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왜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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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5-05-06 ㅣ No.3420

어제 5월 5일 어린이날은 이곳 저곳에서 행사가 있어 쫓아다니기가 바쁜 하루였다.

청솔우성 아파트에서는 어린이 포돌이 행사. 그 옆에 전농 SK아파트에서는 어린이 그림그리기 대회와 백일장대회가 있었고 서울시청과 광화문 주위에서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 등 내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 무시할 일들이 아니었다.

특히 SK아파트에서 있은 어린이 그림그리기와 백일장에는 글 제목과 심사까지 맡아야 했으니... 그러나 몸이 바쁘긴 했지만 아이들의 그림과 글을 보면서 오랫만에 동심에 젖을 수 있었기에 무척 행복한 하루였던 것 같다.

5월이 '가정의 달'이기에 "가족"이라는 제목과 "친구" 그리고 현안문제로 떠오른 "독도" 를 고학년의 글제로 주었는데 의외로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와서 흐뭇했다.

특히 3학년 이하 저학년부의 대상으로 뽑힌 3학년 여자아이의 "가족"이란 글이 내 심금을 울렸다.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가족은 모두 여섯 명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고모와 나. 그러나 지금은 가족이 다섯명입니다.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엄마가 왜 미국에 갔는지 잘 모릅니다. 나는 3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우셨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 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술냄새가 매우 싫습니다. 코 고는 소리가 매우 큽니다. 그 소리도 싫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내가 해달라고 하면 뭐든지 잘해주니까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고모입니다. 고모는 우리집 잔소리 대장입니다. 특히 나한테는 잔소리 왕대장입니다. 찜질방에 데려가도, 버스를 함께 타도 잔소리. 나는 고모가 빨리 시집을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32살입니다. 고모가 쌍거풀 진 남자(느끼하니까) 하고만 아니면 결혼을 했으면 좋은데 고모가 시집을 가면 나한테 잔소리를 못하면 어쩌나 그게 걱정입니다. 할머니 혼자 살림을 하시면 그것도 걱정입니다.(중략)

가족이란 서로 잔소리를 하는 사이 같아요. 고모가 나한테 잔소리 하고 나는 아버지한테 잔소리 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고모한테 잔소리 하고 그렇지만 나는 고모가 쌍거풀 진 눈 남자가 아니면 빨리 시집을 가면 좋겠다 생각합니다. 오늘은 고모가 수영장을 가서 혼자 글짓기 나왔는데 잡에 가면 고모가 또 잔소리를 할 겁니다. 그때는 나도 고모한테 빨리 시집 가라고 잔소리를 해야지요. 끝.

 

3학년 아이가 쓴 글이어서 글씨도 비툴비툴, 쌍거풀을 '쌍가풀'이라 한다든지 싫습니다를 '실습니다'라고 한다든가 군데 군데 맞춤법이 틀리고 띄어쓰기가 잘못 된 부분이 있었지만 원고지 쓰는 법을 대충 알았고 그것보다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 )안에 느끼하니까 라는 재치까지 있어서 대상작으로 뽑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 작품도 아이들의 순진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았다.

 

심사를 끝내고 돌아오면서 갑자기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을 왜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에게 어린아이 같이 되라고 하셨을까? 왜???????????

 

어린아이는 누구나 하얀 도화지 같다. 아무 것도 그려지지 않은 순백의 도화지 같다.

무엇인지 그릴 수 있고 또한 아무 색이나 색칠할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을 가진 텅빈 순백의 도화지 같다.

어린아이들의 그 순진무구함을 배우라는 말씀이셨을까?

그 때묻지 않은 아이들 심성을 닮으라는 말씀이셨을까?

 

어린아이는 단순하다. 이런 저런 세상 일을 모르니까 아이들은 단순할 수 밖에 없다.

그 단순함을 닮으라는 말씀일까? 배우라는 말씀일까?

 

나는 대상을 받은 아의의 엄마가 왜 미국을 갔는지 모른다. 그러나 할머니가 3살 때부터 아이를 키웠고,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고모가 그 아이에게 잔소리를 자주 하고 모든 정황을 종합해보면 그 아이의 엄마가 단순히 공부를 하러 미국으로 갔거나 돈을 벌러 간 것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런데도 아이는 글에 전혀 꾸김살이 보이지 않았다.

두번이나 '엄마가 왜 미국에 갔는지 나는 모른다' 라는 글귀가 있는 것이 마음 쓰이기는 했지만 그 아이는 매우 밝은 모습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나는 왜 그 아이의 엄마가 미국에 간 것을 그런 식으로 재단을 할까?

이런 것이 어른과 아이들의 차이가 아닐까?

세상 떼에 물들고 죄에 물들고.......그래서 남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하얗게, 마치 순백의 도화지처럼 나를 하얗게 빨아야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회개하고 또 회개하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또 두드리고

쥐어 짜기도 하고 다시 또 씻어서 햇볕에 바래기도 하고.........

오직 하얗게 하얗게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또한 아이들처럼 단순하게

거의 맹목적으로 주님을 믿고 그 말씀을 따라 바르게 살아야 하늘나라에 갈 텐데....

 

어쨌던 어린아이들 속에서 동심에 젖어 본 64세의 어린이날 나는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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