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모두들 안녕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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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기 [jamesbae] 쪽지 캡슐

2003-10-06 ㅣ No.2195

+ 찬미 예수님!!!

송파동성당 형제자매님들 모두 안녕들 하시죠? 그동안 못와서 죄송합니다.

하는 일도 없이 바쁘고, 돈도 안 되면서 일은 많고,

오라는 곳은 없으나 갈 곳은 많고 ㅎㅎㅎ 뭐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좋은글이 있길래 혼자 읽기 아까워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여기 올려 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글이 있으면 가끔 여기에 올려드리겠습니다만 제 홈페이지에도 놀러오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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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봉사를 하십니까?

 

"그녀의 이름은 로르입니다. 로르는 그 때 스물 세 살이었습니다. 로르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파리에 좋은 직장이 여러 군데 나섰지만, 로르는 생각했답니다. ’돈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지금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어떤 일을 할 때다.’ 그래서 로르는 캘커타로 왔습니다"(조병준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중에서).

 

위의 글은 인도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의 집에 찾아온 수많은 자원봉사자 가운데 로르라는 한 프랑스인의 자원봉사 동기이다. 분명 로르의 경우처럼, 봉사에 온전히 투신하기 위해서는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과 책임져야 할 가족에 아직 매여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청년이라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청년들은 자신의 젊음을 송두리째 봉사하는데 투자하는 것일까? 과연 봉사란 우리의 젊음과 맞바꿀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 짧은 지면을 통해서 봉사의 정의를 내리거나 봉사관의 우위를 가리는 등의 어떤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만나본 다양한 봉사자들 곁에서 느낀 것을 많은 성서가족들과 함께 나누면서 우리는 왜 봉사를 하고 있고 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돌이켜 보는 자리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이래서 한답니다!

봉사에 대한 살아 있는 견해를 구하기 위해 봉사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있는 주변의 몇몇 청년들을 대상으로 선정하여 ’당신은 왜 봉사를 하십니까?’라는 간단하지만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냥 시작했는데 지금은 봉사자들과 친해져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좋은 일 하면서 무언가를 얻고 싶었어요.", "부모님이 시키셨는데요.",  "학점에 반영되걸랑요.", "마음이 예쁜 배우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이 봉사자는 실제로 결혼에 골인했다.), "제가 느낀 하느님을 전하고 싶어서요."......

이밖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답들이 쏟아져 나왔고 우리는 감히 그것을 통계 낼 시도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청년들이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체험 속에는 하나의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봉사가 ’가진 자 쪽에서 가지지 못한 자’에게로 라는 일방 통행식 베풀기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확신이었다.

"처음에는 희생이다 손해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국 다 나에게 돌아오더라구요. 간접 투자였다고 할까요. 제게 봉사는 일종의 재충전 기회입니다. 저를 사랑해 주는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만큼은 사회의 삭막한 인간 관계를 잊게 돼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각박해졌던 마음이 봉사를 하면서 부드러워지고 순화되는 거지요. 저는 봉사를 통해서 다시 사회생활을 할 힘을 얻어요. 봉사는 제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계기라고 할 수 있지요"(김희성, 정신지체아동들과 3년 봉사).

 

그게 다가 아니예요!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뜻밖의 선물이 봉사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 선물의 이름은 어떤 이들에게는 기쁨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행복이다. 때로는 존재의미라고도 불리우고, 사랑이라는 명칭이 붙기도 한다. 아니, 선물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봉사라는 매개를 통하여 내어줌으로써 받고, 나눔으로써 더 크게 돌아오는 신비를 체험했다는 것이고 그 과정 속에서 알 수 없는 어떤 분에 대한 자리를 확인한 데 있었다. 우리가 만난 다양한 봉사자들이 들려준 고백에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비유되는 체험이 담겨 있었고, 그 체험은 반드시 그들 종교의 유무나 신앙심의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가 찾아낸 두 번째 공통점이었다.

"예전에는 내 안에 있는 본능적인 나눔의 의지로 봉사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나눔의 의지라는 본질을 만드신 분 자체가 하느님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선하심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닐까요?"(김지혜, 충주 성모학교 자원봉사자·창 258차).

"로마에서 신학공부를 하던 중 크리스마스 휴가를 캘커타에서 자원봉사자로서 보내겠다고 날아온 도날드였습니다. 저는 도날드의 그런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가장 낮은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어떤 ’사람의 아들’의 모습을 도날드에게서 보았습니다"(조병준, 캘커타의 마더 데레사의 집에서 봉사).

 

에이 그만둬 버릴까?

봉사의 긍정적인 측면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봉사의 과정이 늘 핑크 빛 순탄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느 여정과 다를 바 없이 봉사자의 앞길에도 어김없이 장애물은 있기 마련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예상치 못했던 문제와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르완다에서 봉사할 때였어요. 군인들이 우리 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200명의 환자들이 치료받고 있는 병원을 폭파시키겠다는 위협을 해왔지요. 저 혼자 르완다 정부와 국제기구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군인들을 저지해야 했답니다. 다행히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제 인생에서 그 때만큼 힘들었던 적은 없을 거예요. 두려움과 무력감 그리고 분노의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소피 들로네,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행정담당으로 5년 이상 봉사).

이처럼 지극히 선한 의지에서 출발한 봉사가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하고 거부당할 때, 누명을 쓰거나 오해를 받게 될 때 우리는 무척 당황하게 된다. 우리 안에서 끝없는 회의와 물음이 시작되는 것도 이 때부터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봉사에 대한 2단계의 ’왜?’라는 질문은 여기서 봉사를 그만 두느냐, 아니면 새로운 차원의 봉사관을 정립하느냐의 기로로 우리를 몰고 간다.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는가?

앞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우리는 여기서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얼마전 봉사의 한 단계를 지나간 어떤 봉사자의 체험담을 소개함으로써 각자에게 맞는 봉사관 정립이라는 과제는 독자의 몫으로 두고자 한다.

"얼마전 정신지체아들을 수용하고 있는 요한의 집에 봉사를 자원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하느님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그 곳에 갔는데 주방일을 주더군요. 하루 종일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이럴 바에야 차라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4일 있으니까 이번에는 빨래방 일을 맡기더라구요. 빨래방에서 기저귀를 빨면서 아무리 그쪽에서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하고는 1시간도 못 있었습니다. 그냥 왔다갔다 하면서만 아이들을 볼 수 있었죠. 1주일 후에는 몸도 마음도 피곤해졌어요. 빨래를 널다가 중간중간 여유가 생기면 아이들에게 갔습니다. 처음부터 그 일이 하고 싶어서 갔으니까요. 그렇게 15일이 지나고 나서야 내가 왜 이곳에 왔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왔나 아니면 하느님 때문에 왔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후로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빨래를 하고 있을 때도 이 일이 얼마나 필요하고 내가 안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안타까워할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빨래방 다음에요? 안내실에 배치되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체크 했지요"(최장민 도밍고, 신학생·창 204차 연수).

봉사가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봉사에 의미를 주는 것은 그 근거에 대한 묵상과 확신에서 비롯될 수 있다. 우리 안에 확고한 봉사관이 정립될 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무엇에 의지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눈에 보이는 현상에서의 실망과 힘듦에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박권식 비오, 창 124차).

 

우리가 확인해 본 바와 같이 봉사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청년들이 도전해 볼 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성서공부와 연수를 통해서 느꼈던 기쁨을 생각할 때 성서가족들에게 있어서 봉사는 분명 어떤 형태로든 갚아야 할 몫으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어떤 모양으로, 어떤 시기에 되돌리느냐의 문제 역시 각자의 선택의 사항으로 남는 것이겠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또는 소극적인이라는 형용사로 비판되곤 하는 성서모임의 한 단면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우리 모임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앞으로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할 젊은이들이 성서모임 안에서 나누었던 것을 너무 내 안에만 담고 있지 말고 교회나 사회를 위해서 활동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예요"(박데레사 수녀님, 청파동 본당).

 

- 사랑의 선교 수사회 홈페이지에서 -

 

배건기 야고보 홈페이지 -- http://www.baeja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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