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연중 제23주일 강론(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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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헌 [heonheon] 쪽지 캡슐

2000-09-08 ㅣ No.1956

 

      1독서 :  이사야 35,4~7

      2독서 :  야고보 2,1~5

      복  음 :  마르코 7,31~37

       

 

  사람은 누구나 가난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사람이 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가난''가져야 될 것을 갖지 못한 상태'라는 뜻에서의 가난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자신이 가져야 될 모든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더 벌려고 하는 것이 요즘 세태입니다.  설사 자기 재산이 넉넉하다며 만족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부분에서 채워져야 될 것이 있다고 느끼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경제적 풍요에 더하여 권력의 혜택을 누리고 싶어하고 그 권력에 한 번 맛들이며 보다 더 높은 지위와 신분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운좋게 최고의 권력을 휘두르는 옥좌를 차지하게 되면 영구적으로 그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으려 하고, 그게 가능하다 싶으면 자신의 분신이라고 여겨지는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권좌가 계승되기를 바라는 욕심까지 내게 됩니다. 부와 권력을 동시에 누리게 되더라도 그것으로 만족을 못하고 부와 권력의 휘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를 존경하고 칭송해 주기를 바라는 명예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게 됩니다. 자기 개인의 명예에 대한 욕심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자기 개인뿐 아니라 가문 전체가 영영세세에 추앙받을 수 있는 업적을 구상하게 되겠죠.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의 밑바닥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가난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 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고 늘 부족함을 느끼면서 아무리 많이 가져도 가져야 될 것을 다 못 가진 것 같은 지치지 않는 아쉬움은 무슨 이유때문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세상 안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낙원(樂園)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안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이 세상 것으로 대체해 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볼썽사나운 여러가지 탐욕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조건의 한계라는 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는 낙원에 도달할 수 없고,  완전한 충만을 체험할 수 없는 가난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인간은 의식하건 못하건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 해바라기일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우리 인간의 가난을 없애 주고 충만한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한없이 멀리 계시고 지지고 볶으면서 살고있는 우리 인생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아득히 멀리 계신 분인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 안으로 직접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 안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을 현실로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에게 기적을 베푸셔서 귀를 열어서 들을 수 있게 하시고 혀를 풀어서 말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치유받은 귀먹은 반벙어리처럼 우리도 이제는 더 이상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느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혀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향한 귀와 혀가 열려 있기에 가난에 찌들어도 변질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구원을 희망으로 삼고 꿋꿋하게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마르코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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