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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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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7-06 ㅣ No.4793

< 김씨 이야기 >

 

 

                    서 정 홍

 

 

어젯밤에

파란 대문집 지하 골방에 새들어 사는

김씨 아저씨가 죽었습니다.

전세 오십만원 월세 칠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중학교와 국민학교 다니는

아들딸과 함께

방안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죽었습니다

 

 

서울가서 돈 많이 벌어온다던 여편네는

벌써 삼년 째 소식없고

낡디 낡은 손수레 끌며

남새장사 과일장사 궂은일 험한일 가리지 않고

시장바닥 헤매던 김씨 아저씨

자식새끼만큼은 고등학교 졸업시켜

큰 회사라도 취직시켜 주고 죽어야

애비된 도리 다 한다며 버릇삼아 얘기하던

시름겨운 김씨 아저씨의 지친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리는 듯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사람들은

몇 년 전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

부둥켜 안고 울던 그 눈물보다

더 크고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낡은 옷장 위에 놓인 하얀 봉투를

떨리는 손으로 펼칩니다

 

 

"열심히 살려고 무척이나 애썼습니다

 집주인이 지하 골방을 수리한다며

 비워 달라기에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못난 이 애비는

 보름째 장사도 못한 채

 방을 구하러 다녔으나

 우리 세 식구 반겨 줄 방은 없었습니다

 오를 대로 오른 방세를 생각하니

 이제 자식 공부시킬 걱정보다는

 하루 벌어 방세 낼 걱정이 앞섭니다

 자식새끼에게 지긋지긋한 이 가난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잊고 자식새끼와 함께 떠납니다

 뒷날 서울 간 애들 에미가 돌아오면.........."

 

 

더 이상 우리는

이 글을 읽지도 듣지도 못하고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억순이네도 김천댁도

이발소 박씨도 이렇게 환한 대낮에

부끄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김씨는 가까운 우리 이웃입니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저렇게 자식까지 고생시킨다며

우스갯 소리로 떠벌린 말들이

김씨를 죽였는지 모릅니다

라면을 즐겨 먹는 김씨네 애들에게

라면회사와 자매결연 맺었느냐며

농담삼아 지껄인 말들이

그이들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아!

오늘 밤엔 우리 모두 함께 죽어야 합니다

자신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가까운 이웃 돌보지 못한

사람답지 못한 양심들이

함께 죽어야 합니다

 

 

살아오는 동안

남에게 거짓말 한 번 하지 못하고

일어설 힘만 있으면

게으름 피우지 않고 살아왔다는

김씨의 장례식날

구멍가게 꼬부랑 할머니는

조금 더 꿋꿋하게 살지 못하고

죄없는 애들까지 죽인 못난 애비라고 구시렁거리고

파란 대문집 주인은

친목계에서 진해 벚꽃놀이 간다고

자가용을 타고 미끄러지듯 사라지고

가난뱅이 이웃들이 상주가 되어

" 어~흥 어~흥 어기여차  어~흥

  이제가면 언제 오나...."

 

 

 

다시는

이제 두 번 다시는

가난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될 그런 곳으로

자식새끼 손잡고

훨훨 먼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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