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하느님께 드리는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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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0-05-30 ㅣ No.3250

하느님!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매일 매일 답장도 오지 않는 메일을 보내시느라구

얼마나 바쁘신지요?

전 그래도 너무 다행히도, 이렇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메일을 받아보고

답장을 쓸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언제나 힘들고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만 당신께 조르고 떼를 쓰지요.

그래서 수도 없이 저희들에게 전해지는 하느님 당신의 숨결을 너무 많이 잊고 산답니다.

 

오늘,

푸른 신록의 5월의 끝자락에, 너무나도 아름답고 은혜로운 들꽃마을에 다녀왔습니다.

5년 전 처음으로 설레이던 마음으로 들꽃마을을 방문하던 날들의 풋풋함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는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그 곳을 처음 다녀오던 날,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영혼들을 느끼며 한도 끝도 없이 저의 모습이 부끄러워 땅속으로라도 숨고 싶었던....저의 참회를 기억하실겁니다.

그 때 전, 하느님 당신으로부터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큰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마치 둔중한 쇳덩어리로 뒷통수를 얻어 맞은 것만 같았던 그 날들의 충격을 잊으면서

다시 세상과 타협하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의 이즈음 저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무거워진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습니다.

 

비록 육신은 병들어서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으로 보이는 그이들의 삶 속에는

하느님 나라의 영롱함이 때 묻지 않고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라며 자위하는 저희들의 영혼은 썩어질 대로 썩어져서

당신이 보시기에 얼마나 추한 모습일런지요.

당신께서 저희 현대의 도시인들에게 허락해 주신 모든 은총의 감사함과,

어쩌면 우월의식이 되기도 쉬운 교만함을 혼돈하지 않도록 도와 주소서.

그들을 향한 막연한 동정에의 눈물 한 방울로

나누지 못하며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죄스러움을 일순간에 청산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저희들이 세상이 주는 행복에 겨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 동안,

하느님 당신이 보시기에 너무나도 어여쁜 고통의 그들은 이미 당신의 나라에서

맑은 웃음으로 사랑받고 있을테니까요.

 

하느님!

이 순간에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움켜쥐고 집착하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주님께서 보내주신 E-mail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5년 전 첨으로 들꽃마을을 방문하며 저에게 강하게 깨우쳐 주셨던 당신의 꾸짖음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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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회

 

 

 

은총의 땅. 들꽃마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노닥거리며 우리는 그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도착한 순간의 두려움, 회피감.

 

순수할 것 같은 영혼들을 느끼면서도 도망치고 싶은 죄스러움이 있었다.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이건 값싼 동정심이거나 타인을 의식하는 거짓위선이 아닌가하고 자문해 보았다.

 

성전에 들어가 신부님의 하늘 우러른, 천상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의 ’봉사’라는 행위가 진정, 타인을 의식한 위장술이 아니길,

 

내 자신을 스스로 이토록 모를 수 있을까하는 존재의 나약함에 대해 주님께 말씀 드렸다.

 

그 때 신부님의 찬양노래는 나로하여금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게 하였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서도 계속되는 그 음성은,

 

은총의 땅 들꽃마을에 발디디고 서 있는 내 몸뚱아리를 어찌할바 모르게 만들고 있었다.

 

 

 

네모진 구석의 귀퉁이에 머리를 콕 쳐박고 싶은,

 

아니면 그 땅위에 내리쬐는 햇살이 머무르지 않는 어느 곳에라도 숨어 버리고 싶은 처참함.

 

허나, 풀 한포기 흙 한줌에도 살아계시는 그 분으로 부터는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나의 무력함.

 

뜨거운 참회의 눈물이 솟구쳐 흐름에 진실로 주님께 감사 드렸다.

 

내 몸에 싣고 왔던 빛깔좋은 낭만을 깨부수고,

 

진정으로 진정으로 주님의 말씀처럼 서로의 고통을 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이 지닌 맺히고 맺혀 왔던 상처와 죄악을 씻어내는 걸레질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라고

 

주님께서 일러 주시는 것 같았다.

 

정신지체아!

 

그들은 내 영혼의 상처를 씻어내 줄 수 있는 나의 천사들 같았다.

 

나를 먼저 끌어 안아주고, 먼저 위로해 주고, 먼저 사랑해 주는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는 영혼의 만남.

 

손 잡아주고, 닦아주고, 안아주고, 사랑해주면,

 

내영혼 더러운 부분의 얼마만큼을 닦아 낼 수 있을까?

 

 

 

미상이, 승규, 바오로, 퉤퉤........

 

참회의 눈물로 조금, 아주 조금 닦아내 줄 수 있게 해준 그들을 위해 기도 드리고 싶다.

 

또한 나에게 큰사랑을 가르쳐주신 비오 신부님이

 

늘, 큰사랑의 빈 가슴을 간직하실 수 있도록 기도 드린다.

 

 

 

’서로 사랑하여라’ 라는 주님 게명을 다시 새겨 보면서

 

내 살아온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애 동안, 후벼 파고 후벼파던, 자학의 몸부림을 그만두고

 

이제는 자신을 항상 돌아 볼 줄 아는 언제, 어느 곳에 있더라도,

 

더 넓고, 깊은 사랑을 바치려고 노력하는 주님의 참된 신앙인이 될 것을 다집해 본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렇게 좋은 말씀을 두고, 내 영혼의 열정은 너무나 큰 아픔으로 방황해 왔다.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또 눈에 띄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나의 동생들,

 

나에게 인내의 사랑을 심어 준 나의 남편과,

 

건강하고 예쁜 두 아이를 주신,

 

항상 내 안에  함께 해 주시는 내 주님께 모든 찬미와 감사와 경배를.........

 

 

 

 

                               1995.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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