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24주일(다해) 루카 15,1-10(32); ’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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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8-27 ㅣ No.5140

연중 제24주일(다해) 루카 15,1-10(32); ’22/09/11

 

 

 

 

 

 

 

 

언젠가 예비신자분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 중 한 분이 성지순례를 가서 한국 초기교회순교선조들의 이야기들을 듣고 와서는 자기는 천주교 세례를 받지 못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순교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순교를 하겠다 안 하겠다의 여부를 말하기 이전에 지금 이 시대에는 천주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박해를 가하지는 않는데도 그 분은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는 참 아쉬웠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어떤 의미에서 그분은 신앙을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 시대는 반상의 신분차이가 엄격히 존재하고 남존여비가 심각하게 남녀평등을 저해하고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한국 천주교 초기 교회 신자들은 주 하느님 앞에 모두 동등한 한 형제자매임을 선언했기에 조선시대의 패륜아요 사회부적응자요 파괴논자로 비춰졌고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예비신자분은 여타 예비신자분들이 그렇듯이 세례받기 위한 과정을 다 마쳤으니 세례를 받아도 되었을 텐데 굳이 선택하지 못했습니다. 유혹에 빠진 것은 틀림이 없지만, 나름 진지하게 신앙을 고민했구나 하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지요.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사는 것이니만큼, 신앙도 주님께서 이끌어주시기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겠지요.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종교 박람회라는 책에 보면 새례받은 새 신자와 그 친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한 분이 교리를 받고 신자가 되자, 친구가 와서 축하해 주며 물었답니다.

, 축하한다. 너 십이 기도문 다 외웠니?”

아니, 다 못 외웠어.”

그럼 사도신경은?”

보고는 해도 외우지는 못해.”

그럼, 묵주기도도 못하겠네?”

, 그도 잘 못해.”

그럼 너 어떻게 세례받았어?”

, 난 기도문은 다 못 외우지만, 세례받기 전에는 사업에 실패해서 매일 집에 술 먹고 늦게 들어가 마누라하고 싸움도 많이 했는데…… 세례받고 나서는 술도 끊고 집에도 일찍 들어가 가족들과 사이도 좋아져 화목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빚도 청산하고 그 전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업도 조그맣게나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

 

우리가 세례를 받는 의미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면서까지 우리를 살려주시려 하셨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새 생명을 선택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의 가치관과 처세술을 포기하고, 주 예수님께서 일러주시고 보여주시는 새로운 가치관과 그리스도교 생활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얻고자 노력하는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행복을 넘어, 인간을 위한 희생을 통해 부활이라는 새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신 주 예수님의 영원한 행복인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초대하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과 방법을 우리가 믿고,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 길을 걸어가서 구원되고 싶으며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에 따른 새로운 삶의 처세술인 희생적인 사랑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믿고 선택하고 다짐하는 새로운 생명의 길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께서 몸소 사시고 우리에게 따라 오도록 초대하신, 믿고 바라며 사랑하는 신망애의 길입니다.

 

201695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렸던 칼쿠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시성식에서, 교황님은 한평생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하신 수녀님의 생애를 소개하셨습니다.

역사의 주인공들은 항상 두 부류입니다. 한편은 하느님, 다른 한편은 인간들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하느님의 소명과 뜻을 알아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질문해야 합니다. 내 인생에 하느님의 뜻은 무엇인가? <중략>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모든 자비의 행위들입니다. 우리가 도와주는 형제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볼 수 없는 하느님의 얼굴을 인식합니다(요한 1,18 참조). 우리가 형제들의 필요성에 응답할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드리게 되며, 하느님 아드님께 옷 입혀드리고 방문해드렸으며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마태 25,40 참조).

 

우리는 우리가 기도할 때 부르짖고 신앙을 고백한 것을 구체적으로 행동하도록 불렸습니다.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형제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은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1 요한 3,16-18; 야고 2,14-18 참조).

 

예수님을 추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동시에 기쁨 가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다가오셔서 필요한 순간에 허리를 굽히셨던 것과 같이 나도 그분께 다가가 신앙을 잃었거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 그 어떤 가치나 이상도 없이 사는 젊은이들, 위기에 처한 가정, 아픈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이고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과 정신에 있어서 약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과 버려진 아이들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도 돌보아야 합니다. 도움을 요구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희망을 주고 위로하는 교회가 현존해야 하고 여러분이 현존해야 합니다.

 

마더 데레사가 수행했던 도시 주변과 인생의 주변에서 사명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명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을 계속해서 증거하는 일입니다…… 우리 행동의 유일한 기준은 조건 없는 사랑임을, 그 사랑은 그 어떤 이념과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임을 보다 더 잘 깨닫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벅학자들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비난하자,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 라고 답하십니다.

 

오늘 주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우리 자신을 되돌아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가?’

지금 여기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 우리의 신앙 고백을 되새기며, 주님 사랑 안에서 새로 나기로 합시다.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부모님과 형제 자매들 그리고 신앙 안에서 맺어진 형제 자매들과 세상 곳곳에서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며 애타하는 사람들, 우리가 도와주도록 우리 눈에 띄도록 우리에게 보내주신 가난하고 어렵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응답합시다.

 

민속 명절인 추석을 맞으며 그간 무심했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며, 부모 형제 일가친척들, 우리가 돌봐왔던 사람들, 외면하고 지나쳐온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안부를 전하고 다가가 사랑을 나누며 회개의 새로운 길을 다시 시작하기로 합시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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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일 꽃꽂이

https://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0&id=187857&Page=1&menu=frpeterspds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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