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어머니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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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11-13 ㅣ No.5529

 

스물 하나.

당신은 굽이굽이 험한 고개를 열두 개나 넘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김씨 집안 맏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던 겨울날.

시집 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고

그제서야 당신은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자식이 급체를 했습니다.

당신은 그 불덩이를 업고 읍내병원까지 밤길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냥 기다리며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돌아오는 자식에게 따뜻하게 입혀 주었습니다.

 

쉰 둘.

시리게 파란 하늘 아래 빠알간 고추를 말리던 가을날,

자식이 결혼할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짙은 분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그저 좋다고 하셨습니다.

 

예순.

집배원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갔습니다.

환갑이라고 자식들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들 보약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바빠서 오지 못한다는 자식들의 전화에는,

애써 서운한 기색을 감추시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예순 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고 명절에 못 온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면서,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들이 왔다가 바빠서 아침 일찍 다시 돌아갔다고.....

그날 밤, 당신은 방안에 혼자 앉아서 자식들 사진을 꺼내 보십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 되기만을 꿈에도 바라며 평생을 살고,

이제 성성한 백발에 골 깊은 주름으로 남은 당신.

우리는 그런 당신을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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