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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6.10 아름다운 쉼터(공짜 초코바 얻는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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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6-10 ㅣ No.422

공짜 초코바 얻은 날(정수리, ‘좋은생각’ 중에서)

20대 초반 당뇨에 걸렸다. 어느 날 음식을 제대로 못 챙겨 먹은 상태에서 주사를 양껏 맞고 버스를 탔다. 하교 시간이라 버스는 중학생으로 만원이었다. 어쩌면 그리 큰 목소리로 떠드는지... 남편과 맨 앞 좌석에 앉아 미간을 찌푸리는데 갑자기 당뇨 쇼크가 찾아왔다.

등이 뜨거워지고 누군가 물뿌리개로 물 주는 것처럼 식은땀이 쏟아졌다. 턱이 굳고 말이 어눌해지다 아예 안 나왔다. 대뇌의 작동이 멈춘 듯 이름도 전화번호도 기억하기 어려우면 매우 급하다는 뜻이다. 이럴 땐 빨리 단 것을 입에 넣어 줘야 한다.

비상시를 대비해 핸드백에 넣어 둔 초콜릿을 찾았다. 그런데 아뿔싸! 아들 녀석이 홀라당 꺼내 먹고 껍질만 다시 쑤셔 넣었다. 나에겐 약이지만 아들 녀석 눈에는 엄마가 잘 안 사 주는 초코바였으니 야단칠 수도 없고, 확인 안 한 채 외출한 나의 불찰이었다. 남편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기 호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졌다.

일분일초가 위태로운 상황, 갑자기 남편이 버스 중앙에 서서 외쳤다. “학생들, 아내가 당뇨 쇼크에 빠졌는데 누구 단 음식 있어요?” 시장 바닥 같던 버스가 물을 끼얹은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여기요!” “제 것 드세요.” “이거 한 봉지 다 드릴게요.” 초코바, 캔디, 마시멜로 등 단 음식이 허공에 가득 떴다.

남편은 가장 가까운 학생의 초코바를 받아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입에 넣고 삼킨 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시끄럽던, 철없어 보이던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모두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버스는 누군가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무거운 침묵에 싸였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눌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 하면 공짜 초코바를 얻어먹을 수 있는지 보여 드린 것입니다.”

나는 찡긋 윙크하며 말했고, 아이들은 와하하 폭소를 터트리며 박수 쳤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때까지 아이들의 박수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멀리 사라지는 버스 뒤 창문에 닥지닥지 매달린 아이들이 끝없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날을 공짜 초코바를 얻은 날이 아니라 공짜 사랑을 엄청 받은 날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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