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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4주간 토요일 ‘22/09/17 미사의 영성 10 성변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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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09-07 ㅣ No.5146

연중 제24주간 토요일 ‘22/09/17

미사의 영성 10 성변화4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말씀 주님의 만찬(1코린 11,23-26)

11 23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6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눔

사도 바오로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다시 신자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그런데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죽으심을 전하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예를 행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주교님께서 새로 사제로 서품되는 후보자들에게 교회 공동체에 나아가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말씀을, 세상에서 복음을 선포하도록 불림받은 우리 평신도들에게 맞추어 다음과 같이 재편집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승이신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가르치는 직무를 책임지고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이에게 전하십시오. 하느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며 읽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며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의 교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고, 여러분의 성실한 생활은 여러분과 함께 세상에 사는 인류의 동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말과 모범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성화의 임무도 수행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께 속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결정하고 행동함으로써 교회의 제사가 그리스도의 제사와 결합되어 완성될 것입니다. 사제가 성전의 제단에서 미사를 거행하듯이, 여러분이 여러분의 제단인 가정과 이웃, 사회, 특별히 직장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사제와 함께 피흐름 없이 봉헌하는 그리스도의 제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평신도 사도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 즉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이루어야 하는 일을 명확히 깨닫고 그 내용을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거행하는 것이므로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성세성사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름으로 죄를 사해 받고, 환자 방문을 통해 병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십시오. 또한 여러 가지 거룩한 예식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하여 매일 여러 차례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사제와 성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이들과 함께 봉헌하며 여러분 자신이 사람을 위하여 사람 중에서 선발되어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임명되어 세상에 파견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참된 사랑과 변함없는 기쁨으로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이익을 찾지 말고 예수님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머리이시요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십시오. 교회의 주교와 주교를 대리하여 여러분에게 파견된 사제와 결합하여, 그 지도에 따라 한 가족으로 일치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 아버지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교회 내외에서 봉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하러 오셨고, 길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착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언제나 모범으로 삼기 바랍니다."(사제서품예식 중에 사제서품자들에게 하는 주교님의 훈시 재편집)

 

이상의 말씀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어떤 의미로 종합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여러분이 기꺼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을 모든 이에게 전하십시오. 하느님의 법을 깊이 묵상하며 읽는 것을 믿고, 믿는 것을 가르치며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십시오.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의 교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양식이 되고, 여러분의 성실한 생활은 여러분과 함께 세상에 사는 인류의 동료들에게 기쁨이 되도록, 말과 모범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주님의 말씀을 정확히 알아듣고, 그 말씀을 말과 모범으로 실천해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가르침의 모범적인 모습을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들의 공동생활' 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리고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3-47)

 

또한 사도 야고보는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4-17) 그리스도교 신앙을 단순히 신비체험이나 사회 발전에 따르는 병폐를 이완시키기 위한 심리적인 안정제 정도로 격하시켜서는 안 됩니다.

 

또한 단순히 그리스도교 교회 내의 종교적인 모임과 회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 모임을 통해 성경연구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보다 자신이 연구한 성경의 말씀을 실제로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실행하기 위해 연구하는 것이지 아는 것으로 그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모임과 회합의 방향을 과감히 세상 안으로, 그것도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고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놓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그 연구한 방법을 실천하는 쪽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평생 연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완전히 알 수 있겠습니까? 아니 어느 정도 알 때가, 언제, 그리고 그 어느 정도란 말이 실제로 어느 정도 하면 되었다고 스스로 만족하여 활동할 수 있겠습니까? "믿기 위해 알고, 알기 위해 믿는다."는 성인의 말을 오늘 이 시대에 이렇게 되풀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알기 위해서 활동하고, 활동하기 위해 압니다.'

 

우리의 참된 신앙의 모습은 이웃을 향한, 그것도 버림받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헌신적인 봉사와 희생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기억하여 우리가 행할 예입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성찰

주님을 기억하여 무엇을 어떻게 하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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