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사랑, 그 맹독에 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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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VeNiVeDiVeCi] 쪽지 캡슐

1999-04-27 ㅣ No.466

환경의 변화는 나에게 자극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나'라는 생물체가 지닌 자극 감수성은 때로는 예민하게, 때로는 둔하게 나를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곤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적합 자극들을 접하고도 나의 수용기는 대부분 실무율을 지켜왔다. 이제까지의 자극들이 역치를 이겨내지 못했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수용체와 감각 기관들이 어느 정도의 그들의 역할을 감당해내야 할, 아니 그것을 훨씬 초과하는 치명적인 자극이 내 삶에 찾아왔다. 그 자극을 가장 먼저 감지했던 기관은 시각기, 눈이라는 놈이었다. 수정체는 그 상을 적절한 각도로 굴절시켜 망막의 시세포에 정확한 정보들을 보내주었다. 시신경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 자극은 나의 뉴런들을 120m/sec의 속도로 흔들어놓았고, 너무나 작고 귀여운 나의 뉴런들은 탈분극과 재분극을 위해 열심히 나트륨을 펌프질 해댔다. 물론 ATP의 에너지 원조가 컸다. 흥분의 전달은 눈 깜짝할 새 보다 빨리 이루어졌고, 대뇌의 감각령과 연합령들이 민첩하게 교통하기 시작했다. 좌반구의 전두엽에서 EEG활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자극에 대한 정보를 감각이 정서에게 넘기는 절차였다. 복잡한 정보들을 처리하느라 교감 신경계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드레날린이 동공을 크게, 심장 박동을 빨리, 침을 마르게 하느라 전신을 활보하며 다녔다. 그러나...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일이 끝났고, 그 꼬리도 보이지 않았다. 물린 자국에 입을 갖다대고 열심히 그 독을 빨아내려 했지만... 대체 너는... 맹독(猛毒)의 독사 이빨 자국보다도 더 독한 향기를 내 마음 깊숙이 부어놓고 간 너는 지금 어느 깊은 산 속에서 온몸의 힘을 풀고 태연히 잠들어 있을까... 그 꼬리를 입에 물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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