로써 더욱 생생해지고 풍요로워진다.
 
116 The literal sense is the meaning conveyed by the words of Scripture and discovered by exegesis, following the rules of sound interpretation: "All other senses of Sacred Scripture are based on the literal."83
 
116 자구적 의미
자구적 의미는 성경의 말씀으로 나타내고, 올바른 해석 원칙에 따른 주석으로 밝혀 낸다. “성경의 모든 의미는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다.” 90)
 
117 The spiritual sense. Thanks to the unity of God's plan, not only the text of Scripture but also the realities and events about which it speaks can be signs.
 
1. the allegorical sense. We can acquire a more profound understanding of events by recognizing their significance in Christ; thus the crossing of the Red Sea is a sign or type of Christ's victory and also of Christian Baptism.84
 
2. the moral sense. the events reported in Scripture ought to lead us to act justly. As St. Paul says, they were written "for our instruction".85
 
3. the anagogical sense (Greek: anagoge, "leading"). We can view realities and events in terms of their eternal significance, leading us toward our true homeland: thus the Church on earth is a sign of the heavenly Jerusalem.86
 
117 영성적 의미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성경 본문뿐 아니라, 그 본문이 말하는 실재와 사건들도 표징이 될 수 있다.
 
1. 우의적 의미. 사건들의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음으로써 더욱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가령 홍해를 건넌 일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표징이며, 그로 말미암아 세례의 표징이 된다. 91)
 
2. 도덕적 의미. 성경이 전하는 사건들은 우리를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이끈다. 이 사건들은‘우리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1코린 10,11 참조) 기록된 것이다. 92)
 
3. 신비적 의미(anagogia).  우리를 본향으로 인도하는(그리스 말 anagoge는‘위로’ 라는 뜻의 ana와, ‘인도하다’ 는 뜻의 agoge의 합성어이다.) 영원의 의미에서 실재와 사건들을 바라볼 수도 있다. 예컨대, 지상 교회는 천상 예루살렘의 표징이다. 93)
 
118 A medieval couplet summarizes the significance of the four senses:
 
The Letter speaks of deeds; Allegory to faith;
The Moral how to act; Anagogy our destiny.87
 
118 중세의 한 이행시(二行詩)는 이러한 네 가지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글자는 행한 것을 가르치고, 우의는 믿을 것을 가르치며,
도덕은 행할 것을 가르치고, 신비는 향할 것을 가르친다. 94)
 
119 "It is the task of exegetes to work, according to these rules, towards a better understanding and explanation of the meaning of Sacred Scripture in order that their research may help the Church to form a firmer judgement. For, of course, all that has been said about the manner of interpreting Scripture is ultimately subject to the judgement of the Church which exercises the divinely conferred commission and ministry of watching over and interpreting the Word of God."88
 
But I would not believe in the Gospel,
had not the authority of the Catholic Church already moved me.89
 
119 “성경 해석자들의 임무는 이러한 규범에 따라 성경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고 해석하도록 노력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어떤 의미에서 준비의 역할을 하는 연구로써 교회의 판단은 성숙하게 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95)
 
만일 가톨릭 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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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St. Thomas Aquinas, S Th I, 1, 10, ad I.
84 Cf. I Cor 10:2.
85 I Cor 10:11; cf. ⇒ Heb 3:1 - ⇒ 4:11.
86 Cf. ⇒ Rev 21:1 - ⇒ 22:5.
87 Lettera gesta docet, quid credas allegoria, moralis quid agas, quo
   tendas anagogia.
88 DV 12 # 3.
89 St. Augustine, Contra epistolam Manichaei 5, 6: PL 42, 176.
90).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신학 대전」 , 1, q. 1, a. 10, ad 1: Ed. Leon. 4, 25.
91). 1코린 10,2 참조.
92). 히브 3,1`─`4,11 참조.
93). 묵시 21,1`─`22,5 참조.
94). 다키아의 아우구스티노, Rotulus  pugillaris,  I:  A.  Walz  편: Angelicum 6(1929), 256.
95). 계시 헌장, 12항.
96). 성 아우구스티노, 「마니교도 서간 반박」 , 5, 6: CSEL 25, 197(PL 42,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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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의 사항: 위에 나열한 3가지의 영성적 의미(영성적 어의)들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도덕적 의미” 대신에 “윤리적 어의”, “신비적 의미” 대신에 “종말론적/신비적 어의”.
 
특히 다음의 Merriam-Webster's Unabridged Dictionary에 주어진 anagogical 단어의 설명 및 다음의 Henri de Lubac 추기경의 가르침을 담은 저서에 주어진 anagogical sense의 설명에 의하면, “anagogical sense”를 “종말론적/신비적 어의”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이는 “anagogical sense"이 관점에 따라 주관적인 입장에서의 “신비적 의미객관적인 입장에서의 “종말론적 의미 둘 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1 : of, exemplifying, or based on anagoge ; specifically : having a spiritual meaning or a sense referring to the heavenly life
 
 
(클릭하십시오, 필독 권유) 
 
 
참고 사항 4: 사실 Henri de Lubac 추기경은, 20세기 중반에, 가톨릭 계약신학을 재 발굴한 신학자이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4개의 핵심 문헌들 중의 하나인,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적 헌장, "하느님 말씀(Dei Verbum)",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에 있어, 성경에 대한 섹션(CCC 제101-141항)을 통합한(consolidated) 가톨릭 신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5항에서 인용하고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성 토마스 데 아퀴노)의 신학대전 해당 구절의 인터넷 주소입니다. 영어로 번역된 신학대전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Reply to Objection 1. The multiplicity of these senses does not produce equivocation or any other kind of multiplicity, seeing that these senses are not multiplied because one word signifies several things, but because the things signified by the words can be themselves types of other things. Thus in Holy Writ no confusion results, for all the senses are founded on one — the literal — from which alone can any argument be drawn, and not from those intended in allegory, as Augustine says (Epis. 48). Nevertheless, nothing of Holy Scripture perishes on account of this, since nothing necessary to faith is contained under the spiritual sense which is not elsewhere put forward by the Scripture in its literal sense.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7월 13일]

반대 1에 대한 답변. 이들 어의들의 다중성(multiplicity)은, 이들 어의들이 한 개의 단어가 여러 개의 사물들을 나타내기 때문에 증식되는(are multiplied) 것이 아니라, 이 단어들에 의하여 나타내어지는 사물들 그 자체들이 다른 사물들의 종류들일 수 있기 때문에 증식되므로, 다의(多義)의 허위(equivocation) 혹은 어떤 다른 종류의 다중성을 산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있어 어떠한 혼란도 야기되지 않는데, 이는 이 어의들 모두가, 아우구스티노(Augustine)가 말하듯이(Epis. 48), 우의/풍유(allegory) 안에서 의도된 것들로부터가 아니라, 거기로부터만이 어떤 논증이 도출될 수 있는, 한 개 - 자구적 어의(the literal) - 위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어떠한 것도 이것 때문에 소멸되지 않는데, 왜냐하면 믿음(faith)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necessary to) 어떠한 것도, 그 자구적 어의에 있어 성경에 의하여 다른 장소에서 두드러지게 되지 않는, 영성적 어의 아래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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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 해석에 대한 관점을 다루고 있는 개괄 논문(survey paper)(저자: John F. Boyle)입니다. 이 논문은 성경의 의미를 위에서처럼 네 가지로 나눈 신학자가 바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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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따라서, 이어지는 세 가지의 영성적 의미(영성적 어의)들을 바로 이 자구적 어의(자구적 의미)로부터 해석과 묵상 등을 통하여 도출하고자 함에 있어, 만약에 이 자구적 의미(자구적 어의)의 이해에 있어, 자국어로의 번역 과정에서의 어떤 잘못 때문에 독자의 개인적 판단에 근거한 자의적/임의적 해석이 독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될 여지가 있게 되면, 영 엉뚱한 해석을 하는 등의 매우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기에,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16항에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성경의 모든 의미는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다.” 를 언급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매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할 때에 직역 번역을 하여야 하는 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단, 여기서 말하는 직역 번역은 원 언어로 역번역을 하였을 때에, 문장의 구조를 포함하여, 원문에 매우 충실한 번역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5항의 가르침처럼, 자국어로 번역시에, 원 언어로 파악되어지는 올바른 자구적 의미의 범주 내에서, 직역 번역 작업이 진행되어야만, 비로소 이어지는 3가지의 영성적 어의(영성적 의미, spiritual senses)들을 자국어로 제대로 해석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여, 번역자가, 원 언어로 쓰인 문장에서 사용 중인 용어들의 개념(idea, concept)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자국어로의 번역을 하게 되면, 원 언어로 된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literal sense)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번역을 하게 되므로, 기껏해야 그리고 잘해야, 의역 번역 밖에 될 수가 없으며, ... 번역자의 의도와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자국어를 사용하는 분들의 사고에 혼란을 야기하여, 그 결과 이들 영성적 어의들에 있어, 원 언어로 기록된 표현에서는 불가능한, 대단히 엉뚱한 주장을 도출할 수도 있게 되기에, 바로 이런 점에 대하여 아무런 지적 없이 그냥 지나기에는 곤란한 “번역 오류의 문제”가 뒤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문법(grammar)"보다는 "언어(language)"가 먼저이며,
"언어"보다는 "개념(idea, concept)"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참고 자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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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위의 제1-1 및 1-2항들에 대하여서는, 홀수해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로마 1,16-25)에 포함되어 있는, 로마서 1,1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 교도권의 전통적 가르침에 매우 충실한 좋은 설명들이 주어져 있다는 생각입니다.
 
2-2-1. 우선 전체의 윤곽을 파악하는 의미에서, 로마서 1,17에 대한 NAB의 주석부터 함께 읽도록 합시다:
 
 
11 [17] In it is revealed the righteousness of God from faith to faith: the gospel centers in Jesus Christ, in whom God's saving presence and righteousness in history have been made known. Faith is affirmation of the basic purpose and meaning of the Old Testament as proclamation of divine promise (Romans 1:2; 4:13) and exposure of the inability of humanity to effect its salvation even through covenant law. Faith is the gift of the holy Spirit and denotes acceptance of salvation as God's righteousness, that is, God's gift of a renewed relationship in forgiveness and power for a new life. Faith is response to God's total claim on people and their destiny. The one who is righteous by faith will live: see the note on Habakkuk 2:4.
 
(졸번역)
11 [17]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는데,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구하시는 현존 및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은 알려지게 되어 왔습니다. 믿음(faith)은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선포(proclamation)로서(로마 1,2; 4,13) 그러나 심지어 [모세 오경의] 계약 율법(covenant law)을 통하여서도 인류가 자신의 구원을 결과로서 가져올 능력이 없음에 대한 노출(exposure)로서의 구약 성경의 기본 목적 및 의미에 대한 확언(affirmation)입니다. 믿음(faith)은 성령의 선물(the gift)이며 그리고 구원을 하느님의 의로움(God's righteousness)으로서, 즉, 새 삶을 위한 용서와 힘 안에서의 새롭게 된 관계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임을 나타냅니다. 믿음(faith)은 사람들과 그들의 운명에 대한 하느님의 전적인 요구에 대한 응답입니다.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하바쿡서 2,4에 대한 주석을 보라.
 
 
2-2-2. 다음은 하바쿡서 2,4에 대한 NAB 주석입니다:
 
 
1 [4] The just man, because of his faith, shall live: the faith which here enables the virtuous man to survive the impending doom is both a confident belief in God's justice, and patience in awaiting its execution. St. Paul quotes these words (Romans 1:17; Gal 3:11; Hebrews 10:38) to confirm his teaching that man receives justification and supernatural life through faith in Christ.
 
(졸번역)
1 [4]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 임박한 운명을 이기고 살아남는 힘을 주는(enable), 여기서의 믿음(faith)은 하느님의 의로움에 대한 확신하는 신념(confident belief), 그리고 이 하느님의 의로움의 실행을 기다림에 있에서의 인내(patience) 둘 다를 말한다. 성 바오로는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의화(justification)와 초자연적 생명(supernatural life)을 받는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들 표현들을 인용하고 있다(로마 1,17; 갈라티아 3,11; 히브리 10,38)
 
 
2-2-3. 다음은 홀수해 연중 제28주일 제1독서(로마 1,16-25)에 포함되어 있는, 로마서 1,1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서 발췌한 것들입니다. 위의 제1항의 세 개의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의 전통적 가르침들 안에서 대단히 분명하게 잘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7. The expression "righteousness of God" refers to the state of righteousness or justice (= justness) in which a person is placed when God gives him grace. It is called the righteousness of God because man cannot attain it through his own efforts: it is a free (gratuitous, hence "grace") gift of God. The fact that "righteousness" comes from God does not mean that it is something external to man, for righteousness does not mean merely that we are called "righteous" but that we really are righteous in God's eyes. The Magisterium of the Church has given solemn teaching on this matter in the context of explaining the various factors which cause man's justification; "Finally", says the Council of Trent, "the only formal cause is 'justice of God, not the justice by which he is himself just, but the justice by which he makes us just' (St Augustine, "De Trinitate", XIV, 12, 15), namely, the justice which we have as a gift from him and by which we are renewed in the spirit of our mind. And not only are we considered just, but we are truly said to be just, and we are just" ("De Iustificatione", chap. 7).

17. "하느님의 의로움(righteousness of God)" 이라는 표현은, 한 인격(a person)이, 하느님께서 그에게 은총을 주실 때에, 그 안에 자리잡게 되는, 의로움(righteousness)이라는 혹은 정의[justice (=justness, 올바름)]라는 상태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상태가 하느님의 의로움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사람이 자신 고유의 노력들을 통하여 이 상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상태는 거저 주시는(free) [공짜로 얻는(gratuitous), 따라서 "은총(grace)"인] 하느님의 선물(gift of God)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교도권은 사람의 의화(man's justification)를 불러 일으키는 다양한 요인(factors)들을 설명하는 문맥 안에서 이 질료(matter)에 대한 엄숙한 가르침을 이미 제시하였으며, 그리고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최종적으로, 유일한 형상적 원인(the only formal cause)은 '그것에 의하여 당신께서 몸소 의로운 분이신 바로 그 의로움이 아니라not the justice by which he is himself just), 그것에 의하여 당신께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바로 그 의로움이다(but the justice by which he makes us just)'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De Trinitate", XIV, 12, 15)], 즉 당신으로부터의 선물로서 우리가 가지는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의 영(in the spirit of our mind)) 안에서 우리가 새롭게 되는(are renewed) 바로 그 의로움(the justice) 이다. 물론 (And) 우리는 단지 의롭다고(just)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의롭다고 진실로(truely) 말해지며, 그리고 우리는 의롭다" ["의화(De Iustificatione)", chap. 7].

"Through faith for faith": Sacred Scripture tends to use this kind of phrase to indicate on-going growth in something that is living (cf. Ps 84:8; 2 Cor 2:16; 3:18; Rom 6:19). What is being spoken about here is a steady progression from the imperfect understanding of divine truths possible in this life to the perfect understanding that is experienced in heaven. The full meaning of the phrase can be seen from St Paul's statement that in the Gospel justice is made manifest: it begins and is nourished and grows through faith, until the believer at last attains eternal salvation.

"믿음에서 믿음으로": 성경은 살아 있는 어떤 것 안에서의 지속적인 성장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러한 종류의 표현(phrase)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tends to) (시편 84,8; 2코린토 2,16; 3,18; 로마 6,19를 참조하라). 여기서 말해지고 있는 바는 이 세상의 삶에서 가능한 하느님의 진리들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로부터 하늘에서(in heaven) 경험하게 되는 완전한 이해로의 확고한 진행(a steady progression)을 말합니다. 이 표현의 완전한 의미는 [하느님의] 복음(the Gospel) 안에서 의로움(justice)이 드러나게 된다는 성 바오로(St. Paul)의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 의로움은, 믿는 자(the believer)가 최종적으로 영원한 구원을 얻을 때까지, 믿음을 통하여 시작하고 그리고 자양분을 받게 되며 그리고 자랍니다. 

The statement that "he who through faith is righteous shall live" comes from Hab 2:4; St Paul here applies it to the position of the Christian. What the prophet meant was that those Jews who kept the Law and trusted in its promises would not succumb when the Babylonians invaded. St Paul applies the test to the righteous of the New Testament: if they stay firm in their faith in the Gospel, they will continue in the life of grace and will attain everlasting beatitude. The faith of good Israelites was a prefiguring of the faith of good Christians. The just man will live by faith, which "faith is the beginning of man's salvation, the foundation and source of all justification, 'without whic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cf. Heb
11:6) and to be counted as his sons" (Council of Trent, "De Iustificatione", chap.
8).

"의로운 이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라는 진술은 하바쿡서 2,4로부터 유래하며, 그리고 성 바로오는 여기서 이것을 그리스도인들의 지위에 적용합니다. 이 예언자가 뜻하였던 바는 율법(the Law)을 지켰으며 그리고 그 약속들에 신뢰하였던 유다인들이 바빌론인(the Babylonians)들이 침공하였을 때에 굴복하지(succumb)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 바오로는 이 시험을 신약 성경의 의로운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적용합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음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에 굳건히 머무른다면, 그들은 은총의 삶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그리고 영구히 계속되는 지복직관(everlasting beatitude, 참 행복)을 얻을 것입니다. 착한 이스라엘의 자손[good Israelites)들의 믿음(faith)은 착한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미리 나타냄(a prefiguring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살 것인데, 그리고 "믿음은, '이것 없이는 하느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불가능 하며(히브리 11,6을 참조하라)'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로 간주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의 구원의 시작인 모든 의화(all justification)의 기초이며 원천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의화(De Iustificatione)", chap. 8].

St Paul's statement can also be understood as meaning that he who through
faith is just will live. This puts the emphasis on the fact that faith is the beginning of the process of justification, and that a person who is justified will attain salvation.

성 바오로의 진술은 믿음을 통하여 의로운 자는 살 것입니다(he who through faith is just will live, NAB 로마 1,17을 참조하라)를 뜻하는 것으로 또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믿음이 의화 과정(the process of justification)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그리고 의롭게 된 자는 장차 구원을 얻을 것(will attain)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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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성에 소요된 시간: (우리말 번역을 포함하여) 약 1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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