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성당 게시판

왜 글들을 안올리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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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아 [castle] 쪽지 캡슐

1998-12-28 ㅣ No.28

안녕들 하시죠?? 항상 게시판에 글을 올리자고 외치고 다니는 콘솔시아입니다.

저의 열혈권유로 모모엘라(모모주영이라고도 하죠...)와 모로로니오(모모기재라고도...)가 글을 올렸습니다. 드디어!!! 하하....(기재야....내 얘기 듣고 글올린 거 맞니??)

 

밑에 글들을 읽어보니....소쿠리 돌려달라는 얘기서 부터...(참, 양 신부님 알람시계 돌려주셨나여?? 왜 그러세요...제가 돈 많이 벌면 꼭 시계 사드릴께요.....) 딴 본당 분들이 주로 이 게시판을 이용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본당분들을 만나는 것두 좋지만, 이 게시판을 통해서 저희 본당분들이랑 많이 만나뵙고 싶은데 올때마다 썰~~~렁하네요....글의 조회수를 보면 아무도 안 오는 것 같지도 않은데....왜 글들을 안 올리실까요?? 쯔압.....

그럼 제가 솔선수범 해서 열심히 올리겠습니다.....보시는 분들...읽고만 가지 마시고 글 좀 올려주세요....게시판에서 님들의 글을 읽고 성당 가서...아...저 분이 그분이구나...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그럼 성당에서 뵐 때 서먹한 느낌도 훨씬 덜 할거구.......흠...강요는 아닙니다... 그냥... 강권입니다....크크크....

 

오늘은 제가 예전에(약 8개월쯤 전) 하이텔에 올린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나를 감동시킨 사람들(1)###

 

삶의 길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 인해 나의

 

삶은 좋게든 나쁘게든 영향을 받아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좋은 분들을

 

더 많이 만났고, 그로 인해 나의 삶은 더 풍요로와 졌습니다. 이제 세례를

 

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보니 문득 그런 분들의 은혜가 더욱 고마와졌고

 

그래서 한번쯤 나를 감동시키고 내 삶의 올바른 기준이 되어주신 그 분들을

 

돌아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

 

작년 5월30일, 나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구순의 연세이셨기에 장

 

례를 치르는 내내 사람들은 '호상'이란 말을 하였지만, 나는 그 말을 받아들

 

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내겐 아직 할머니가 필요한데, 해 드리고 싶은 많은

 

것들이 있고, 배우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왜 일반적인 사람들의 잣대로

 

구십년이란 기간을 '충분히 오래 산' 기간이라고 받아들이는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그

 

분의 소임을 다했기에 하느님께서 불러가신 것이라고...이 세상에 존재하시

 

지는 않으시지만, 그 분의 삶을 돌이켜 봄으로써 내게  많은 깨달음과 사랑

 

을 주고계신 할머니를 나는 아직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1. '스님이 곧 부처님 아니십니까?'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셨습니다. 늘 절에서 사셨고, 길을 가다가 스님

 

들만 봐도 공손히 합장을 하시던 분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리 배움이 많

 

지는 않으셨던 분이라 불교의 어려운 교리를 얼마나 아셨는지는 의문스럽지

 

만, 어느 불교학자보다 더 그 분의 삶은 불교의 교리를 따라 사신 분이셨습

 

니다.  거지가 찾아오면 가난한 살림에도 배불리 먹이셨고, 자식들이 새 옷

 

가지라도 사드리면(할머니는 절대 자신의 옷을 사지 않으셨기 때문에 늘 매

 

우 낡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동네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기 일쑤

 

였습니다.  자식들(그러니까, 저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에게 무언가 주기 위

 

해 가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에 욕심을 내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재를 해드리기 위해 오셨던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분께서 법당에 와서 부처님께 절을 드리고 나서는 꼭 돌아

 

서서 저한테 절을 하셨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저한테는 절을 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하면, 환하게 웃으시며 그러시더라구요....스님이 곧 부처님 아

 

니십니까?'

 

그 말씀을 스님이 해주실때는 잘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이 돼지인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돼지로 보

 

이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인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로 보인다고 했던

 

가요......내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2. '모든 진리는 결국 하나다.'

 

이 글을 보시던 분들 중엔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했다는 제가 부처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다

 

른 종교에 대해서는 다소 배타적인 것이 (머, 종교마다 조금씩의 차이가 있

 

겠지만서도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저희 할머니를 통해 느낀 것은

 

진실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밝혔듯이 저희

 

집안은 불교를 믿고 할머니는 특히 독실한 신자이셨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저만 어려서부터 교회로 성당으로 왔다갔다 했으니 어른들이 많은 걱정을

 

하시곤 했지요....그런데 막상 가장 열심히 불교를 믿는 할머니께서는 별

 

로 싫은 소리를 하지 않으시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 제가 할머니께 여쭤

 

봤죠...'할머니도 제가 교회 다니는 거 싫으세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

 

러시더군요...'교회 가도 불쌍한 사람 도와주라 그러고 부모한테 효도하라

 

그러지...그렇게 가르치는덴 다 옳은 데야...부처님 믿어도 그렇게 하라 그

 

러는데 머.......'

 

여기서 한가지 세상에서 저만 아는 비밀을 밝히자면 , 할머니가 임종을 앞

 

두셨을 때, 밤새 할머니를 지키시던 어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저 혼

 

자 할머니의 병상을 지키던 때였습니다. 그때는 저도 세례를 받지 않아서

 

임종을 앞둔 할머니께 대세를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 앞에

 

할머니가 서셨을때 이 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사신 분이라는 것을

 

아시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성수도 없이, 세례도 받지 않은 제가 할머니의

 

이마로 가서 십자가를 그어드렸습니다. 그냥 그땐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아마 하느님은 제 맘 다 아셨을 거라고 울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3. 사랑은 베푸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저는 한가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저희 집안에 관한 이

 

야기지요. 저희 큰아버지 이야기입니다.....그 분은 사실 그리 효자가 못되

 

었습니다. 망나니 였다는 이야기는 아니구요, 집안의 재산을 물려받아 매우

 

큰 부자이고, 자식들도 둔 어엿한 분이신데....옆에서 보기에 그리 할머니께

 

잘 해드리는 편은 아니셨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일가 친척은

 

물론이고 동네 사람들까지 무척이나 슬퍼했습니다. 너무나 좋은 분이셨기

 

때문이죠......근데...이건 너무 죄송한 말씀이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 큰

 

아버지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동안 어머니 모시는거 그렇게 귀찮아 하더니

 

정말 좋아하는군'이라고 수근거릴 만큼 할머니한테 잘 해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할머니가 잠시 폐가 안좋으셨을 때 자신들이 밥을 먹는 식

 

탁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큰아버지, 큰어머니가 해외 여행 갔다 왔을때

 

아는 사람이란 아는 사람에게 다 선물을 돌리면서도 할머니 드실 과자 한 조

 

각 사오지 않았다는 머 그런 것들인데.....큰아버지가 그렇게 하시는 데도

 

할머니는 일편단심으로 큰아버지를 생각하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큰아버

 

지의 그런 행동에 별로 서운해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는

 

할머니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런 일에도 상처를 안 받으신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절대 무언가 기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주기만 하실 뿐 받는 법은 도통 모르셨습니다. 그

 

러니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이 서운하게 해도 상처를 입지 않으셨던 것입니

 

다. 종종 주변에서 마음에 입은 상처로 인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어려워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사람에게 상처를 입으면 증오가 먼저 들어서 사랑

 

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겠지요.....그러나, 할머니는 아예 상처 자체를 만드시지 않으

 

셨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기만 했는데 그걸 다시 돌려

 

주지 않았다고 서운할 것이 무엇이냐고 그렇게 생각하셨음이 틀림없습

 

니다. 할머니라면 그러셨을 게 틀림없구 말구요.......

 

  

 

아직도 가끔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하게 아파옵니다. 아마도

 

사무치게 그립다는 표현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잠시동안 이 세상

 

에 머무시면서 나와 함께 시간을 공유해주셔서...너무나 고맙습니다.

 

아마도 지금쯤 제가 평생동안 가려고 하는 길의 끝녁에서 언젠가 저희 집에

 

오셨을 때 출근하는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더 보시려고 베란다 끝을 잡고

 

밖을 내다보시던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나의 할머니....

 

사랑한다는 것은 삶과 죽음의 거리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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