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혼수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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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08 ㅣ No.5516

 

오늘은 이사가는 날입니다.

우리 집엔 이사를 다닐 때마다 애물단지가 되는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쓰지 않는 솜이불 한 채.

남편은 침대 살림에 숨이불이 무슨 소용이냐며 버리자고 성화지만, 나는 차마 그럴 수가 없습니다.

불에 탄 흔적까지 있는 이불이지만 나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신주단지처럼 이불보따리를 모시고 다녔습니다.

거기엔 목화솜보다 푹신하고 따뜻한 내 어머니의 사랑이 얼룩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시집 오기 전, 어머니는 3년 동안이나 목화를 심어 정성껏 솜을 고르셨습니다.

그것도 꼭 맏물솜만 골라 이불 한 채를 만드시고는, 솜 트는 걸 구경하는 내게 당부하셨습니다.

"이담에 솜이 눌려서 솜틀집에 가거든 꼭 지켜봐야 한다. 다른 솜과 바뀌면 너무 아깝거든."

나는 어머니의 말씀에 뜻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을 올리기 며칠 전, 뜻밖의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막내 동생이 모기장 안에 등잔불을 켜 놓고 공부하다 그만 불을 낸 것입니다.

다행히 바로 발견해서 불을 끄긴 했지만 그 와중에 혼수이불에 불이 옮겨붙어 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엄마는 정신없이 덤벼들어 맨 손바닥으로 그 불을 끄려 하셨습니다.

식구들이 말려도 계속해서 불을 끄시다가 그만 손을 데인 엄마.

엄마는 불 붙은 비닐천이 손에 들러 붙어 손바닥에 화상을 입고도 솜이불만은 건졌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금도 엄마의 그 아픈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는 솜이불을 보면 어김없이 눈물부터 흘리는 나는 어김없이 그 애물단지, 아니 신주단지를 끌어안고 이사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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