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하늘을 우러른 여인 (수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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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annasee] 쪽지 캡슐

2001-10-05 ㅣ No.2924

6.25때 일명 쎅쎄기라 불리운 폭격기를 보고 어떤 이들이 그 쎅쎄기가 비행기 (바깥쪽) 앞에 사람을 실어 나는 것을 봤다고 어느 신부님께 주장을 하더랍니다. 그래 그 신부님께서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반문하셨지만 그들이 ’봤다’고 주장하는 데는 그 신부님도 속수무책이셨더라는  지금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리는 옛날 얘기와 함께 수산나 강론을 시작해 주셨습니다.

 

사실의 진위여부가 "봤다"라고 목청 높이는 이들의 주장쪽으로 기울어 굳혀지고, 무고한 사람이 쓰러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없나 봅니다

 

수산나도 그녀에게 평소 음욕을 품고있던 존경 받고 있던(재판관으로 뽑힌걸 보면) 두 노인에 의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위기를 다니엘에 의해 구원받는 다는 얘기랍니다.

 

바빌론에 사는 유대인들 이야기입니다.  다니엘 13장을 보면 수산나의 집이 법정으로 사용된 것으로 나오는 데 이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그들끼리 모여 살며 자치법으로 다스린 것을 알 수 있다 하셨습니다.  바빌론인 이라면 법정이 따로 있었겠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던 거죠. 바빌론에서 그야말로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고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위의 그 두 노인은 그 해의 재판관으로 임명 받은 것을 보면 겉보기엔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 이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오에 항상 산책을 하는  수산나를 매일 눈여겨 보다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흑심을 품게되지요(다니 13,7-8).  매일 눈여겨 보다가... 이렇듯 죄란 우연 발생적으로 그날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셨습니다. 의식/ 무의식적으로, 특히 무의식적으로 준비되어 오는 것이라셨서요.  그래서 죄를 묵상/성찰한다는 것은 죄의 드러난 결과를 반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의 뿌리를 들여다 보라는 것이라구요.그 뿌리는 한참 전이든가 엉뚱한 곳에 원인이 있다 하셨습니다. 마치 명상을 하고 앉아 여여히 자신을 들여다 보면 현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생각들, 갈등 등은 일어났다 사라지는 많은 이파리들이고 그 이파리를 계속 응시하고 있을 때

그 뿌리가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합니다. 그 뿌리를 뒤집어 뽑아 버리는 것이 죄를 진정으로 성찰하는 것인가 봅니다..

 

그들은 어느날 점심때가 되어 각자 집으로 가자며 헤어져 갔다가 다시 돌아오다가(수산나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마주칩니다.  얼마나 쑥쓰러웠을 법도 한데 그들은 수산나에게 품은 마음을 서로 솔직히 고백하고 함께 죄를 짓기로 합니다.  여기서 죄는 동지를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겐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하면 그 양심이 아프지만 동지가 있으면 양심이 무디어져 덜 아프게 된다구요.마치 남자들이 혼자는 다 신사인데 군복입혀 놓그면 달라지듯이.  집단 속에서 저지르면 양심의 가책이 덜해지는 거나 마찬가지로.  동네에서도 안 좋은 일을 하려면 동지를 찾게 되는 데, 죄는 이처럼 사람을 부르며 감염시킨다셨습니다.  나쁜 일을 같이 하며 끈끈해진 동지와는  결속력이 강해지다네요.

 

그들이 수산나에게 품은 음욕이 재판을 하는 순간까지도 끝나지 않을 것을 볼 수 있습니다(다니 13,32). 수산나를 겁주려다 안되니까 재판을 하게 되는데 자기들은 한 번 느끼는 정욕이 만족되지 않았다고 한 여인의 목숨을 희생시키려는 파렴치한 행위를 저지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데 다른 이의 목숨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지요.

 

이렇듯 죄는 급속히 성장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성인들이 죄의 드러난 결과보다 죄의 뿌리를 뽑으라고 조언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성령을 받은 다니엘이 나타나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은 수산나를 다시 두 노인을 심문하여 사실을 밝혀내고 그녀를 구해냅니다.  그 일로 다니엘은 유명해지지요.(다니13,64).

 

여기 수산나의 남편 요아킴 너무 늦게 등장합니다. 수산나의 부모, 자녀, 먼 친척들은 재판장에 수산나가 끌려 나올 때 그자리에 있어주었지만(13,30) 어찌된 일인지 요아킴은 부재중입니다. 사건이 다 해결된 후에야 등장합니다(13,63). 남성의 심리를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끼리 얘긴데 여자들은 자신이 아팠을 때  남편의 부재를 실감하곤한답니다. 하루 이틀은 존재하지요,  그러나 일주일 이상이 되 간다… 그러면 얘기가 또 달라진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성 분들도 많겠지요만은…

 

우리의 주인공 수산나는 갑자기 벌어지는 모함이 자신을 덮치자 하느님 앞에 옳은 것으로 답을 찾으려는 지혜를 보여줍니다;  "내가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깨끗한 몸으로 이자들의 모략에 걸려드는 편이 낫겠구나(13,23)".  문제의 해결책/답은 시대상황에 옳은 것이 아니라 하셨습니다.  상황상황을 모면해 가는 것은 옳은 답이 될 수 없다구요. 상황대처를 하게 되면 그것에 휘둘리게 되고 만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 옳은 것으로 답을 찾는 것이 그 당시에는 어려움이 찾아 올지 모르지만 종국에는 그 길이 바른 해결책이 된다구요. 우리가 성체조배를 하고 기도를 드리는 것도 하느님 앞에서 답을 찾으려는 것이고 그 답을 선택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그녀는 협박에 굴복하지도 않았고, 누구를 찾아가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그분과 대화한거지요; "수산나는 하느님을 믿고 눈물어린 두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13,35).  13,42-43을 보면 그녀는 하느님께서 이 모든 일들 다 알고 계시리라 신뢰를 하고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 하느님께서는 수산나의 소리를 듣고 다니엘을 시켜 수산나를 구해주시지요.  그녀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그 일을 벌인 사람과 싸우려 하지 않고 하느님을 찾은 거지요.  

 

우리도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대처했는지 살펴 보라셨습니다.

수산나를 통해 우리가 다음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셨습니다.

첫째, 작은 죄의 시작을 경계하자; 죄는 성장, 야합, 확산하기에

둘째, 억울한 일을 풀어 주실 분은 하느님. 사람들과 풀려 하면 더 안 풀림

셋째, 하느님께서 수산나의 절규를 들어주심; (그런데) 내 절규는 안 들어 주시나? (싶으면) 내 억울함을 해소할 방법으로 다른 사람과 야합하지 않았는지? 어떤 때 그 절규를 들어주시는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기만 하여라 하고 우리 조상님들이 기원하셨다는데 그렇듯 넉넉한 추석 보내셨습니까?

 

다음주 10월 11일은 성서의 여인 특강이 있습니다. 많이들 신청해 주셨습니다. 아직 못하신 분들은 마감이 10월 7일 이니 서둘러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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