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어머니의 밥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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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10 ㅣ No.5520

 

어머니는 생선 장수였습니다.

자그마한 어촌 부둣가에서 생선을 받아다 파시는 어머니.

고깃배를 타던 아버지가 풍랑에 쓸려 세상을 등진 후 어머니는 6남매를 그렇게 홀로 키우셨습니다.

"엣수.. 싸게 드린 거야."

작닥막한 키에 허기진 몸으로 어머니가 자식들 입에 밥술이라도 떠 넣어 줄 수 있는 길은 생선함지를 이고 이집 저집 다리품을 파는 일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행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잘 해드릴게, 한 마리 사요."

"다음에요, 다음에."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그래봐야 6남매 한 끼 식량을 사기에도 빠듯한 벌이였습니다.

팔다 남은 물간 생선 한 마리와 봉지쌀 조금만 있어도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방문을 열고 어머니가 들어오면 아이들은 반갑게 맞았습니다.

"야, 엄마다!"

열두 살, 열 살, 아홉 살, 여덟 살. 고만고만한 어린 아이였던 우리의 소원은 하얀 쌀밥을 한번 양껏 먹어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밥은 언제나 모자랐고 우린 너나 할 것 없이 먹을 것만 보면 허겁지겁 야단이었습니다.

"쩝쩝... 냠냠냠..."

"좀 줘."

"어... 싫어 싫어."

밥상머리에서 벌어지는 이런 실랑이는 이제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끼니마다 밥을 반 그릇씩 남겼지만 남은 밥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막내가 숟가락을 빨며 더 먹겠다고 했습니다.

"엄마, 엄마 밥 내가 더 먹으면 안 돼요?"

"나도 더 먹고 싶은데."

"나두 나두."

위 아래 할 것 없이 여러 아이 다 모두 서로 먹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언제나 손으로 단호하게 밥그릇을 막았습니다.

"이건 안 된다고 했잖니."

아이들은 그를 때마다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숟가락을 들고 달려들면 엄마는 상을 얼른 치워 버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따라 막내가 유난히 남은 밥에 집착한 나머지 상다리를 붙잡고 매달렸고 비둥대는 막내 때문에 밥상이 흔들렸습니다.

"어... 어..."

그 순간 기우뚱 기울어진 상에서 어머니의 밥그릇이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밥그릇에서는 허연 것 하나가 툭 튕겨져 나왔습니다.

나는 그날의 그 풍경을 4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막내가 그걸 쥐고 말했습니다.

"이게 뭐야?"

어머니가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우리는 그제서야 어머니가 우리에게 남은 밥을 주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엎어진 밥그릇에서 튕겨져 나온 것은 남은 밥이 아니라 큼직한 무토막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같이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엄마...."

"얘들아, 흑흑흑...."

밥그릇에 쏙 들어가게 모양을 내 깎은 그 무토막 위에는 밥알이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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