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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지도 않은' 의협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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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한 [jelka] 쪽지 캡슐

2006-01-16 ㅣ No.1187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벌써 몇 달째 본당 주일미사에는 나오지 않는 한 형제의 얼굴이

오늘 평일미사에 보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주회가 있는 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바쁜 세상사 가운데 더욱이 평일임에도 교회 신심단체 활동을 하려고 성당에 나온

그 형제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그리 편하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른 곳에서 주일미사 참례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하느님 공경뿐 아니라 본당 공동체의 영적 일치와 나눔의 장이기도 한 본당 주일미사 참례는

하찮게 여기는 듯 하면서, 레지오 주회에는 너무나도(?) 성실한 그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선'으로 승화시켜 해석하며 온전한 평화를 사는데

아직도 서툴기만 한 제 마음이 순간 흐트러짐을 느꼈습니다.

경건함과 동시에 기쁨이 충만한 미사성제를 봉헌하려함에 쓸데없는 상상과 판단, 미움이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성체를 축성하며 이 모든 분심을 종식시켜줄 지난날 체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몇 해 전, 공소미사를 갔을 때 일입니다.

 

편도 1차선 시골길을 따라 운전을 하고 있는데, 앞 차에서 계속 휴지를 창 밖으로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편리함을 위해 깨끗한 자연을 더럽히는 그 행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되지도 않은' 의협심에 그 때마다 경적을 울리다가, 결국은 중앙선을 넘어 그 차를 추월하며

운전자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마치 나 자신이 세상의 파수꾼이나 되는 듯이….

 운전자는 50대 중반의 평범한 아저씨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를 추월해 다시 주행차선으로 들어서면서 저는 때늦은 후회를 해야만 했습니다.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선 침범에 앞지르기 위반!

 그날 공소에서 강론은 3만원짜리 아주 싱싱한 체험강론이 됐습니다.

그날 복음이 바로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루카 6,37)

였기 때문입니다.

 3만원짜리 범칙금의 효력이 약해졌는지 오늘 또 남을 판단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더욱 더 눈과 귀를 정화시켜야겠습니다. 가능한 대로 맑고 아름다운 것만을 보고,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심판과 단죄는 하느님께 유보시키고,

저는 다만 그분의 마음을 닮아 사는 데만 마음을 모아야겠습니다.

 

                                                       

서웅범 신부(제주교구 동광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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