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내가 사랑한 시인] 이해인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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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섭 [jayhan] 쪽지 캡슐

2003-06-06 ㅣ No.3990

 

1964년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한 후 필리핀의

성 루이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시 집

민들레의 영토 ,

시간의 얼굴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내 혼에 불을 놓아,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시 선 집

사계절의 기도 , 다시 바다에서 , 고운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산 문 집

두레박 , 꽃삽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옮 긴 책

따뜻한 손길 ,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동 시 집

엄마와 분꽃

 

수 상 경 력

제 9회 새싹문학상 , 제 2회 여성동아대상 , 제 6회 여성문학상

 

 * 이해인님의 프로필에 관하여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신분은 이해인님의 홈페이지를 이용하세요. ^^*

 

 

꽃 멀 미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면 말에 취해서 멀미가 나고,

꽃들을 너무 많이 대하면 향기에 취해서 멀미가 나지.

살아 있는 것은 아픈 것, 아름다운 것은 어지러운 것.

너무 많아도 싫지 않은 꽃을 보면서 나는 더욱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하지.

사람들에게도 꽃처럼 향기가 있다는 걸 새롭게 배우기 시작하지.

 

 

 

아름다운 순간들

 

마주한 친구의 얼굴 사이로,

빛나는 노을 사이로, 해 뜨는 아침 사이로..

바람은 우리들 세계의 공간이란 공간은 모두 메꾸며

빈자리에서 빈자리로 날아다닌다. 때로는 나뭇가지를 잡아흔들며, 때로는 텅빈 운동장을 돌며,

바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이 아름다운 바람을 볼 수 있으려면

오히려 눈을 감아야 함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다.

 

 

 

아무래도 나는

 

누구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결국은 이렇듯 나 자신만을 챙겼음을

다시 알았을 때 나는 참 외롭다.

많은 이유로 아프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 곁을

몸으로 뿐 아니라 마음으로 비켜가는

나 자신을 다시 발견했을 때,

나는 참 부끄럽다.

 

 

 

황홀한 고백

 

사랑한다는 말은 가시덤불 속에 핀

하얀 찔레꽃의 한숨 같은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한자락 바람에도 문득 흔들리는 나뭇가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무수한 별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거대한 밤 하늘이다

어둠 속에서도 훤히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한 마디의 말

얼마나 놀랍고도 황홀한 고백인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바다새

 

이 땅의 어느 곳

누구에게도 마음 붙일 수 없어

바다로 온 거야

 

너무 많은 것 보고 싶지 않아

듣고 싶지 않아

예까지 온 거야

 

너무 많은 말들을

하고 싶지 않아

혼자서 온 거야

 

아 어떻게 설명할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이 작은 가슴의 불길

 

물 위에 앉아

조용히 식히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미역처럼 싱싱한 슬픔

파도에 씻으며 살고 싶어

바다로 온 거야

 

 

 

해바라기 연가

 

내 생애가 한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여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이 뽑은 고운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은 까만 꽃씨

당신께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여..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지지 않고

섬겨살기 원이옵니다.

 

 

 

고독을 위한 의자

 

홀로 있는 시간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호수가 된다.

바쁘다고 밀쳐두었던 나 속의 나를

조용히 들여다볼 수 있으므로,

여럿 속에 있을 땐

미처 되새기지 못했던

삶의 깊이와 무게를

고독 속에 헤아려볼 수 있으므로

내가 해야 할 일

안 해야 할 일 분별하며

내밀한 양심의 소리에

더 깊이 귀기울일 수 있으므로,

그래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내가 나를 돌보는 시간

여럿 속의 삶을

더 잘 살아내가 위해

고독 속에

나를 길들이는 시간이다.

 

 

가을 편지

 

늦가을, 산 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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